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치버의 일기

존 치버
924p
Where to buy
content
Rating Graph
Avg 4.4(15)
0.5
5
Rate
4.4
Average Rating
(15)
Comment
More
[광고]스탠드오일 보드배너_1안[광고]스탠드오일 보드배너_1안

세계문학사를 통틀어도 매우 희귀하고 유의미한 기록으로 꼽히는 <존 치버의 일기>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한국어판 924쪽, 방대한 분량의 이 일기는 존 치버가 1940년대 말부터 1982년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불과 며칠 전까지 35년간 써내려간 일기 중 일부이다. 존 치버는 평생 29권의 일기장을 남겼고, 그중 그의 삶을 대표할 만한 20분의 1가량의 일기들만이 선별되어 이 책에 실렸다. 존 치버는 노년에 이르러, 평생 가족들에게조차 신경증적으로 보여주길 꺼렸던 이 일기들을 도서관 사서에게 가져다주기도 하고 아들에게 꺼내 보이며, 누군가로부터의 이해와 인정을 애타게 갈구하는 듯했다. 그는 이 일기를 통해 무엇을 남기고 싶었을까. 이미 세인들로부터 충분히 기억할 만한 작가로 인정받은 그가 죽기 전, 무엇을 그토록 이해받고 싶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의 아들이 비로소 이 일기를 읽어나가기 시작했을 때, 존 치버는 왜 조용히 눈물을 흘렸을까. 여기 아주 가끔 구원받고 대부분의 시간을 절망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견뎌내야 했던 매일을 처절할 정도로 생생하고 집요하게 기록한 한 작가가 있다.

실사판 예약 구매 오픈 ☁️

~7/15까지, 단 일주일 간 누리는 더블 혜택!

왓챠 개별 구매

Rating Graph
Avg 4.4(15)
0.5
5

실사판 예약 구매 오픈 ☁️

~7/15까지, 단 일주일 간 누리는 더블 혜택!

왓챠 개별 구매

Author/Translator

Comment

3

Table of Contents

서문 벤저민 치버 _007 1940년대 후반~1950년대 _019 1960년대 _313 1970년대~1980년대 초반 _629 편집자의 말 로버트 고틀립 _913 옮긴이의 말 _919

