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낙관

로런 벌랜트 · Social Science
58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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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어떤 대상이 오히려 더 나은 삶에 걸림돌이 될 때 바로 거기에 잔인한 낙관의 관계가 있다. 그 대상은 먹을 것일 수도 있고 사랑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좋은 삶에 대한 환상일 수도 있으며 정치적 기획일 수도 있다. … 이런 부류의 낙관적 관계가 본래부터 잔인한 것은 아니다. 낙관적 관계가 잔인해지는 건 애착의 대상이 애당초 그 애착을 형성하게 만든 목표를 달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방해가 되는 경우이다. 이 책은, 계층 상승과 낭만적 사랑의 대상이나 장면에서부터 정치적인 것 자체에 대한 욕망에 이르기까지, 잔인한 낙관의 여러 관계들을 살펴본다.

"우리가 사랑한 마법의 공간"

35주년 기념 재개봉, 극장에서 다시 만나요

왓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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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마법의 공간"

35주년 기념 재개봉, 극장에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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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감사의 글 서론: 현 시점의 정동 1장 잔인한 낙관 1. 낙관과 그 대상 / 2. 대상의 약속 / 3. 교환가치의 약속 / 4. 배움의 약속 2장 직관주의자들: 역사 그리고 정동적 사건 1. 우리가 지금 사는 방식: 정동, 매개, 이데올로기 / 2. 현재의 역사들 / 3. 정동 영역과 사건 4. 추락하는 자와 비명 지르는 자: 익명성과 트라우마 3장 더딘 죽음: 비만, 주권, 측면적 행위 주체성 1. 더딘 죽음과 주권 / 2. 사례라는 장르의 착상 / 3. 비만의 보험계리적 수사법 4. 분산된 인과관계에서 중단적 행위 주체성으로 / 5. 맺음말: 잔인하고 일상적인 자양분 4장 두 소녀, 뚱뚱이와 마른이 1. 별에 소원을 빌 때 / 2. 누군가가 소망을 말했다고? / 3. 맺음말: 트라우마 이후의 멜로드라마 5장 거의 유토피아, 거의 정상: <약속>과 <로제타>에 나타난 포스트포드주의 시대의 정동 1. 거의 …… / 2. 정신분석학, 윤리, 그리고 유아기 / 3. 아픔의 세계 6장 좋은 삶 이후, 답보 상태: <타임아웃>, <인력자원부>, 위태로운 현재 1. 언제나 지금: 상황, 제스처, 답보 상태 / 2. “약간 초조한 게 정상이야”: <인력자원부> 3. 당신은 왜 면제받아야 하죠?: <타임아웃> 7장 정치적인 것을 향한 욕망에 대해 1. 정동, 소음, 침묵, 저항: 주변 분위기로 형성되는 시민성 / 2. 소리로 전쟁을 느끼기 3. 녹음으로 기록된 침묵 / 4. 명백하게 불안정한 집단적 이행 시대의 예술 작품 5. 잔인한 낙관 그리고 정치적인 것에 대한 욕망 표지 이미지에 대해서: 옮긴이 해제: 로런 벌랜트의 정동 이론 미주 / 참고문헌 / 찾아보기

