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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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쓰이는 방식을 영원히 바꿔놓았고, 심지어는 잠시 동안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조차 바꿔놓은, 이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_ 레이먼드 카버 어니스트 헤밍웨이. 참전 영웅, 맹수 사냥꾼, 낚시 애호가, 투우 마니아, 네 여자의 남편이었던 남자, 명사들과 어울려 흥청망청 화려한 삶을 살았던 남자. 그리고 작가. 하지만 헤밍웨이의 작품을 읽는 순간 그의 삶을 채운 그 숱한 사건과 기행, 일화 들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우리는 그의 언어가 만들어낸 강렬한 서정에 압도되고, 사로잡혀버린다. 그리고 세간에 비춰진 그의 겉모습에 속아 우리가 만들어낸 선입견을 부끄러워하게 된다. 가장 마지막에 놓은 역할, 하지만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고 대체 불가능한 작가로서의 그의 진면목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삶의 한순간을 포착해 시적인 언어로 승화시킨 헤밍웨이의 단편소설들에서 그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헤밍웨이는 뛰어난 장편소설, 그 가운데서도 『노인과 바다』라는 불후의 걸작으로 각인되어 있어, 그가 70여 편에 달하는 단편소설들을 발표했다는 것, 다른 많은 작가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뛰어난 단편소설 작가였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헤밍웨이는 1923년 『단편 셋과 시 열 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꾸준히 단편을 발표해왔고, ‘압축’과 ‘절제’로 대표되는 그의 하드보일드한 문체는 짧은 분량에 메시지를 농축해내는 단편에서 빛을 발한다. “헤밍웨이에게는 말이 완전히 사라지고 행동만 남는다기보다는, 있어야 할 것 같은 말이 아예 생략되거나 대명사로 대체되고(…), 기존의 언어는 아직 말이 되지 못한 것들로 진입하는 우회로 역할만 하는 경우가 많다. (…) 생략과 우회라는 이런 수법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분야는 단편이며, 그래서 때때로 단편이야말로 헤밍웨이의 진가가 드러나는 영역이라는 말도 들린다.”(옮긴이의 말 중에서) 해럴드 블룸이 미국 현대시인 가운데 가장 탁월하다고 이야기한 월러스 스티븐스는 단편 작가로서의 헤밍웨이를 가리켜 “기이한 현실이라는 주제에 관한 한 현존하는 시인 중 가장 중요한 시인”이라고 평가했으며, 해럴드 블룸 역시 자신의 책에서 “헤밍웨이가 쓴 최고의 단편소설들은 그의 장편소설 가운데 시대물의 한계를 넘어서는 유일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조차 능가할 정도로 뛰어나다”(『해럴드 블룸의 독서 기술』)며 상찬하고 있다. 또한 <라이프>는 “헤밍웨이의 스타일은 간결하고 깔끔하면서도 생생하고 풍부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스타일을 흉내 냈지만 그 누구도 똑같이 해내지 못했다. 그의 단편소설들은 정확함의 모델이다”라고 평했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이런 헤밍웨이의 단편들 가운데서도 최고의 이야기로 꼽히는 13편을 엄선한 책이다. 헤밍웨이 최고의 단편이자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킬리만자로의 눈」, 헤밍웨이 소설 중 예술적 성취도가 가장 높은 것 가운데 하나인 「프랜시스 머콤버의 짧고 행복한 삶」, 스페인 시절의 경험이 반영된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깨끗하고 불이 환한 곳」「하얀 코끼리 같은 산」을 비롯해, 헤밍웨이의 인생관과 그의 작품이 미학적으로 어떻게 발전해나가는지 그 정수를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한 『닉 애덤스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9편을 함께 모았다(「온 땅의 눈」「심장이 둘인 큰 강 1부」「심장이 둘인 큰 강 2부」「이제 내 몸을 뉘며」「가지 못할 길」「살인자들」「사흘간의 바람」「어떤 일의 끝」「인디언 마을」). 