Description

“가슴을 울리는 경이로운 작가노트, 한 가족의 연대기, 잔인할 정도로 솔직한 자서전, 존 치버의 미완성 소설…… 이 책을 그 무엇으로 읽어도 좋다. 바로 이것이 미국 현대문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혁신적인 문장이다.” _뉴욕 타임스 아버지는 소설가였다. 책상 위에는 언제나 여러 권의 노트가 있었다. 그러나 ‘그 특별한 노트’는 아버지가 주로 소설을 써내려가는 노란색 노트들과는 달랐다. 아버지 본인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그 노트에 손댈 수 없었다. ‘아무도 읽어서는 안 된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집안사람들에게 일종의 불문율이 되어 있었다. 노트가 쌓여갈수록 아버지는 점점 더 많은 이들로부터 위대한 작가, 문단의 존경받는 원로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스스로는 종종 이렇게 탄식했다. “나는 상표처럼 돼버렸어…… 콘플레이크나 시리얼처럼 말이야.” 그리고 어느 날, 아버지는 아들에게 노트를 건넨다. 아들은 물론 가족 중 그 누구도 평생 손댈 수 없었던 그 금기의 노트.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의 일기를 읽어달라고 말한다. “어떠니?” 아버지가 묻는다. “흥미로워요…… 그리고 아주 아름답고요.” 아들이 답한다. 아버지는 더, 좀더 읽어보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일기장에는, 어쩌면 아들의 입장에서는 악몽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끔찍하고 추잡하고 도저히 믿기 힘든 이야기들. 이게 내 아버지의 삶이라고? 아버지는 왜 이것을 나에게 보여주는 거지? 잠시 후 아들이 간신히 고개를 들었을 때, 아버지는 울고 있었다. ‘교외의 체호프’ ‘단편소설의 거장’으로 불리는 미국 소설가 존 치버의 이야기이다. 세계문학사를 통틀어도 매우 희귀하고 유의미한 기록으로 꼽히는 『존 치버의 일기』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한국어판 924쪽, 방대한 분량의 이 일기는 존 치버가 1940년대 말부터 1982년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불과 며칠 전까지 35년간 써내려간 일기 중 일부이다. 존 치버는 평생 29권의 일기장을 남겼고, 그중 그의 삶을 대표할 만한 20분의 1가량의 일기들만이 선별되어 이 책에 실렸다. 존 치버는 노년에 이르러, 평생 가족들에게조차 신경증적으로 보여주길 꺼렸던 이 일기들을 도서관 사서에게 가져다주기도 하고 아들에게 꺼내 보이며, 누군가로부터의 이해와 인정을 애타게 갈구하는 듯했다. 그는 이 일기를 통해 무엇을 남기고 싶었을까. 이미 세인들로부터 충분히 기억할 만한 작가로 인정받은 그가 죽기 전, 무엇을 그토록 이해받고 싶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의 아들이 비로소 이 일기를 읽어나가기 시작했을 때, 존 치버는 왜 조용히 눈물을 흘렸을까. 여기 아주 가끔 구원받고 대부분의 시간을 절망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견뎌내야 했던 매일을 처절할 정도로 생생하고 집요하게 기록한 한 작가가 있다. 완벽한 작품에 이르기 위한 한 소설가의 투쟁의 기록, 한 남자의 상처투성이 인생을 위한 연습장 일기 속의 아버지는 (…) 그렇게 재치 있고 매력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일기의 내용은 침울한데다 자주 천박했다. 일기엔 동성애에 관한 내용이 아주 많았다. (…) 아버지가 지니고 있었던 양성애적인 면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아버지가 지녔던 그와 같은 배반의 범위를 알고 있었을 뿐이다. 아버지 내면의 인생에 깃들어 있던 분명한 절망을, 아버지의 통찰력에 담겨 있던 냉소적인 본성을 예상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콘플레이크가 되는 일에 큰 관심을 가졌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아침식사 메뉴인 콘플레이크이기 이전에 작가였다. 아버지는 또 한 남자이기 이전에 작가였다. _벤저민 치버의 서문에서 존 치버의 아들 벤저민 치버는 아버지의 일기를 읽어내려가며 크게 놀라게 된다. 그 일기는 잔인할 정도로 솔직하고도 의외의 내용들로 가득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소설가 존 치버는 교외에서 개를 키우며 가족들과 단란하게 살아가고, 일부일처제를 열렬히 옹호하며 중산층의 평범한 삶을 누리면서 자신과 비슷한 이웃들의 삶을 예리하게 응시하는 ‘영국 신사’와도 같은 이미지의 작가였다. 그러나 일기장 속의 남자는 여기저기 망가져 있었고 위태로워 보였다. 동성애라는 단어를 듣게 될 때마다 나의 세계는 둘로 쪼개지는 듯하다. _1966년의 일기에서 존 치버는 양성애자였다. 그는 자신의 양성애 성향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고 깊은 회의감에 빠지면서도, 끊임없이 남자들과 육체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 앞에서는 일부일처제를 지지한다고 밝히곤 했다. 그는 아들이 자신의 양성애 성향을 선천적으로 물려받았을까봐 두려워하고 경계했다. 자신의 ‘힘든 성향’이 아들에게 물려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때는 모든 미국인들이 동성애를 걱정하던 해였다. 물론 다른 것들도 걱정하긴 했지만 그들의 그 다른 걱정은 출판되고, 논의되고, 또 사람들에게 환기되었던 반면, 동성애에 대한 우려는 말해지지 않고 어둠 속에만 잠겨 있었다. 그 사람이? 그가 그랬을까? 그들이? 내가? 내가 그럴 수 있을까? _1959년의 일기에서 그가 아내 메리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내는 존 치버가 “인생에서 알게 된 모든 것”이었다. 그는 아내와의 평화로운 결혼생활과 아이들에게 제공할 안정적인 환경이 계속 유지되길 꿈꿨지만, 결혼생활은 매일 서로를 조금씩 허물어뜨리는 전쟁과도 같았다. 최근 며칠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적어봤자 무슨 의미가 있으랴. 화요일에 우리는 연인이었고 수요일에는 전사(戰士)였다. 난 미친놈이라는 소리도 들었는데 심지어 애정 어린 행동을 할 때도 그랬다. 메리는 집을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이는 이번주에만 두번째다. 오늘 저녁식사를 하던 중 앞으로 내가 잊어야 하고 또 다시는 언급하게 되지 않을 말을 메리로부터 들었다. “여자에게 더 나쁜 일은 뭘까? 전립선에 문제가 있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 아니면 동성애자와 결혼하는 것?” _1970년의 일기에서 그의 단편소설에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부부가 등장해 고요한 파국에 이르는 장면들이 유난히 많은 것은 이러한 존 치버의 실제 결혼생활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1975년 지독한 알코올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요양소에 머물렀던 시간들도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가 스스로 요양소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제불능의 알코올중독자였다는 사실은, 교도소라는 폐쇄된 공간을 배경으로 인간성의 극치를 보여준 걸작 『팔코너』를 낳았지만, 그의 인생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였다. 그는 요양소에서 갇혀서도 일기를 쓴다. 금단증상과 이 요양소를 벗어나는 순간 다시 술을 마시게 될 스스로에 대한 두려움과 환멸에 사로잡힌 채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 치버는 계속 썼다. 그러니, “인생이란 얼마나 불가해한가” 어둠 속에 벌거벗은 채 앉아 있는 한 작가의 초상 존 치버는 ‘교외의 체호프’라는 낭만적인 별칭으로 불려왔지만, 이웃들의 삶을 저 높은 곳에서 조망하고 관조하는 작가는 아니었다. 자기분열과 갈등의 한복판에서, 치버는 너무나 많은 고통을 받고 그 속에서 몸부림치며 살아간 작가였다. 외로움에 뼈가 저리고 그래서 남녀불문 끝없이 사랑을 찾아다니며, 다른 작가들을 질투하기도 하고 원고료와 출판사들의 관심을 갈구하던 작은 인간이었다. 그는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간 존 업다이크, 헤밍웨이 등을 동경하면서도 강렬한 경쟁심을 느꼈다. 심지어 소설가 필립 로스가 치버의 장편소설 『팔코너』를 잘 읽었다고 지나가는 말로 칭찬하고는, 그에게 곧바로 업다이크의 전화번호를 좀 알려달라고 말하자

Collections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