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여섯 개의 환상 도서관 이야기 모든 책이 다 있는, 심지어 내가 미래에 집필할 책도 볼 수 있는 <가상 도서관>, 집 안을 하드커버 책으로 채워 버린 남자 이야기 <집안 도서관>, 지구상에 존재해 온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야간 도서관>, 영원히 책을 읽어야 하는 형벌이 기다리는 지옥의 이야기 <지옥 도서관>, 펼칠 때마다 새로운 책이 나오는 요상한 책 이야기 <초소형 도서관>, 하드커버 책만 소장하는 마니아의 아무리해도 죽지 않는 페이퍼백 책과의 혈투를 그린 <위대한 도서관>, 장르의 경계와 논리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섯 가지 메타 픽션들이 잘 차려진 만찬처럼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도서관은 토요일과 일요일에 문을 열지 않기 때문에 지금 가지 못한다는 것은 주말 내내 읽을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이고, 그것은 꽤나 우울한 일이다. 혼자 살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자유 시간을 어떻게든 채워야 했다. 오래전에 나는 독서가 텔레비전 앞에 앉아 감각을 멍하게 만드는 것보다 훨씬 유용하고 즐거운 일임을 깨달았다. - <야간 도서관> 중 각각의 단편들은 가공의 세계를 기반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환상은 지극히 일상적인 현실 속에서 느닷없이 만나게 된다. 발신이 불분명한 스팸 메일에 시달리는 작가라든지, 무료한 주말이 두려워 늦은 시간 도서관을 찾는 사람, 페이퍼백 책을 증오하는 하드커버 책 마니아 등은 우리의 다소 지질한 일상 속 모습을 대변한다. 이러한 주인공의 모습에 독자들은 스스로를 쉽게 투영하고 변변찮은 일상을 뒤흔드는 환상의 세계를 만나며 일탈 같은 짜릿하고도 신선한 자극을 받게 될 것이다. ◇ “책과 나, 이 지긋지긋한 애증의 관계” 책을 향한 갖가지 욕망들이 들끓는 환상의 세계 여섯 개의 도서관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 저마다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들이 마주치게 되는 환상의 세계는 그들이 욕망하는, 혹은 두려워하는 ‘무엇’이다. 미래에 집필할 책을 볼 수 있는 도서관은 자신이 계속해서 여러 권의 작품을 써낼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신인작가의 욕망을 알 수 있게 하고 우편함에서 자꾸만 나오는 근사한 책을 집안에 채워 만든 도서관은 청구서 외에도 누군가의 소식으로 우편함이 가득차길 바라는 소시민의 공허하고 소외된 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런가 하면 주말의 무료함이 두려워 책을 찾는 사람에게는 세상에 존재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이 나타난다. 세상과의 연결 고리를 바라는 그의 욕망이 드러나는 것이다. 보잘것없고 하찮게만 느껴지는 소시민의 삶은 가치있고 품위있는 상징물인 책에 대한 욕망과 연결되어 낱낱의 단편들이 따로 또 같이 하나의 그림을 만들고 있다. 게다가 이것은 작가 스스로의 욕망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미래에 쓸 자신의 작품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집안 가득 멋진 책들로 채우고 싶은 바람, 소설의 근간이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훔쳐보고 싶은 바람, 그리고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 영원히 지루한 책을 읽히게 하는 심술궂은 바람과 펼칠 때마다 새롭게 나타나는 단 하나뿐인 책을 자신의 작품으로 훔치고 싶은 불온한 바람까지 이것은 모두 집필에 고뇌하는 작가의 시니컬하면서도 익살스러운 욕망을 보는 듯하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마지막 챕터인 <위대한 도서관>에서 지금의 이 단편들을 음식으로 비유하여 자평하고 있는 대목이다. <가상 도서관>은 훌륭한 러시아식 샐러드의 향취가 풍겼다. 내 취향보다 마요네즈가 조금 더 들어간 것 같긴 했지만. <집안 도서관>은 국수가 들어간 진하고 영양가 풍부한 소고기 수프 같았다. 너무 뜨거워서 나는 숟가락으로 떠서 후후 불어 먹었다. <야간 도서관>은 속을 채운 고추 같은 맛이었다. 이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고기와 쌀의 비율이 딱 알맞게 들어가 있었다. <지옥의 도서관>은 훌륭한 체리 파이 맛이었다. 나는 디저트에 별로 신경을 쓰는 사람이 아니지만, 이건 예외로 칠 만했다. <초소형 도서관>은 크림을 넣은 커피였다. 나는 좀 더 가벼운 걸 좋아하지만, 사람이 지나치게 까다롭게 굴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다음에 뭐가 더 나올지 알 수 없었지만, 내 접시 위에는 페이퍼백 책의 한 장이 더 남아 있었다. <위대한 도서관>. 이미 배가 꽉 찼지만, 손을 안 대고 남겨놓고 싶지 않은 데다 맛이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한 입을 베어 물고 씹기 시작했다. 이 맛은 어딘가 친숙한 것 같았지만 이게 짭짤한 건지 매콤한 건지, 단 건지, 시큼한 건지 영 알 수가 없었다. 이 모든 맛을 한꺼번에 섞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 <위대한 도서관> 중 이처럼 마술적이고 환상적인 허구의 세계를 통해 현실을 자조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 때문에 《뉴욕타임즈》와 같은 영미권의 유명 매체에서는 그를 보르헤스, 칼비노와 비교하며 극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