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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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와 철학자 모두에게 던지는 도전장 우리는 영혼과 육체가 하나인지 아닌지 묻는 것을 불필요한 것으로 무시할 수 있다. 이 말은 마치 왁스와 그 모양이 하나인지 아닌지 묻거나 흔히 말해서 한 사물의 질료와 질료를 구성하는 것이 하나인지 아닌지 묻는 것과 같다. ―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자들이 2000년 넘게 보잘 것 없는 기록을 남기는 데 그쳤고, 이제는 그들이 일상적으로 드러내는 도도한 우월함보다 겸손함을 보여 주는 것이 좋다. …… 철학자는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제시하려면 뇌에 관해 충분히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철학자는 과학적인 증거가 자신의 지론에 반하거나 그 지론이 남의 웃음거리가 될 때 그 지론을 어떻게 버릴 것인지에 대해서도 반드시 배워야만 한다. ― 프랜시스 크릭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1교시 언어 영역 B형 문제의 지문에 심신일원론과 심신이원론이 등장했다. 이원론을 세운 17세기의 데카르트에서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다 보면 노벨 생리 의학상 수상자(1962년)인 크릭이 『놀라운 가설(The Astonishing Hypothesis)』(1994년)에서 철학이 2000년 동안 그대로라고 썼던 도발적인 표현에 솔깃해진다. 사실 많은 신경 과학자들에게 철학은 경계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신경 과학자들의 사고 틀의 많은 부분이 17세기 형이상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아야 한다. 신경 과학적 지식을 발전시킨 개념적 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그 기원을 두고 있지만, 그 후 데카르트의 혁명적인 이론으로 인해 변형되었다. 인간 본성에 관한 사유는 과학 혁명 이후 두 갈래 길로 나뉘었으며 다양한 고찰과 반성을 거치고 있다 하더라도 신경계의 통합적 작용에 대한 관점 역시 거기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번에 ㈜사이언스북스에서 펴낸 『신경 과학의 철학(Philosophical Foundations of Neuroscience)』은 신경 과학과 철학이라는 두 학문의 권위자 두 사람의 협력을 통해 철학적 함의를 간과한 신경 과학의 탐구를 비판하는 책이다. 생리학자인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대학교의 맥스웰 베넷 교수와 인지 철학자인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피터 마이클 스티븐 해커 교수는 인간의 심적 속성이 뇌의 부분이 아닌 인간 전체의 속성이라고 주장한다. 두 저자는 마음과 몸의 이원성으로 표현되다가 최근 뇌와 몸의 이원성으로 표현되는 ‘데카르트적 혼동의 유산’을 떨쳐 버려야 한다고 강조하며 철학의 역사, 그리고 과학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 가장 근원적이고 개념적인 문제를 인식할 것을 촉구한다. 개념 정립에서 진정한 융합까지 근원에 대한 탐구 과학적 발전에 접근하는 첫 걸음은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개념적으로 혼동되어 있다면 잘못된 질문을 던질 것이다. ― 본문에서 정말 지난 2000년 동안 철학에서 어떤 진보도 이뤄지지 않았을까? 크릭을 비롯해 에덜먼과 제키 등의 실망은 주제의 본성에 대한 오해로 인한 것이다. 세계에 대한 지식에 기여하고 경험적 진리를 발견하는 면에서라면 철학에서는 진보가 있을 수 없다. 철학의 과제는 지식을 상세하게 서술하는 틀이 되는 개념적 도식을 명료하게 하는 데 있어 왔다. 인간의 감각과 지각, 인지, 사고, 정서, 의지, 그리고 의식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철학과 과학은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가? 일반적인 철학 논증을 통해 의식의 본성과 관련한 경험적 문제를 풀 수 없듯이 경험적 방법으로 의식의 본성과 관련한 개념적 문제를 풀 수 없다. 철학은 과학에 동화되는 대신 신경 과학자의 연구가 알려 주는 개념적 틀이 언제 섞이고 왜곡되었는지를 검증할 수 있다. 