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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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향하는, 그리하여 ‘너’를 향하지 않을 수 없는 간절함의 시 신달자 시인의 열다섯 번째 시집『간절함』이 민음의 시 262번으로 출간되었다.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신달자 시인에 대해 “두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모든 말들이 모두 시가 된다”고 평한 바 있다. 시의 언어로 일상을 살아내는 시인이, 시에 대한 간절함으로 생을 반추한다. 그 70편의 시를 묶었다. 시인은 감정에 휘둘리던 젊은 날에 대한 후회를 고백한다. 그러나 나이 듦이 감정을 무디게 하지는 않는다. “마음과 나이의 거리가 만들어 내는 또 하나의 아픔”이 있을 뿐이다. 이제 시인은 감정을 조금은 다른 온도로 느낀다. 감정에 휘둘려 소리 내어 우는 대신, 하늘을, 강물을, ‘너’를 바라본다. ‘나’를 돌아본다. 바라봄이 곧 울음임을 알기 때문이다. 바라보는 시선의 끝에 시가 흐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시선의 다른 이름은 간절함이다. ■ 자연을 감각하는 시인 자연 한 잎을 뜯어 짓이겨 상처에 바르는 날 우주 한 잎으로 통증을 싸매는 밤 천둥소리도 밥 끓는 소리나 마찬가지 후려치는 빗줄기도 싸하게 입안을 맴도는 동치미 한 사발 -「무심함」에서 시인은 자연을 감각한다. 감정은 자연을 거쳐 온다. 봄에서 겨울까지의 피바람만 골라 뽑아 목에 겨누는 칼, 심란함이다. 잎새에 매달려 들어가지도 못하고 뛰어내리지도 못한 채 떨고 있는 물방울, 외로움이다. 시인은 자연 한 잎을 뜯어 짓이겨 상처에 바르고, 우주 한 잎으로 통증을 싸맨다. 바람의 생일날에는 개조개를 넣고 미역국을 끓인다. 장시「한강이 나에게 이르노니」에서, 시인은 한강이 되어 말한다. “어루만져 주세요 이 강! 당신들의 물이에요 아시는지?” 한강이 된 시인은 우는 이들을 품어 안고, 새들이 물어 온 이야기를 들으며, 빗장 없는 몸이 되어 몇억 년을 흐른다. 자연과 함께 시인은 아득하고 심란하고 무심하고 짜릿하다. 막막하고 불안하다가도 눈부시다. 모든 감정은 ‘너’와 함께 나에게 온다. ■ ‘너’ 존재하므로 ‘나’ 바라봄 가능하기에 까무룩한 등 내가 닿지 않는 곳 눈(眼) 하나 달아 주고 싶은 곳 나는 나의 뒤에 서서 나의 허리를 향해 왈칵…… 가던 두 손 멈추고 성스럽게 한번 바라보고 싶다. -「나는 나의 뒤에 서고 싶다」 에서 간절함이 있다. “등뼈에서 피리 소리가” 나고, “열 손가락 열 발가락 끝에 푸른 불꽃이 어른”거리는 간절함이다. 시인이 그토록 간절하게 돌아보는 것은 그 자신이다. 망치 하나로 교정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생, 오자투성이 생이다. 이제 시인은 자신의 등 뒤에 서서 가장 아득한 것, 그의 생을 바라본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선이, 자신에게 “힘내”라고 말해 주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서다. ‘나’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너’가 있어야만 한다. 이때 ‘너’는 ‘나’ 아닌 모든 것이다. 풀 한 포기, 영화 한 편, 빌딩 하나, 바람 한줄기. 이 모든 것이 너다. 이 모든 ‘너’ 존재하므로 ‘나’ 바라봄이 가능한 것을 시인은 알고 있다. 내가 네게 한 말들이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그리하여 시인은 시를 읽고, 적막을 끌어안고, 능선을, 강물을, 하늘을 바라본다. 그것은 도무지 쉽게 열리지 않는 문 앞에 서 있는, 그리하여 어쩌다 쉽게 문이 열리는 순간에는 깜짝 놀라 뒷걸음치는 시인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나를 향하는, 그리하여 너를 향하지 않을 수 없는 시선이 이 시집에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