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이코노미쿠스

다니엘 코엔
27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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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악의 번영>으로 경제가 인류 문명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분석한 프랑스의 경제학자 다니엘 코엔이 이번에는 자본주의의 적자이자 시장경제의 우등생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에 주목했다. 이 책은 합리적 이성 일변도의 승자독식 경쟁체제를 떠받드는 인간 유형인 호모 이코노미쿠스에 대한 비판적 에세이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장하준 교수와 사상적 궤를 같이하는 저자는 중국이 서양식 세계로 진입하려 하는 지금이야말로 개인의 행복과 사회 발전 사이의 근본적인 상관성을 검토해야 할 때라고 진단한다. 인간의 다양한 본성 가운데 경쟁과 합리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과연 후기산업사회라는 새로운 시대에 행복한 성장을 이룰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디지털경제와 유전학의 발전, 그로 인한 근대화 이후의 세상은 새로운 정신을 필요로 할 터. 저자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욕망이 배제해버린 호모 에티쿠스의 도덕성과 호모 엠파티쿠스의 연대 의식 같은 가치의 복원을 제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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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서론 1장 국가행복지수 잃어버린 시간 / 이혼과 노후 / 불행을 자처하는 사람들 / 인류학의 괴물 / 10가지 조언 2장 노동, 사라지고 있는 가치 스트레스에 의한 경영 / 자본주의의 새로운 정신 / 불평등의 새로운 세대 / 하이퍼 계급 3장 제국의 쇠퇴 뒤늦은 고대 문명 / 서양 제국의 몰락 / 서양이 기독교 국가가 된 사연 / 우리는 로마인인가? / 미국 시민 정신의 침체 / 미국의 이례적인 모습 4장 세계의 탈중심화 뉴욕에서 상하이까지 / 빈곤에 대한 재검토 / 출발이 잘못된 아시아 / 중국에 대하여 / 굿바이 레닌 /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 호모 폴리티쿠스 5장 서양의 대위기 침울한 세계화 / 위기에 빠진 유럽 / 탈산업화 / 세계적 규모의 감금 상태 6장 다윈의 악몽 호모 뉴메리쿠스 / 다윈과 경제학자들 / 이기적인 유전자 / 유전되는 육체 7장 포스트모더니즘의 조건 모더니즘에 불을 붙여라! / 후기물질주의 사회란? / 마르크스의 영향력 / 웰빙을 위한 지출 / 행복으로의 회귀 결론 옮긴이의 말

