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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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린, 나는 당신의 장례식에 참석하기도, 당신의 재를 뿌리기도 싫다오. 우리는 둘 중 누구도 상대방보다 더 오래 살기를 원치 않으며, 서로 자주 이야기했듯이 다시 태어난다면 우리는 다시 같이 살아갈 것이오.” 불치병에 걸린 아내를 20여 년간 간호하다 생전에 함께 약속한 대로 파리 교외의 시골 마을의 작은 집에서 잠자듯 침대에 나란히 누워 오랜 삶을 자유의지로 마감했던 앙드레 고르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사상가이자 뛰어난 언론인이었다. 그는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 석학 장 폴 사르트르가 창간한 <레탕 모데른> 지(誌)의 주간이자 전문기자, 탐사취재의 대가로 명성을 날렸으며, <누벨 옵세르바퇴르>의 창간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고르는 1960년대 이후 신좌파의 주요 이론가로 활동하며 68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일자리 나누기와 최저임금제의 필요성을 역설한 선구적인 노동이론가이자 생태주의를 정립한 초기 이론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1980년대 이후 산업시대의 노동중심성이 종말을 고하고 글로벌 경제, 정보화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예견하였으며, 사르트르는 그를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라 평가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체성을 잃어버린 노동운동에 대한 통렬한 비판 이 책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은 1980년에 출간된 앙드레 고르의 저작이다. 그럼에도 시대를 뛰어넘는 예지와 사회문제를 냉철하게 분석하는 성찰로 점철되어 있어, 당대에 그가 왜 그토록 뛰어난 평가를 받았고,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추앙받고 있는지를 여실하게 증명해주고 있다. 이 책은 출간 이후 노동운동가와 수많은 사상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고, 아직까지도 노동 문제에 대한 비판서로 최고의 반열에 우뚝 서 있다. 이 책에서 고르는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위기를 고찰하며, 노동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생산관계와 생산수단의 폐기가 아닌 임금노동 자체의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이미 노동계급이 자본의 복제품으로서 지배질서 속에 편입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고르는 자본주의의 생산수단이 분할, 조직, 그리고 요구하거나 허용하는 과업의 등급화를 통해 지배의 수단이 되어버린다고 말한다. 군인들이 조직과 규칙의 양식을 송두리째 바꾸지 않는 한 군대를 장악할 수 없듯이, 노동계급 역시 자신을 구조화하고 기능적으로 분할하고 지배하는 생산수단을 바꿀 수는 없다. 만약 그 생산수단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 장악한다 하더라도 노동계급은 결국 똑같은 지배체제를 재생산하는 기능적 부르주아지가 될 것이다. 고르는 이 책이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라고 이야기한다. 고르는 마오이스트들, 신화적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그들의 원초적인 숭배, 중국 농민을 대상으로 마오쩌둥이 만들어낸 토지 몰수 전략을 도시화된 선진국에서 실현하려는 강변에 일침을 가한다. 그것은 천박한 마르크스주의가 귀결되어 나타난 자본주의의 사회민주화, 그리고 월급제 노동을 영광스럽게 떠받드는 행태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다. 고르는 이 책의 부제이기도 한 ‘사회주의를 넘어서’ 다다라야 할 공산주의의 진정한 모습과 그것에 이르지 못하고 시대가 갖고 있는 엉망진창의 시스템을 열거하며, 자본주의 안에서 사회적, 역사적으로 특유한 형태에 복속된 노동, 즉 일자리 노동, 상품으로서의 노동을 폐지하자고 강하게 주장한다. 고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이상 노동계급이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없음을 인정하며, 대신 비노동자, 노동시장 분화에 의해 주변화된 자, 노동할 수 없는 자, 자동화로 인해 직장을 잃은 자, 다시 말해 비계급을 혁명의 주체로 내세워 임금노동을 거부하고 자활노동을 창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 비계급은 노동의 소멸과정에 따라 생산현장을 떠나게 된 사람들 혹은 지적 노동의 산업화(자동화와 정보화)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에 못 미치는 일자리를 얻는 모든 사람들을 지칭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노동, 곧 노동의 존엄, 가치화, 사회적 효용, 욕망에 토대를 두었던 구(舊)사회가 해체되며 나타난 산물이다. 이들은 자본주의사회 내에서의 노동계급처럼 단결하는 존재도, 정치적 권력을 획득하기를 열망하는 존재도 아니다. 그들은 자유와 개인적인 고유한 공간을 가장 중요시하며, 바로 그러한 성격 때문에 자연스럽게 모순적인 사회 시스템을 해체하고 전복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