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일본 탐미문학의 거장’ 미시마 유키오가 선사하는 색다른 ‘연애소설’ 수려한 문장과 웃음 속에 숨겨진 ‘연애와 결혼’에 대한 신랄한 통찰!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애끓는 연심을 전하기 위해 공백의 편지지(혹은 카톡의 대화창)를 앞에 두고 밤새 고민만 하다 결국은 아무 말도 적지 못했던 경험이. 나에게 연애 고민을 털어놓는 짝사랑 상대에게 티 안 나게 ‘그 애는 아니야’라는 속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경험이. 연애가 아니라면, 이번 달 통장 잔고가 한 없이 제로에 수렴하는데 내일은 당장 월세를 내야하고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 달라 말은 해야겠지만 구차해 보이고 싶지는 않았던 그런 경험이. 마음은 간절한데 첫 문장을 꺼내기가 막막한 이런 때, 글쓰기의 달인이라면 어떻게 상대의 심금을 울리고,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글을 쓸까? 심지어 그 글쓰기(혹은 말하기)의 비법을 일려주는 사람이 일본 최고의 문장가 ‘미시마 유키오’라면? 제목만 보면 ‘편지 쓰는 법’을 알려주는 글쓰기 교본처럼 보이는 이 책은 일본을 대표하는 탐미문학의 거장, 《금각사》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쓴 ‘연애 소설’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소설은 세 커플의 연애를 다루고 있다. 이미 신물이 날 정도로 연애와 결혼생활을 경험하고 이제는 바삭 말라 건조하고 타성에 젖은 일상을 촉촉하게 적셔줄 새롭고 위험한 사랑을 꿈꾸는 ‘중년 커플의 연애’. 연애도 사랑도 미숙하고 서툴지만 두 사람이 꿈꾸는 미래만은 풋풋한 대지 위에 견고하게 쌓아나갈 가능성이 창창한 ‘젊은 커플의 연애’. 마지막으로 실제 여자와의 연애보다는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더 즐거운, 요즘말로 표현하면 ‘화면 속 2D와 사랑에 빠진 연애’. 글이 갖춰야 하는 궁극적 가치를 ‘격조와 기품’이라 말하던 탐미문학의 거장 미시마의 글치고는 너무나도 작고 통속적인 일상사를 다루며, 지나치게 솔직한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이 글은 평소 미시마가 강조하던 ‘격조와 기품’과는 거리가 있다. 미시마의 대표작인 《금각사》나 《가면의 고백》을 먼저 접하고, 그 글들의 분위기가 미시마의 이미지로 정착한 독자라면 과연 ‘어떤 상황과 분위기’ 속에서 이 글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할 것이다. ‘가장 통속적이며, 너무나도 미시마다운’ 《미시마 유키오의 편지교실》 옮긴이 최혜수는 이 글의 탄생 배경으로 미시마의 작품 활동 말기에 일본 사회에 유행했던 여성잡지와 여성잡지 속 연애상담 코너의 인기를 지적하고, 이 글을 한국의 독자에게 소개하는 의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미시마가 여성잡지에 연재한 소설들에 대한 평가는 그가 사비를 들여 조직한 우익 민병조직 ‘방패회’의 운영자금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쓴 대중소설 정도로 취급하는 평론이 대다수를 점한다. 그러나 미시마가 쓴 모든 중·장편 소설 중 3분의 1이 여성잡지에 연재되었음을 고려할 때, 이를 단순히 돈벌이 수단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는 것은 작가를 이해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이제껏 미시마 연구 자체가 남성 중심의 시선으로 이루어져 왔음을 시사한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2025년은 미시마가 태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자, 충격적인 죽음으로부터 55년이 되는 해이다. 긴 세월이 흐른 지금, 이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미시마 유키오’에게도 더 다양한 얼굴이 있음을 살펴봐야 할 때가 아닐까? 그 ‘《금각사》의 미시마 유키오’가 여성잡지 연재를 통해 여성 독자들의 일상적인 고민을 피부로 느끼고 함께 고민하며, 그들의 삶 속에 녹아들어 함께 호흡하려 한 흔적의 의미를, 이제는 좀 더 고민해 보아야 할 때이지 않을까? 일본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그중에서도 특히 미시마 유키오를 아끼고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이제는 미시마의 연애소설을 읽을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묻고 싶다. 만약 준비를 마쳤다면, 이 책 《미시마 유키오의 편지교실》은 미시마의 그 어떤 소설보다 이야기 자체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즐거운 연애담의 세계를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