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것보다 소비하는 것에 가치와 의미가 있는 시대. 소비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사회적인 역할이 없는 자유경쟁의 패배자로서, 복지로부터, 커뮤니티로부터, 그리고 ‘인간의 존엄’으로부터도 배제된다. 현재 더욱더 주목받고 있는 사회학의 권위자가, 현대에 만들어진 ‘새로운 빈곤층’의 실상과 그것을 낳은 현대사회의 실태를 해부한다.
빈곤은 이렇게 우리들 곁에 찾아온다
20세기 대표적인 석학으로 손꼽히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새로운 빈곤』이 출간되었다. 이 책의 주요한 테마는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빈곤문제이다. 특히 고용을 둘러싼 환경변화나 소비사회의 진전 등에 따른 현대의 새로운 유형인 ‘신빈곤층’을 다루고 있다.
현대사회가 잉태한 다양한 문제, 즉 세계화, 복지국가의 쇠퇴 등에 대처하는 바우만의 이 책은 근대 영국의 공업화의 전개와 전후해서 등장하는 ‘노동윤리’의 관점에서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라고 말했던, 일견 정당하게 보이는 ‘노동윤리’이지만, 그것은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슬쩍 바꿔치기 하고, 또한 인간관계를 파괴시켰다. 또한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에서 소비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로 전환됨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은 이제 선택조차 할 수 없는 ‘결함 있는 소비자’라는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기에 이르고, 더욱이 자본가나 노동조합의 요청에 응해서 장래 노동자의 생산에 기여하고 노동예비군을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역할을 했던 복지국가는 그 존재이유를 잃어간다. 선택을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소비사회와 복지국가는 서로 양립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새로운 시대의 가난한 사람 ‘뉴푸어’는 특히 냉전의 종결에 따라 소멸된 외부의 적에 대신하여 ‘발견된’ 언더그라운드로서, 즉 ‘빈곤의 범죄화(가난한 것은 범죄다)’에 따라 빈곤문제를 사회의 한쪽 구석으로 격리시키고, 보이지 않게 하려는 메커니즘이다. 이는 세계화 속에서 지구적인 규모에서의 ‘인간폐기물’ 발생의 메커니즘과 그 해결의 곤란함을 발생시킨다.
바우만이 제시하는 현대사회의 필독서
저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20세기 격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살아오면서 쉼 없이 연구하고 끊임없이 저술해 온, 포스트모더니즘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지성으로 손꼽힌다.
이 책은 2004년에 출간된 제2판이며, 본서의 초판은 1998년에 발행되었다. 개정을 하면서 제5장 ‘세계화 속의 노동과 잉여’가 덧붙여졌으며, 이것은 초판 발행 후의 급속한 글로벌화의 진전에 입각하여 쓰인 것이다. 초판의 발행이 1998년이긴 하지만, 오늘날 우리나라의 노동문제(특히 비정규 고용문제)와 그에 따라 생겨난 격차, 빈곤문제를 넓은 시야에서 다시 생각하게 하는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빈곤이라는 현재적인 테마를 근대의 초두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광대하고도 균형 있는 시각으로 수록하면서 대담하고 정밀한 분석을 진행하는 바우만의 사고 편력을 이 책에서 즐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