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한반도 냉전의 거대한 빙하를 외교의 힘으로 움직이다
9·19공동성명의 주역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이 쓴 치밀한 외교 현장 기록
『빙하는 움직인다: 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은 30여년간 국제정치 무대를 누비며 2005년 9·19공동성명을 이끌었던 전 외교부장관 송민순의 외교회고록이다. 분단 역사를 극복하려는 시도는 늘 북한 핵이라는 암초에 걸려 넘어지고, 그 밑에는 빙하처럼 얼어붙은 한반도 냉전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오랜 대내외적 현실이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북한 핵과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장전(章典)으로 불리는 9·19공동성명의 합의와 이행 과정을 중심으로 한국 외교가 어떻게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미래를 움직이는 지렛대가 될 수 있을지 그 비전을 제시한다.
저자의 기억과 기록은 1976년 판문점 도끼사건부터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년 4차 6자회담, 2007년 10·4남북정상선언 같은 굵직한 계기를 징검다리 삼아 경수로, BDA 제재, 군사작전권 회수, 사드(THAAD) 배치, 소고기 협상 등 중요한 외교 쟁점을 폭넓게 아우른다. 그러나 시선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한곳을 끈질기게 좇는다. 특히 4차 6자회담에서 도출된 9·19공동성명은 남북한과 미국·중국·일본·러시아가 중지를 모아 한반도의 단계적 비핵화를 전세계에 공표한 협약이었다. 저자는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남북한이 주체가 되어 주변국의 동참을 유도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본다. “남이 써주던 우리 역사를 우리 손으로 쓰고 있다”는 자신감이야말로 9·19공동성명이 한국 외교사에 가져다준 성취다.
한편 이 책은 외교관이자 공직자인 개인의 회고록으로서 자신의 할 일과 나아갈 길을 분명히 아는 프로페셔널리즘의 빛나는 순간들을 담고 있기도 하다. 노무현, 반기문, 조지 W. 부시, 콘돌리자 라이스와의 일화를 비롯해 협상 공간과 사석에서 마주친 외교전문가들에 대한 스케치는 역사적 현장의 생생함을 더한다. 전례를 찾기 힘든, 한반도 외교의 교과서적인 책이라 할 수 있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동북아 외교 전쟁의 실상
살아 있는 한반도 외교 현재사(現在史)
이 책은 북한 핵과 관련한 한반도 외교의 중요한 순간마다 자리를 지키며 큰 그림을 그려온 저자 송민순의 기록이다. 송민순이라는 인물이 지나온 역사는 한반도 외교의 가장 핵심적인 증언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 기록은 단순한 회고록에 그치지 않고 정치·외교 분야의 현재사(現在史)로서 의미가 깊다.
판문점 도끼사건 당시 외교관 2년차로서 분단 상황을 직시한 저자는, 또다른 분단 현장인 서베를린의 부영사로 일하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회의 민낯을 목격했다. 이후 북한보다 20여년 앞서 위성로켓을 발사했던 인도와 강대국 정치 수난의 역사를 지닌 폴란드 대사관 생활을 통해 20세기에서 건너온 핵과 냉전이 21세기 국제정치에 얼마나 큰 위력을 떨치고 있는지 체험했다. 외교부 안보과장·북미국장으로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1·2차 개정을 이끌어내며 한·미동맹 자체를 목표로 하기보다 한반도 미래를 정상화하는 동력으로 삼는 전략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또한 제네바 4자 평화회담에 차석대표로 참여하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북·미가 아닌 남북 중심으로 끌어오는 데 주안점을 두면서, 이를 위해 남·북·미와 주변국들이 동석하는 다자간 협상 테이블을 만들 필요를 실감하게 되었다. 1975년 외교부에 들어가 2008년 장관 퇴임을 하기까지 저자는 한국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동북아 정치 주체로 설 방안을 고심해왔다. 2005년 9·19공동성명은 이런 저자의 이력과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
4개의 부로 구성된 이 책은 개인의 자취와 국제 정세를 촘촘하게 엮으며 북핵 문제를 둘러싼 동북아 외교 전쟁의 실상을 보여준다.
