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우리는
만나기 위하여 떠돌아야 한다
자신에게조차 고립된 존재들,
밀려난 이들이 모이는 세계의 바깥
2006년 제6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박혜상의 두번째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이질적이고 고립된 이들이 상호 조화를 이루며 구축해내는 박혜상 특유의 부조리한 균형은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여덟 편의 소설들에서 더욱 선연하게 빛을 발한다. 박혜상은 『그가 내린 곳』에 철저한 현실을 담아내면서도 삶의 체제를 고발하는 데 머무르지 않으며, 보다 근원적인 지점을 탐색하려 애쓴다. 그의 소설 속 고독한 타인들은 작가의 탐색을 보좌하며 자신을 몰아낸 세상의 바깥으로 끊임없이 방황한다. 도피가 아니며 세상에 대한 순응은 더더욱 아닌 이 방랑은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하는 사회에 맞서는 움직임으로 읽힌다. 미지의 세계의 가능성을 ‘쓰기’로서 긍정하면서, 사회에서 내쳐진 ‘무쓸모 인생’들은 ‘당신’과의 만남에, 기묘한 연대에 이르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우리, “담장이 되지 못한 여분의 벽돌들”
아무리 애써도 도달하지 못했거나 차라리 자의로 벗어났거나. 『그가 내린 곳』에 등장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세상의 기준에서 멀리 떨어진 ‘미완성 인생’들이다. 철거 입주민, 성소수자, 도피 유학자, 해고 노동자와 그의 가족, 무명 소설가와 시인…… 그들은 두서넛씩 짝 지어 대개 하나의 공간을 공유하면서 “지나치게 밀착된 시간”(「손가락을 세워라」)을 살아가지만 서로 간의 소통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늘 어딘가로 떠나려 한다. 그들이 향하는(혹은 도달한) 그곳은 낯선 어딘가가 아니라 이미 와보았던 곳, ‘다시’ 찾은 곳이다. 고향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집이기도 하지만, 모두 “어딘가에 도착해 있다는 실감”은 나지 않는다. 거기서도 그들은 “허공에 떠 있는 것” 같다.
뒤를 돌아보면 언제나 바다가, 있다. 그렇다고 마을 앞에 놓인 바다를 출구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또 나를 좌절하게 만드는 거대한 무엇도 아니었다. 그저, 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배후처럼, 밟을 수 없는 그림자처럼, 발목이 묻혀 있는 그림자처럼, 바다가 있다. _「봄눈」, p. 225
Y는 바깥을 꿈꾸는 형상이다. 그것은 달아나지 못하는 나무였다가 나비처럼 날아오르는 은행잎, 찰나를 꿈꾸는 토마스이기도 하고, 사라진 비탈나무이기도 하고…… 「Y의 바깥」, p. 39
이들에게는 저마다 다른 이름이 있겠지만 가장 자주 등장하는 호칭은 ‘Y’다. 박혜상은 몇몇 소설들을 일종의 연작처럼 읽히도록 의도한 듯 보이지만, 뚜렷한 연결 지점이 없는 듯한 소설에도 일종의 ‘Y들’이 있다. “나는 어디에도 있었고 아무 데도 없었어. 나와 똑같은 옷을 입은 저것들은 모두 내 몸이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어”(「Y의 바깥」). 형상 Y에 대한 묘사는 이 소설집 전체의 인물들, 파편화된 존재들을 연결시킨다. “나는 아무 데도 속하지 않은 사람”(「봄눈」)이라는 자각을 지닌 박혜상의 인물들은 스스로의 존재 이유에 의문why을 지닌 채, 남의 집 앞 계단일 수도 있고 영국 런던일 수도 있는 곳, 자신이 떠돌 수 있는 최대한의 ‘한계’를 떠돌고 있다.
기묘한 연대
그렇다면 일하지 못하고 쓰지 못하는 우리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의 죽음과 무관한 알리바이」, p. 145
“우리에게 우리는 우리를 열외로 만드는 우리일 뿐”(「그 사람의 죽음과 무관한 알리바이」)일까? 소설 「사랑의 생활」에는 ‘혼자서도 잘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등장한다. 나는 묻는다. “혼자서도 잘하는데 왜 혼자 있지 못하고 혼자인 사람들이 모이는 걸까.” 케이는 말한다. “사람들은 고독도 전시하려고 하더군.” 『그가 내린 곳』에는 작품을 완성하는 데 실패하고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작가들이 빈번히 등장한다. 이 소설집에서 쓴다는 것은, ‘고독도 전시’한다는 말에 숨어 있는 의미처럼 나를 보아달라는 뜻인 동시에 그를 넘어 본능적으로 존재를 증명하려는 외침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씀으로써 자신을 드러내는 그들이 쓰지 못한 채 어딘가/누군가를 향해 떠나는 이유는 영영 단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당신’을 가르는 한계의 지점으로 나아가 만나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 소설집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김태선은 글쓰기, 곧 서로를 부르며 끌어당기는 일을 멈추지 않고 지속하는 것은 “생각을 유예하고 실행을 지연시키는 일이 현실 사회가 인물들에게 부과한 질서에 틈을 냄으로써 나타나는, ‘다른 곳’ ‘다른 것’, 그리고 ‘다른 이’를 향한 움직임”이라 읽기도 했다. 이처럼 박혜상의 소설이 지극히 어두운 현실을 전하면서도 빛을 잃지 않는 까닭은, 앞에 놓인 미지의 세계의 가능성을 ‘쓰기’로서 긍정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