근원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신경 과학의 개념적 혼동을 지적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신경 과학에서 다뤄지는 철학적 문제 중에는 전체인 인간에 귀속시켜야만 할 심리학적 속성을 부분인 뇌에 귀속시키는 ‘신경 과학에서 전체―부분의 오류’가 있다. 인간이 지각하는 것은 ‘나’, 즉 자아의 몫이지, 나의 생물학적 부분인 뇌가 할 일이 아니다. 마음의 개념, 사람의 몸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사람의 개념과 관계하는지는 또한 개념적 물음이다. 우리는 사람이 마음을 갖고 있고 몸을 갖고 있다고 말할 때 여기에는 세 개의 다른 실재(사람, 마음, 몸)가 있는 것일까, 두 개의 실재(몸과 마음)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 하나의 실재, 사람만이 있는 것일까? 신체를 가진다는 것은 무엇인지, 사람이 몸을 가지지 않고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 또는 마음 없이 몸이 있을 수 있는지의 문제는 개념적 문제이다. 이것은 과학적 물음도 아니고, 과학적 수단으로 풀릴 수 있는 것도 아닌 만큼 개념의 영역을 개관하고 서술할 필요가 있다. 신경 과학의 철학적 문제와 분석 우리는 20세기 신경 과학의 성취에 찬사를 보내면서, 또 신경 과학 분야의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저술했다. …… 이 책이 자신의 연구와 관련된 심리학적 개념의 윤곽을 확인하려는 인지 신경 과학자들에게 개념적 참조 문헌으로 기여하기를 바란다. ― 본문에서 베넷과 해커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대니얼 데닛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론을 검증하고 반박하면서 신경 과학의 철학적 토대를 보여 주고 있다. 1부 「신경 과학의 철학적 문제: 역사와 개념의 근간」에서는 신경 과학에서 다뤄지는 철학적 문제들을 개괄하고 2부 「인간의 능력과 현대 신경 과학: 분석」에서는 인간의 심리학적 능력을 설명하는 신경 과학적 태도를 비판한다. 이 책에서는 특히 감각, 지각, 인지, 사고, 정서, 의지 작용과 관련해 신경 과학이 범한 개념적 혼동을 조명한다. 3부 「의식과 현대 신경 과학: 분석」에서는 의식에 대한 신경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의 견해를 비교, 분석하고 있다. 4부 「방법에 관해」는 신경 과학에서 사용하는 철학적 방법에 관한 것으로 환원주의와 방법론적 반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수세기 동안 자연 철학자들은 생명체들, 특히 인간의 특징적인 힘을 생물학적으로 정초하는 개념적 문제들을 해결하려 애썼다. 오늘날 인지 신경 과학이 당면한 개념적 어려움은 과거의 유산 속에서 새롭게 파악해 정리할 필요가 있다. 1부 신경 과학의 철학적 문제: 역사와 개념의 근간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감각 신경과 운동 신경을 구분한 갈레노스나 인간의 심적 기능을 뇌에 부여한 네메시우스를 위시한 후대 과학자들의 뇌실 이론은 베살리우스에게까지 영향을 남겼다. 페르넬은 생리학과 해부학을 구분하고 16세기에 신경 생리학 개념을 도입했으며 데카르트는 뇌실 대신 뇌와 마음이 상호 작용을 하는 송과선을 내세우며 오늘날 생리학과 신경 과학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 주었다. 피질 이론을 소개한 월리스 이후 브로카, 히치히 등, 페리어 등의 발견이 이어졌다. 영혼과 피질, 또는 마음과 뇌의 관계는 19세기 말 셰링턴의 실험을 통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또한 이 책에서는 에클스의 연결 뇌 이론과 펜필드의 최고 뇌 메커니즘 이론을 상세하게 검토하며 신데카르트주의의 오류를 짚어 주고 있다. 심리학적 속성들이 마음에 속한다고 본 1, 2세대 현대 뇌-신경 과학자들과 달리 3세대 신경 과학자들은 심리학적 속성들을 뇌 또는 뇌의 부분에 속한다는 입장을 취했는데 저자들은 이를 데카르트주의적이고 경험주의적인 착오로 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2부 인간의 능력과 현대 신경 과학: 분석 저자들은 신경 과학이 신비적 데카르트주의로 인한 신경 과학의 형태적 모순이나 개념적 혼동을 피하기 위해 개념적 도식을 강조한다. 감각과 지각의 경험적 본질에 초점을 맞춘 대부분의 신경 과학 연구에서 감각과 지각이라는 중요한 심리적 범주들의 개념을 명확히 해야 한다. 지식과 기억의 인지적 범주들 역시 마찬가지다. 지식은 상태가 아니고 능력과 유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