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라. 너는 네 안의 그늘을 등불로 삼고,
너의 욕망을 바로 너 자신으로 받아들였다.”
찬란하게 솟구치는 화염 속으로 걸어가는 위태로운 연인
그들의 일그러진 사랑을 포착한 독보적인 시선
“미셸 우엘벡과 로맹 가리 스타일로 아니 에르노의 탐구를 새롭게 이어가는 작품”이라는 찬사와 함께 공쿠르상, 르노도상 등 프랑스 대표 문학상에 노미네이트되고 독창적이고 진보적인 소설에 수여하는 파리 리브고슈상을 수상한 마리아 푸르셰의 《불》이 비채에서 출간되었다. 《불》은 허울뿐인 가정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학교수 로르와 파리 최대 상업지구 라데팡스의 은행에서 고위직으로 일하는 클레망의 일그러진 사랑을 그려낸다. 두 화자를 번갈아 내세우며 펼쳐내는 상반된 문체와 일인칭과 이인칭을 넘나드는 시점 등 실험적인 형식에 더해, 여성의 욕망과 세대 담론 등 현시대의 첨예한 쟁점을 담아내며 프랑스 문단에 논쟁과 찬사를 동시에 일으켰다.
평론가들이 뽑은 가장 독창적이고 진보적인 소설, 파리 리브고슈상 수상
공쿠르상, 르노도상, 플로르상, 데상브르상 등 프랑스 대표 문학상 노미네이트
금기와 규율을 넘어 생의 심연을 조명하는 프랑스 문학의 정수
서로 다른 결핍과 뒤얽힌 욕망으로 파국을 맞이하는 연인의 이야기를 그려내 프랑스 문단에 화제를 일으킨 《불》이 한국 독자를 찾는다. 저자 마리아 푸르셰는 파리 제12대학교에서 사회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2006년부터 2014년까지 파리 제10대학교에서 문화사회학을 가르쳤다. 사회적 현안에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여온 저자의 날카로운 통찰력은 《불》에서 빛을 발한다. 《불》은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등 금기와 규율을 넘어 생의 심연을 조명해온 프랑스 문학의 정신을 충실히 계승하면서, 그 안에 여성의 성욕과 세대 담론, 자리를 잃은 남성성 등 오늘날 떠오르는 첨예한 쟁점을 자연스레 녹여냈다. 또한 두 화자를 번갈아 내세우면서 펼쳐낸 상반된 문체와 일인칭과 이인칭을 넘나드는 시점 등 치밀하고 입체적인 구조로 이룩한 뛰어난 작품성에 “미셸 우엘벡과 로맹 가리 스타일로 아니 에르노의 탐구를 새롭게 이어가는 작품” “간단하면서도 수천 가지 의미로 타오르는 다층적인 제목이 시사하듯, 조각칼로 세밀하게 빚어낸 아름다운 소설” 등의 찬사를 받았다. 본작은 2021년 평론가들이 뽑은 가장 독창적이고 진보적인 소설에 수여하는 파리 리브고슈상을 수상하였고, 같은 해 공쿠르상, 르노도상, 플로르상, 데상브르상 등 프랑스 대표 문학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활활 타오르다 소멸하고, 잿더미 속에서 새롭게 발견되기까지.
불은 사랑의 모든 형태를 보여준다.”
_마리아 푸르셰(출간 인터뷰에서)
메마른 시대에 작열하는 일그러진 사랑
“오랜 세월 쌓은 품위와 관습, 원칙, 규범, 정절……
너는 이 모든 걸 단 하나의 문장에 불태워버린다. 당신을 원해요.”
사회과학 교수인 로르는 반년 뒤에 열릴 심포지엄의 발언자로 초청하기 위해 은행가 클레망을 만난다. 속이 다 비칠 듯 새하얀 피부, 툭 불거진 혈관, 가느다란 손목…… 가냘픈 외형과 상반되는 단단한 목소리로 현시대의 쟁점을 날카롭게 짚어내는 그에게 로르는 순식간에 빠져든다. ‘얼른 눈 돌리지 못하겠니.’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죽은 엄마의 비난을 흘려들으며 로르는 치솟는 정염에 뛰어들고, 돌이킬 수 없는 불길이 두 남녀를 휘감는다.
신념을 가로막는 온갖 체제에 저항하는 첫째 딸과 한창 보살핌을 받아야 할 어린 둘째 딸,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을 억지로 이어가는 남편. 아등바등 지켜내던 가정을 로르가 스스로 허무는 동안, 클레망은 학대받던 어린 시절에서 비롯된 또 다른 결핍에 신음한다. 서로를 향한 일그러진 욕망이 뒤얽히는 가운데, 조금씩 드러나는 저열한 비밀. 찬란하게 솟구친 불길 뒤엔 언제나 까맣게 탄 재가 남듯, 연인은 파멸을 향해 전진한다.
끊임없이 일렁이며 불타오르는 사랑의 맨얼굴
파멸 끝에 사그라드는 오늘과 그 안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불꽃
타인을 향한 공감과 연대보다 생존을 위해 저마다의 외로운 투쟁을 이어가는 현대인들. 메마른 이 시대에 《불》은 퇴폐적인 사랑을 앞세워 인간 내면에 깊숙이 자리한 욕망의 불길을 되살려낸다. 미혼모로서 딸을 키우며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다 허울뿐인 가정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대학교수 로르와 학대받던 유년기로 인해 온전한 관계 맺기에 실패하는 은행가 클레망. 상대가 지닌 깊은 상처에 공감하며 이끌리고, 그 상처로 다시 멀어지며 파국을 맞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사랑이 왜 ‘불’에 비유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포근한 온기가 삶을 송두리째 태워버리는 재앙으로 번지기까지, 《불》은 사랑의 양면성을 빠짐없이 그려낸다.
로르와 클레망의 금지된 사랑에 《불》은 세대 담론을 겹쳐 더욱 복합적인 갈등 구조를 빚어낸다. 로르의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죽은 어머니의 목소리는 지나간 세대의 가부장적 질서를 재현하고, 사회 전반에 팽배한 차별을 향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시위를 주동하는 첫째 딸 베라는 다음 세대의 정신을 보여준다. 로르와 클레망이 파멸 끝에 사그라드는 지금의 시대를 상징한다면, 베라는 그 재 속에서 새롭게 피어오르는 또 다른 불꽃이다. 초라하게 저무는 오늘 뒤엔 어떤 빛깔의 새벽이 밝아올까. “마리아 푸르셰가 문학의 근원을 다시 불태웠다”라는 <르몽드>의 평가처럼, 《불》은 현실을 향해 엄숙한 비판을 가하는 굵직한 소설을 기다려온 독자들의 문학을 향한 애정에 열기를 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