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드로잉을 위한 여행을 시작하다 시공간이 멈춘 그곳, 유럽에서 ≪시간을 멈추는 드로잉≫은 누구나 꿈꾸는 대기업에 입사해 밤샘야근에 시달리며 세상의 모든 불행을 혼자 짊어진 듯했던 사람이 아쉽지 않은 연봉과 성과급을 뒤로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다. 저자는 현실과의 타협을 변명 삼아 그림을 포기하고 쉼 없이 달려온 시간 속에 정작 자신의 행복이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간단한 드로잉 도구를 챙겨 유럽으로 떠났다. “여행 중에는 오랜 시간을 들여 정교하게 드로잉하기보다 전체적인 분위기나 피사체의 특징 위주로 묘사했다. 어떤 경우에는 시간이 없어서 펜이나 연필로 스케치만 하고 나중에 채색하기도 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마음속으로 정한 유럽의 풍경은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사진을 보면서 빠른 드로잉을 연습했다. 건물의 특징과 드로잉할 구도를 미리 고민했던 것이 현장에서 시간을 절약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됐다.” -15쪽 터키로 들어가서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오스트리아, 체코를 거쳐 다시 터키로 돌아오는 여정이 이어지는 동안 드로잉을 하기 위한 동선으로 움직이며 약 300여 컷의 드로잉을 그렸다. 현장에서 직접 그림을 그리다 보니 거의 완성된 그림에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하고 주변 부랑자들의 관심거리가 되어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단순히 유럽의 곳곳을 따라 그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수백, 수천 년에 걸쳐 여러 삶의 흔적이 두껍게 퇴적된 도시들을 이해하고자 그곳의 역사와 문화를 들여다보려고 노력했다. 고전의 아름다움과 현대의 세련미가 공존하는 유럽의 모습을 ≪시간을 멈추는 드로잉≫에서 새롭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여행 중에 있었던 특별한 에피소드들도 눈길을 끈다. 남다른 배려심으로 편안함을 선물해준 여행자, 호흡이 잘 맞아 즐거움을 선물해준 여행자, 로마에서 판테온을 드로잉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여행카페를 통해 사진을 건네준 여행자도 있었다. 혼자 떠난 여행이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한 장소는 더욱 의미가 있었다. “이스티클랄 거리에서 나눈 대화를 통해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 여행이 끝났을 때 서로 돌아갈 곳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녀는 2주간의 여행을 끝마친 뒤, 돌아갈 곳이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남겨두었던 빈자리로 정확히 찾아가겠지. 마음속에는 터키에서의 추억을 가득 담고 있겠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과 같은 장소에서 늘 만나던 이들과 다시 일상을 이어갈 것이다. 하지만 난 상황이 달랐다. (…) 여행 후 돌아간 그곳에 나를 위해 준비된 자리가 없다는 것. 비로소 닥쳐올 현실의 그림자가 무겁게 느껴졌다.” -468쪽 마지막 여행지였던 터키에서는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한 여행자와의 대화를 통해 앞으로 다가올 현실에 대한 무게감을 온몸으로 느끼기도 했다. 달리던 기차가 멈춰서고 비행기 시간을 놓쳤던 크고 작은 사건들과 스위스 마터호른에서 마주했던 완벽함 고요함 속에서 자신이 외면했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그 시간에 대한 의미는 제각기 다르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일상에서 시간은 내 삶의 주인공인 나를 스쳐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일상의 시간에 비해 여행 중 시간은 유난히 느리게 흘러 하루의 기억을 촘촘하게 채워준다. 여행은 느린 시간의 흐름으로 일상에서 멀어진 여행자의 무감각해졌던 감각을 하나하나 되살려준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남겨놓은 여행의 기록은 잊고 있었던 지난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고 앞으로의 여행을 계획하는 계기가 되어준다. ≪시간을 멈추는 드로잉≫에서 우리는 여행이 주는 행복을 느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