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페미니즘의 완성’은 ‘가부장제 깨부수기’다!
“가부장제는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 아니다”
“자궁 가족은 가부장제를 유지시키는 안전판 노릇을 해왔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30여 년간 페미니즘 논쟁과 논란이 뜨겁게 전개되었다. 이는 현재진행형이며 전쟁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하지만 싸우는 양쪽이 대등하게 싸우는 전쟁은 아니다. 억압을 받는 쪽에서만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 있는 ‘참혹한 전쟁’이다. 역사학자 거다 러너가 지적했듯이 “여성들은 그 어떤 인간 집단보다도 오랫동안 타인에 의해 규정되고 ‘타자’로 규정되었으며, 그 어떤 집단보다도 오랫동안 자신의 역사에 대한 지식을 박탈당”해왔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역사를 모른다. 모든 역사는 남성의 역사였다.
2005년 3월 2일 호주제가 폐지되었다. 당시 호주제 폐지 반대자들은 호주제 폐지자들을 ‘민족 반역자’에서 ‘공산도배’에 이르기까지 살벌한 용어들을 총동원해 욕하면서 호주제 폐지는 ‘망국의 길’이라고 아우성쳤다. 물론 나라는 망하지 않았고, ‘민족 반역자’나 ‘공산도배’도 없었다. 더구나 지금 호주제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없거니와 이제는 호주제 없는 세상에 익숙해졌다.
마찬가지로 여성 억압의 원흉이 가부장제라는 건 수많은 전문가가 지적해온 사실이다. 그런데 가부장제는 교묘한 이중 구조를 갖고 있어서 깨부수기가 쉽지 않다. “여성이 약자라고? 우리집의 왕은 어머니다”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남성들은 자신의 가족을 근거로 ‘여성 약자론’마저 인정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오랜 희생과 투쟁을 통해 자신이 낳은 자식들을 기반으로 세력권을 구축해 이른바 ‘자궁 가족’의 수장이 되었는데, 이 자궁 가족이 가부장제를 유지하는 안전판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 사회가 져야 할 비용과 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기는 식으로 압축 성장을 해온 나라인지라 “믿을 건 오직 가족뿐”이라는 신앙이 한국인의 일상적 삶을 지배한다. 여성 혐오는 엄밀히 말하자면 ‘가족 밖 여성’과 사회에 대한 혐오다. 나의 어머니는 숭배 대상이지만, 너의 어머니는 혐오 대상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맘충(mom蟲)’이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의 문제일 뿐 결론은 이미 나와 있다. 호주제가 격렬한 반대에도 폐지되었던 것처럼 가부장제는 산산조각 난 채로 부서져 허공으로 사라지게 되어 있다.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은 사이버 세계의 등장 이후 페미니즘 논쟁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살핀다. 이 책은 어쭙잖은 ‘꼰대질’이나 남자들이 자꾸 여자들을 가르치려 드는 ‘맨스플레인’을 배격하면서 가급적 개입을 자제하고 페미니즘 이슈와 관련해 시공간적으로 전체 맥락의 그림을 보여주는 데 치중한다. 그리고 각 장의 끝에는 저자인 강준만 교수의 생각과 경험을 허심탄회하게 밝힘으로써 실감을 더하는 동시에 솔직한 자기 성찰을 시도하고 있다. 이것은 모두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의 종언을 위해서다.
‘호주제’를 옹호하는 남성들
1997년 1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토론회는 여성계 제1의 과제로 호주제 폐지를 선정했다. 이 토론회에 참석한 여성학자 이효재는 신정모라의 ‘부모 성 함께 쓰기’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부계 혈통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가 중요하다고 했다. ‘3.8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제13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여성단체 지도자 170여 명이 ‘호주제 폐지’의 관련 사업으로 ‘부모 성 함께 쓰기’를 선언했다. 1998년 11월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 모임’이 조직되었을 때, 이 모임 게시판은 “이 앉아서 오줌 싸는 빨갱이 년들아”라는 제목의 글로 도배되었다. ‘사이버 테러’로 명명되는 여성 적대적 환경 속에서 대안 공간을 찾기 위한 페미니스트들의 노력은 웹진이나 커뮤니티를 통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는 것으로 이어졌다. 1998년 7월,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 모임 창립준비위원회’가 각 사회단체와 PC통신 동호회에 참여 독려 공문을 발송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기도 했다.