이 가운데 「이제 내 몸을 뉘며」「가지 못할 길」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으로 1차 대전 때 적십자사 운전병으로 참전했던 헤밍웨이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헤밍웨이 사후 출간된 『닉 애덤스 이야기』는 헤밍웨이가 1920년대부터 30년대 사이에 발표한 24개의 이야기와 스케치로, 독립된 단편들의 묶음이자 하나의 장편으로도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헤밍웨이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닉 애덤스로, 우리는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인디언 여인의 분만 현장에 갔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현실에 눈뜨는 소년 닉, 사랑하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괴로워하면서도 새로운 희망과 기대에 부푸는 닉, 친구와 스키를 탄 후 술 한잔을 나누는 여유에 행복해하는 청년 닉, 전장에서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내는 군인 닉, 전쟁에서 돌아와 자신을 보듬고 치유하기 위해 낚시여행을 떠난 닉의 궤적을 좇아가면서 삶과 죽음, 폭력과 공포, 사랑과 우정, 상실과 허무를 겪어나가며 삶의 비의에 눈뜨는 젊은이의 성장통을 함께 체험하게 된다.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대면한 공허와 고독 그리고 굴복의 삶을 묵인하는 순간 찾아온 절대 자유 - 「킬리만자로의 눈」 주인공인 작가 해리는 아프리카로 사냥 여행을 왔다 뜻하지 않은 부상을 입고 다리가 썩어 들어가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그의 주변에는 흉측한 모습의 새들만 배회하며 그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지만, 사실 “그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했고, 통증과 함께 공포도 사라졌다. 이제 그가 느끼는 것이라곤 이게 끝이라는 커다란 피로와 분노뿐이었다. (…) 이제는 잘 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알게 되면 쓰려고 아껴두었던 것들을 영영 쓰지 못할 터였다.”(본문 13?14쪽) 자신의 몫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죽음과 대면하고 있는 그를 구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과거의 그 많았던 사랑, 많았던 이야기들과 주변 사람들도 그를 구해줄 수 없다. 지금까지 그토록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과 아름다운 것들에 둘러싸여 살아온 그였는데, 다를 것 없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려 흥청망청 살아온 그였는데, 이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심한 악취를 내뿜는 죽음과 자신의 삶과 재능을 낭비해온 데 대한 허무, 더는 아무것도 새로 시작할 수 없다는 회한과 고독뿐이었다. 드디어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반복되었던 굴복의 삶을 다시 한번 더 받아들인다. 그리고 더이상 죽음에 개의치 않기로 한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 새로운 구원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하나, 온 세상처럼 넓고, 크고, 높고, 햇빛을 받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하얗게 빛나는 킬리만자로의 평평한 꼭대기였다. 그 순간 그는 그곳이 그가 가는 곳임을 알았다.”(본문 55쪽) 겁쟁이에서 진짜 남자로 도약하는 마법의 순간… 섬광처럼 찾아온 삶의 정점… - 「프랜시스 머콤버의 짧고 행복한 삶」 잘생긴 외모에 엄청난 재산, 아름다운 아내까지 부러울 것 없는 프랜시스 머콤버. 아내와 함께 아프리카로 사냥 여행을 온 그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위스키소다를 한 잔 하고 나서 침상에 누웠지만, 잠을 이룰 수 없다. 오전에 있었던 사자 사냥 때문이었다. “그것은 일어났던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고, 어떤 부분은 지울 수 없이 강조되어 있었으며, 그는 그것 때문에 비참한 수치심을 느꼈”(본문 74쪽)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수치심보다 더한 것은 두려움. “한때 자신감이 있던 자리는 완전히 텅 비어버리고 그곳에 차갑고 끈적끈적한 구멍 같은 두려움이 들어”(본문 74쪽)서 있었다. 그는 사자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고, 자신이 상처 입힌 사자 앞에서 도망치고 싶어했다. 이 사냥에서 그는 자신이 겁쟁이라는 것을,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잘난 미국인 꼬맹이-어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말았다. 결국 자신의 사냥 여행을 돕고 있는 백인 사냥꾼 윌슨이 사자를 해치우고, 그는 알아차린다. 아내가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과 끝을 냈다는 것을.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머콤버는 자기 모멸감 속에 시달리는 와중에, 자신의 아내가 윌슨과 밤을 보내고 새벽에 들어오는 것을 목격하는 치욕까지 겪는다. 그럼에도 사냥은 계속된다. 모든 모욕에도 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