베트남전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1976년 8월 18일, 공동경비구역에서 유엔군과 북한군 사이에 벌어진 판문점 도끼사건은 한반도의 휴전이 얼마나 취약한 상태인지를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북한은 군사력 열세를 보완하고 전력수요를 충당하는 한편 정권의 위상을 세우기 위해 소련의 힘을 빌려 원자력발전소 건설과 핵무기 개발에 매달리고 있었다. 1989년 영변 핵시설이 관측위성에 포착되면서 북한 핵문제는 드디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반도 비핵화 논의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IAEA의 북한 핵시설 사찰 요구와 이를 거부한 북한의 NPT 탈퇴 및 IAEA 안전조치 협정 파기 선언, 북·미의 벼랑 끝 협상을 통한 제네바 합의(1994),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제네바 4자회담(1997), 북한의 미사일 개발 중지와 북·미관계 정상화를 축으로 하는 ‘페리 프로세스’, 남북 정상회담(2000)과 짧은 해빙기를 거쳐 9·11테러 이후 미국이 북한을 ‘핵 위협 국가’에 포함시키기까지, 이 시기 북·미관계는 여러 부침을 겪었으며 한반도 비핵화 논의에서 한국 외교는 아직 북·미관계의 주변에 머무는 실정이었다. 제네바 4자회담 당시 저자는 ‘진전이 없는 것 아니냐’는 언론의 질문에, “회담이 빙하의 움직임과 같다”고 답변했다(53면).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몇년이 지나고 나면 변화를 감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바로 외교의 결과임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제네바 합의가 북·미 양자 구도, 제네바 평화회담이 남·북·미·중 4자 구도였다면,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고조된 와중에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한반도 문제의 관련국을 남·북·미·중·일·러 6자로 확대하는 데 동의하며 충돌의 위기를 외교의 기회로 전환했다. ‘김정힐’이라는 말까지 들을 만큼 일본과 네오콘의 견제를 받은 미국 대표 크리스토퍼 힐, 만나면 담배부터 권하는 호방한 스타일의 중국 대표 우 다웨이, 일본인 납치 문제를 수시로 꺼내드는 일본 대표 사사에 겐이치로, 늘 한발 물러나 어떤 이익이 돌아올지 관망하는 러시아 대표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 그리고 ‘도살장에 들어온 느낌’이라며 복잡한 심경을 내비치는 북한 대표 김계관 등 자국의 이익과 개인적 입장 사이에서 고뇌하는 4차 6자회담 주역들의 모습이 실감 나게 묘사된다.
물론 각국의 이해관계가 다른 상황에서 합의를 도출하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하는 미국과 ‘완전한 북·미관계 정상화’를 요구하는 북한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고, 경수로 사업과 관련해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합의문에 포함할 것인가를 둘러싼 진통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한·미·일 공조에만 매달리던 관행에서 벗어나 한·중 조율을 통해 북한을 설득하는 전략을 취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외교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 대립구도에 집중하는 경향을 지적하기도 했는데, 저자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의미로 고개를 ‘절레절레’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힌 해프닝도 있었다(101면).
53일간의 밀고 당기기 끝에 6자는 9·19공동성명으로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합의”에 도달했다. 저자는 이를 한국이 외교의 중심에 서서 한·미 공조, 한·중 조율, 남북 소통이라는 삼박자를 가동하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거대한 첫걸음’을 뗀 사건으로 평가한다. 2011년 미·중 정상회담, 2016년 유엔안보리 결의에서도 9·19공동성명의 의의는 거듭 강조되었다. 그러나 성명 직후 북한이 마카오 BDA 은행에서 불법자금을 세탁한 의혹을 받으며 미국의 금융제재 압박이 가해졌고, 성명 이행은 교착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2006년 북한이 첫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다시금 한반도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제재는 게으른 사람들의 외교정책 수단”이라는 말을 상기하며 저자는 6자회담(Six Party Talks)과 송민순 이름의 머리글자를 딴 이른바 ‘에스 플랜’(S-Plan)에 시동을 걸었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와 핵 폐기, 미국의 BDA 문제 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 등을 앞에 내걸고 이것이 모두 실패할 경우 중국까지 동참하는 강력한 대북제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