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성장과 번영이라는 약속으로 정치권력과 대중을 사로잡고
전 세계를 장악한 문제적 경제학자들!
그 모험과 패배의 40년 역사를 파헤친 경제 저널리즘의 백미
이 책은 경제학설사보다는 《러시아 혁명사》에 더 가까운, 논쟁과 모험과 행동과 사회의 대변혁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활극과 같은 책이다.
1969년부터 2008년까지의 40년은 시장 자유주의를 내세운 일군의 경제학자들이 정치인들을 현혹시켜 권력을 장악하고 사회 정책과 전 세계 경제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 버린 ‘경제학자들의 반란의 시대’였다. 이 시기에 경제학자는 과세와 공공 지출을 제한하고 규제를 완화하고 세계화를 향한 길을 거침없이 열어젖혔다. 경제학자는 스스로 정책 입안자, 중앙은행 수장, 미국 재무장관이 되어 자신들의 이론에 따라 세계를 재주조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경제학자들은 성장을 약속했고 의도적으로 번영의 분배를 외면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2008년 그들이 쌓아 올린 바벨탑은 동시에 무너졌다. 그들은 자유 시장의 성공한 혁명가였을까, 거짓 예언자였을까?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태동부터 패배까지의 40년을 정밀 지도처럼 입체 추적한 이 책은 경제 저널리즘의 백미이며 자본주의의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흥미진진한 역사서이다.
골방의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세계를 장악했나
혁명가도 종교 지도자도 아닌 한 무리의 학자들이 불과 40년의 짧은 기간 동안 전 세계 수십억 인류의 경제적 처지와 노동 조건, 사회복지와 생활상, 심지어 사람들의 사고방식까지 심대하게 바꾸어 놓았다. 아주 먼 과거의 일도 아니고 바로 우리 앞 세대 혹은 우리 세대에 벌어진 드라마틱한 일대 격변이었다. 《경제학자의 시대》는 어떤 혁명보다 파장이 광범했고 어느 종교보다 사람들의 의식에 깊은 영향을 미친 이 격동의 시대를 정밀하게 조명한 흥미롭고 역동적인 경제 역사서이다.
《뉴욕타임스》 경제 및 비즈니스 분야 주필이기도 한 저자 빈야민 애펠바움은 1969년부터 2008년까지의 40년을 ‘경제학자의 시대(Economists’ Hour)’라고 규정한다. 1969년은 닉슨 대통령이 보수파 경제학의 이론가인 밀턴 프리드먼의 권고에 따라 징병제를 폐지하고 완전지원병제로 전환하기 위한 자문위원회를 꾸린 해이다. 그때까지 경제학의 주류였던 케인스의 시대가 저물었음을 상징하듯 시카고 대학의 보수파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타임》 지의 표지를 장식한 해이기도 하다. 이를 기점으로 시카고학파의 경제학은 점차 새로운 주류로 등장하여 세계를 뒤흔든다. 이로부터 40년 후인 2008년 10월 13일은 세계 금융 위기의 한복판에서 미국 9개 대형 은행의 책임자들이 줄줄이 재무부 회의실로 들어서던 날이다. 정부의 역할을 부인하고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고 설파하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백기투항일이었다.
이 40년의 기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골방의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정치권과 세계를 사로잡았을까. 그들이 약속했던 말은 어디까지 실현되었거나 실패했을까. 한마디로 그들은 성공한 혁명가인가, 거짓 예언자인가. 《경제학자의 시대》는 이 묵직하고 도저한 주제를 거침없이 파고든다.
왜 지난 40년(1969~2008)을 ‘경제학자의 시대’라 하는가
지금은 경제학자들이 학계는 물론 기업과 산업계, 법조계, 정치권과 공공 영역 곳곳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상황이 달랐다. 경제학자는 각종 기관에서 정책 결정권자들의 의사결정을 뒷받침할 자료나 만들어 내던 골방의 학자들에 불과했다.