2003년 5월 한국씨족연합회 등으로 구성된 ‘정통가족제도수호범국민연합’은 “호주제 폐지하면 한국 가족제도가 박살납니다”, “반만년 문화 배달민족에게 사회주의 가족법이 웬 말이냐”, “호주제가 폐지되면 부모형제 남이 되고 일가친척 없어진다”, “정통 가족제도 파괴하는 민족 반역자 물러가라”, “호주제 폐지 주장자들의 논리는 공산도배들의 주장과 다를 바 없다”며 살벌한 전쟁 용어들을 쏟아내며 격렬히 호주제 폐지를 반대했다. 2004년 12월15일에는 호주제 폐지에 반대하는 전국 유림과 시민단체가 서울역 광장에서 ‘호주제 수호 범국민궐기대회’를 열기도 했다. 결국 2005년 3월 2일 국회 본회의는 호주제 폐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민법 개정안을 찬성 161표, 반대 58표, 기권 16표로 통과시켰다.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이 민법 개정안은 페미니즘 운동의 기념비적인 성과였다.
유시민의 ‘조개론’은 ‘대의론’과 ‘조직 보위론’이었는가?
2002년 대선 기간 당시 개혁당 수련회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자 당 내부의 여성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특별위원회가 구성되고 실명 공개 서명운동이 진행되었다. 당시 유시민은 “해일이 일고 있는데 겨우 조개나 줍고 있냐”며 성폭력 사건을 조개나 줍는 부차적인 일로 만들어버렸다. 2008년 12월 6일 민주노총 조합원 성폭력 미수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이 수배 중이던 당시 이 위원장의 도피를 도운 여성 전교조 조합원을 민주노총 간부가 성폭행하려 했던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당시 사건 은폐의 주역 중 한 명으로 의혹을 받은 전(前) 전교조 위원장 정진후가 2012년 4.11 총선에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로 공천을 받으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유시민은 “내가 그분들과 얘기해봐서 아는데 정진후 후보에게는 문제가 없다”는 식의 발언을 함으로써 항의 여성들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MBC <100분 토론>에서 정진후 후보를 옹호했다. 그러자 “성폭력 피해자, <100분 토론> 유시민의 정진후 감싸기에 오열. 통합진보당 정진후에 대한 공천을 취소하라!” 등의 비판이 줄을 이었다. 유시민은 개혁당 시절의 조개론에 이어 통합진보당 시절의 ‘정진후 감싸기’로 인해 여성운동가들 사이에선 성폭력과 관련된 ‘조직 보위론’의 대표적 옹호론자로 떠오르게 되었다. 국내 페미니즘 책들에서 ‘조직 보위론’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유시민의 조개론’이 거론된다.
탁현민의 『남자 마음 설명서』를 옹호하는 이유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행정관인 탁현민은 과거 자신의 저서에서 젊은 시절 26명의 여성과 연애했다는 걸 밝혔다. 또 여성 비하, 성매매 찬양, 성적 방종 등의 논란을 일으켰다. 탁현민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가 썼던 『남자 마음 설명서』의 글로 불편함을 느끼고 상처를 받으신 모든 분들께 죄송한 마음을 표한다”고 사과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문재인 정부는 인사 검증 기준에 성평등 관점 강화하라’는 논평을 내고 “여성을 비하하고 대상화한 인물을 청와대 행정관에 내정한 새 정부의 인사 기준에 강하게 문제 제기한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문성근과 김미화가 탁현민을 응원한 덕분일까? 탁현민을 비판하는 신문 칼럼에는 “탁현민이 돼지 발정제로 성폭행을 조장했나”, “제발 생각 좀 해라. 적과 아군을 구분해라”, “남성 혐오에 눈 감는 건 인권 감수성 있는 거야”, “공무원 뽑는 데 웬 성직자 뽑는 절차를 연상케 한다” 등 탁현민을 옹호하는 댓글이 달렸다. 그러자 여성학자 정희진은 『남자 마음 설명서』를 분석하면서 “탁씨가 백인의 노예가 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듯이, 여성의 몸도 남성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책은 민망할 뿐, 별 내용은 없다.……문성근 씨가 탁씨를 응원했다. 실망이다. 벌써부터 남성 연대가 문재인 정부를 망칠 조짐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