Description

“호모 이코노미쿠스를 폭넓은 시선으로 훌륭하게 통찰한 책” _『르몽드』 “경쟁과 협동의 균형을 강조한 서구 모델의 실패를 예리하게 분석했다.” _『르 주르날 뒤 디망슈』 프랑스의 장하준, 다니엘 코엔 길 잃은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역사와 미래를 말하다 ◆ 현대 자본주의의 모순을 파헤쳐온 프랑스의 지성 다니엘 코엔이 제시하는 행복한 성장의 조건 ◆ 물질적 풍요와 경제적 효율성을 좇아 유래 없는 성장을 일궈낸 ‘경제적 인간’의 명암에 주목 ◆ 후기산업사회라는 새로운 시대는 호모 이코노미쿠스를 보완하는 새로운 정신을 필요로 한다! 전작 『악의 번영』(글항아리, 2010)에서 세계사 속 경제 작동원리를 간결하게 분석해 경제가 인류 문명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를 한눈에 조망한 프랑스의 경제학자 다니엘 코엔이 이번에는 자본주의의 적자이자 시장경제의 우등생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에 주목했다. 이 책(원제 Homo Economicus)은 합리적 이성 일변도의 승자독식 경쟁체제를 떠받드는 인간 유형인 호모 이코노미쿠스에 대한 비판적 에세이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장하준 교수와 사상적 궤를 같이하는 저자는 중국이 서양식 세계로 진입하려 하는 지금이야말로 개인의 행복과 사회 발전 사이의 근본적인 상관성을 검토해야 할 때라고 진단한다. 인간의 다양한 본성 가운데 경쟁과 합리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과연 후기산업사회라는 새로운 시대에 행복한 성장을 이룰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디지털경제와 유전학의 발전, 그로 인한 근대화 이후의 세상은 새로운 정신을 필요로 할 터. 저자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욕망이 배제해버린 호모 에티쿠스의 도덕성과 호모 엠파티쿠스의 연대 의식 같은 가치의 복원을 제언한다.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누구인가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자본주의적 인간형이다. 한정된 재화를 가지고 최대의 이윤을 추구하는 합리적 이성으로 무장한 이 인간 유형의 적절한 예로 저자는 로빈슨 크루소를 꼽는다. 황량한 무인도에서 생존을 위해 매번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고, 재배한 작물을 다 소비하지 않고 축적해두는 로빈슨 크루소는 이해타산이 몸에 배어 있고 물질적 풍요를 욕망하는 현대인의 생활양식을 앞서 실천한 전범으로 널리 회자된다. 로빈슨 크루소형 인간은 자기관리에 철저하며 회사의 이윤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쉴 새 없이 합리성만을 따지는 탓에 피에르 부르디외는 호모 이코노미쿠스를 ‘인류학의 괴물’이라고 불렀을 정도다. 저자에 따르면 200여 년 전부터 활발하게 진행된 경제성장 시대의 시대정신을 온몸으로 체현한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자기 안의 고유한 경쟁 상대인 호모 에티쿠스(윤리적 인간), 호모 엠파티쿠스(공감하는 인간)를 모두 내쫓고 말았다(264쪽).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학에 접목한 신다윈설이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독주에 매우 적합한 환경을 제공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기업은 기존의 경영방식에서 탈피해 상여금 제도를 지속적으로 확장시켜 내부 직원들끼리의 경쟁을 유도했다. 제너럴 일렉트릭의 경영자 잭 웰치는 매년 직원의 10퍼센트가량을 해고해 그들에게 성공에 대한 갈망을 불어넣어 집단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경영전략을 택했는데, 이름 하여 ‘스트레스를 이용한 경영’이다. 또한 학교나 병원 등의 공공 영역, 그리고 저자가 날카롭게 지적하듯이 페이스북을 비롯한 사이버 공간에서도 사람을 서열에 따라 수직으로 분류하는 체제가 만연해 있다. 사회 발전의 조타수로 경제가 우뚝 선 이상, 호모 에티쿠스나 호모 엠파티쿠스가 들어설 공간이 없음은 자명하다. 제국의 쇠퇴를 부른 개인주의 미국은 기업가 정신을 갖춘 호모 이코노미쿠스에게 약속된 땅이나 다름없었다. 유럽의 봉건제나 군주제의 전통에서 벗어나 이해타산과 물질적 부가 사회의 규범이 되는 기회의 무대였기 때문이다. 신대륙에 정착한 로빈슨 크루소는 2세기만에 미국이라는 제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저자는 미국을 과거의 제국 고대 로마와 비교하며 쇠퇴의 징후를 포착한다. 저자의 표현으로 ‘뒤늦은 고대 문명’인 미국은 엘리트 계층의 자기중심주의, 사유재산에 대한 맹신, 공적 자산의 민영화 등에서 쇠퇴기의 로마 제국과 유사점을 보이는데, 문제는 팽배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다. 저자가 보기에 미국에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공동체 문화를 압도하기 시작한 것은 50여 년 전부터다. 한때 케네디의 대통령 취임 연설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공유했던 미국인의 77퍼센트가 현재 미국은 집단의식을 상실했으며 이기주의가 심각한 문젯거리가 되었다는 지적에 공감했다(104쪽). 이제 사람들은 알코올 중독자 모임과 같은 실용적인 ‘자조집단self-help group’에 참여할 뿐 공동의 행복을 위한 활동은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일자리가 불안정해지고 가정이 파괴되면서 개개인의 영달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어버린 점, 정치 현안과 사회 참여에 대한 관심이 이전 세대보다 낮았던 베이비붐 세대의 출현이 미국 시민 정신이 침체에 빠져든 원인으로 지목된다. ‘균형의 시대가 야망의 시대로 바뀐 것’(78쪽)이다. 호모 폴리티쿠스 vs. 호모 이코노미쿠스 한편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또 다른 제국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톈안먼 사태에서 보여준 중국인의 정치적 열정이 부의 획득에 대한 열정으로 대체되면서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정신이 중국 대륙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기반이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적 발전을 이룬 중국식 모델은 서양의 식자층 사이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경제적 발전이 민주주의를 유도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하버드대의 에드워드 글레이저)와 민주주의가 물질적인 번영의 원동력이 된다는 관점(MIT의 대런 애스모글루)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어떤 국가는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함께 성취하고 어떤 국가는 가난과 독재의 수렁에 빠져드는지에 대해 성찰한다. 해답은 민주주의의 첫 시작에 있다. 그 경험이 국민에게 어떻게 인식되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히틀러를 탄생시킨 바이마르공화국의 경우 민주주의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했던 반면 영국에서는 여론과 제도 속에 민주주의의 요소가 내재되어 있었다. 저자가 내린 결론은 호모 폴리티쿠스(정치적 인간)와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필연적 공존(165쪽)이다. 엄연히 논리와 입장이 다른 두 인간 유형이지만 정치와 경제는 톱니바퀴처럼 얽혀 있으며 둘 사이의 관계는 상호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 측면에서 호모 폴리티쿠스와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이란성 쌍둥이라는 옮긴이의 해석은 설득력을 갖는다. 인간 본성은 누구의 편인가 문화가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타인과의 상호 관계를 추구하려는 내재적인 성향 때문에 사회가 만들어진다. _214쪽 모든 인간 사회에는 협력을 권장하는 기관과 경쟁을 장려하는 기관이 존재한다. 저자가 반복해 언급하는 것처럼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전성시대에는 협력보다는 경쟁을 장려하는 기관이 득세했다. 무릇 모든 사회 현상에는 그 배후가 있는 법. 혹시 인간의 본성이 경쟁에 더 초점이 맞춰진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품어볼 만하다. 인간의 본성 자체가 신다윈설이 주장하듯이 경쟁에 더 깊은 뿌리를 둔 것일까?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전망했듯 세상은 이기주의가 무한 증식하는 방향으로 흐를 것인가? 저자는 경쟁과 협력 사이에는 아슬아슬한 균형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경쟁이 협력보다 더 본성에 가깝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단언한다. 헌혈센터 소장의 일화(8쪽)와 신뢰 게임(53~54쪽)이 그 예로 등장한다. 한 헌혈센터 소장이 헌혈 신청자의 수를 늘리기 위해 헌혈을 하면 돈을 준다는 광고를 낸다. 그런데 오히려 광고 전보다 헌혈자의 수가 줄어드는 결과가 발생했다. 자발적으로 헌혈함으로써 이행하는 도덕적인 가치가 금전적 보상에 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