미국의 중앙은행 수뇌부에는 은행가와 변호사, 하물며 아이오와주 양돈업자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제학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연준 의장은 증권 중개인이었는데 경제학자라는 부류를 무척 낮잡아 보았다. 언젠가 한 방문객에게 말했다. “연준에는 계량 경제학자 50명이 우리 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 건물 지하에 있죠. 거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 25쪽
그런데 1960년대 후반이 되자 이 같은 분위기는 극적으로 변한다. 1965년 말 즈음부터 경기가 과열 양상을 보이더니 인플레이션이 치솟았던 것이다. 온도 조절 장치로 온도를 맞추듯 정부가 경제를 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던 케인스주의의 위세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거꾸로 정부의 개입은 경제에 부작용만 일으킬 뿐이니 통화 정책 외의 모든 것을 시장에 완전히 맡기라는 주장이 점차 정부 운영에 자신감을 상실한 정치인들을 파고들었다.
이 흐름의 선두에 선 학자가 시카고 대학의 밀턴 프리드먼이었다. 1940년대와 1950년대 내내 케인스주의에 밀려 자신의 견해를 제대로 펼치지 못하던 프리드먼은 대학에 둥지를 틀고 통화와 금융을 주제로 한 연수회를 25년간 운영하면서 자신의 경제적 신념을 계승할 통화주의자 군대를 육성하고 있었다. 이른바 시카고학파의 태동이다. 이들은 이제 거침없이 무대 위로 올라섰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케인스의 이론이 “역사상 가장 크고 가장 길고 가장 넓게 나눈 번영”을 가져왔다며 칭찬했던 《타임》 지는 1969년 정반대의 이론을 개진하는 밀턴 프리드먼을 표지 인물로 올렸다. 이렇게 막이 오른 경제학자의 전성시대는 40년간 어떤 변화를 일으켰을까?
이 시기에 경제학자는 과세와 공공 지출을 제한하고, 규모가 큰 경제 부문에서 규제를 완화하고, 세계화를 향한 길을 마련해 나가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 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설득하여 징병제를 폐지했다. 연방 법원을 설득해 독점금지법을 적극 집행하지 못하도록 막았고, 나아가 정부를 설득해 규제가 그만 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내기 위해 인간 생명을 달러 가치로 환산했다. (중략) 경제학자는 또한 정책 입안자가 되었다. 1970년 경제학자 아서 F. 번스가 마틴에 이어 연준 의장이 되면서 볼커를 비롯한 경제학자가 중앙은행을 이끄는 시대가 열렸다. 2년 뒤인 1972년 조지 슐츠가 경제학자로는 최초로 재무장관이 되었다. 미국 정부가 임용한 경제학자 수가 1950년대 중반 2000여 명에서 1970년대 말 6000여 명 이상으로 크게 늘어났다. - 27쪽
프리드먼을 선두로 시장 자유주의와 보수적 신념으로 똘똘 뭉친 경제학자들은 미국과 영국에서 인플레이션에 골머리를 앓는 정치인들을 설득하며 정치 권력을 장악했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 정책 전반에 개입했다. 그들은 규제를 풀고 세금을 내렸다. 기업과 시장에는 무한한 자유를 주었다. 전 세계의 경제를 자신들의 신념대로 통합하고 변형시켰다. 또한 이들 경제학자는 제3세계 여러 나라의 학생들을 시카고 대학으로 불러들여 자신들의 경제 정책을 가르쳤다. 시카고보이즈라고 불린 이 유학생들은 남아메리카, 아시아, 동유럽의 개발도상국에서 시카고학파의 경제 정책을 전파했다.
(칠레의) 사회 보장 제도는 1980년대 초에 민영화되었다. 설계자였던 호세 피네라는 칠레의 2세대 자유 시장 경제학자였다. 그는 시카고보이즈에게 경제학을 배웠고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피노체트 정부에 들어와서 정부가 지원하는 칠레의 연금 제도를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임무를 맡았다. 피네라는 1981년 노동절에 새로운 연금 제도를 발표했다. (중략) 이 제도를 30개 이상의 나라에서 따라 했는데 대체로 남아메리카, 아시아, 동유럽의 개발도상국들이었다. - 456~457쪽
후일 신자유주의라고 명명된 전 세계의 거대한 변화는 이렇게 퍼져 나갔다.
논쟁과 모험, 행동과 사회 대변혁으로 이어진 거대한 역사
경제학자들의 활약상과 모험, 부침을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은 경제 이론서보다는 유장한 흐름의 역사서에 더 가깝다.
이 책은 무색의 경제 이론을 지루하게 늘어놓는 경제학설사가 아니다. 오히려 《러시아 혁명사》에 더 가까운, 논쟁과 모험과 행동과 사회의 대변혁으로 이어지는 거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