Description

“우리는 왜 자본주의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왜 우리는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관계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가?” 욕망하는 어떤 대상이 오히려 더 나은 삶에 걸림돌이 될 때 바로 거기에 잔인한 낙관의 관계가 있다. 그 대상은 먹을 것일 수도 있고 사랑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좋은 삶에 대한 환상일 수도 있으며 정치적 기획일 수도 있다. … 이런 부류의 낙관적 관계가 본래부터 잔인한 것은 아니다. 낙관적 관계가 잔인해지는 건 애착의 대상이 애당초 그 애착을 형성하게 만든 목표를 달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방해가 되는 경우이다. 이 책은, 계층 상승과 낭만적 사랑의 대상이나 장면에서부터 정치적인 것 자체에 대한 욕망에 이르기까지, 잔인한 낙관의 여러 관계들을 살펴본다. 1. 잔인한 낙관주의: 그대 아직도 꿈꾸는가 로런 벌랜트는 1980년대 이후 서구에서 전후의 사회민주주의적 약속이 후퇴하면서 만연했던 잔인한 낙관에 대해 설명한다. 오늘날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사회는 개인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는 기회를 더는 제공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계층 상승, 안정적인 직업, 정치적, 사회적 평등, 지속적인 친밀감 등 달성할 수 없는 좋은 삶에 대한 환상에 집착하고 있다. 서구 사회보다 한발 늦기는 했지만, 산업화를 통해 개인의 삶과 사회적 풍경을 급속히 변화시켜 왔던 한국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 우리는 점점 삶이 피폐해져 가고 있다고 느낀다. 물가는 자고 나면 올라가 있고, 상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문을 닫으며, 날씨는 계절을 잊게 하려는 듯 하루하루 급변한다. 하지만 얄궂게도 원하는 무언가를 얻기 어려워질수록 그것은 그만큼 ‘더 좋은’ 것이 되며, ‘좋은 삶’은 다가가기 어려운 정도에 비례해 환상이 된다. 무한 경쟁과 각자도생을 강요받는 가운데서도 수많은 이들이 ‘언젠가는 …’이라는 불특정한 미래에 그 환상을 투자하고 유지한다. 각자도생의 사회를 한탄하지만, 부가 더욱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되고 있음을 알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모두 부자가 되기를 여전히 꿈꾼다. 『잔인한 낙관』은 계층 상승과 낭만적 사랑의 대상이나 장면에서부터 정치적인 것 자체에 대한 욕망에 이르기까지, 잔인한 낙관의 여러 관계들을 살펴본다. 이를 통해, 좋은 삶에 대한 환상과 애착심이 ‘좋은 삶’을 향해 분투하는 개인을 어떻게 마모시키고 그것을 쟁취하려는 집단의 정치적 힘을 어떻게 부식시키는지 살펴본다. 이 책 내내 나는, 낙관적 애착심은 욕망의 대상/장면 자체가 낙관적 애착심을 품게 하는 바로 그 결핍[필요]의 충족에 장애물이 될 때 잔인해진다고 논의했다. 그러나 삶을 조직하는 것으로서의 낙관적 애착심이 지니는 위상 때문에, 그것이 유발하는 피해를 중재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규범적 공적 영역이 엘리트들의 행위 공간이며 이 공간이 이미 줄어들고 부서지고 평범한 시민들에게는 머나먼 공간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하더라도, 정치체의 구성원이 다시 정치체에 헌신하는 의식과 장면에 주기적으로 되돌아올 때, 이것은 잔인한 낙관의 관계가 될 수 있다. - 본문 중에서 2. 답보 상태: 아직도 왜 꿈에 매달리는가 나는 왜 부자가 되지 못하는가? 우리의 자녀는 왜 의사가 되지 못하는가? 누군가는 왜 법률가가 되지 못하는가? 왜 우리는 더 높이 올라가지 못하는가? 모두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부자는 부자들 사이에서 나는 것이고, 의사는 의사 집안의 가업이 된 지 오래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부자 되기를 욕망하는 것일까? 무엇이 우리를 현재의 장소에 붙들어 매는 것일까? 이 같은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잔인한 낙관』에서 채택하고 있는 접근법은 합리적 계산과 이성적 판단에 토대를 둔 합리적 개인을 근대적인 주체의 모습으로 상정해 왔던 기존의 접근법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서 출발한다. 말하자면, 기존의 문학/문화 비평 등은 이야기, 의미, 주장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비평가들은 시를 비롯한 문학작품 속 단어나 구절들을 찾아내고 탐구하며 이를 통해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와 주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주목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라면, 텍스트의 의미가 더 큰 사회적 정치적 배경 속에서 어떻게 위치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정동 이론은 우리의 세계가 이처럼 이야기들과 주장들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 분위기, 정서 등과 같은 비언어적 효과에 의해서도 형성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개인의 이성, 의지, 합리적 선택 등과 같은 기존의 주체관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잔인한 낙관의 현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몸을 통해 또는 몸과 함께 인지 작용에 영향을 미치는 ‘정동’에 주목해 오늘날 우리가 왜 여전히 ‘더 좋은 삶’이라는 낡은 환상에 매여 있는지 분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잔인한 낙관』에서 벌랜트가 주목하는 바는 바로 더 나은 삶에 대한 ‘애착’으로서의 ‘정동’이다. 즉 도래하지 않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낙관으로 인해 삶이 피폐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주체로 하여금 현재의 삶을 지탱하게 하는 것이 바로 더 나은 삶에 대한 ‘애착’이라는 ‘정동’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답보 상태는 한편으로 이처럼 목표에 더 이상 가까이 가지 못한 채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우리의 현재 상황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주체가 현재 속에서 삶을 지탱하게 만드는 정동의 기제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상실감과 불안정성이 계속해서 증가하는 답보 상태 속에서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답보 상태 속에서 상황을 이해하고 타개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부지런히 모으려 노력한다. 이는 사랑하는 대상을 얻지는 못하지만, 끊임없이 ‘썸’을 타거나, ‘어장을 관리’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언제든 자리가 생기면 들어갈 수 있도록 각종 자격증을 따게 하고, 언젠간 ‘따상’을 꿈꾸며 주식을 공부하고 계좌를 관리하도록 이끄는 시공간이기도 하다. 자기 성취는 불가능하지만, 그래서 더욱 자기 계발에 몰두하고 있는 오늘날의 모습, 그것이 바로 답보 상태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이 점에서 잔인한 낙관은 신자유주의 감정 통치술의 일부이자, 우리가 우리 시대에 스스로 적응하도록 애쓰게 하는 정동적 기제이다. 정말 잔인한 이야기이지만, 저자는 오늘날 바로 이런 ‘답보 상태’에 머무르는 것 자체가 이미 많은 이들에게는 일종의 희망 사항이 되었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점에서, 『잔인한 낙관』은 사람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자신의 억압을 원하는지에 대한 경험적 근거에 기반한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왜 좋은 삶이라는 관습적 환상 — 가령 커플이나 가족, 정치체제, 제도, 시장, 그리고 직장에서의 지속적인 호혜 관계 — 에 매달리는 것일까? 그런 것들이 불안정하고 취약하고 커다란 대가를 요하는 것이라는 증거가 넘쳐 나는데 말이다. - 본문 중에서 3. 측면적 행위성과 측면성의 정치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이 같은 잔인한 낙관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 한 가지 명확한 답은 없다. 우리는 더 나은 사회에서 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던 ‘정치’ 역시 잔인한 낙관의 관계 속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치(또는 정치적인 것)가 약속했던 대상(말하자면, 정권 교체)과 그 미래가 오히려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영위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벌랜트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 바로 측면적 행위성과 측면성의 정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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