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은 진리'라는 고정관념 날려버리기
미국 모 방송사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55%가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미국이 보수적인 기독교 국가라는 사실은 차치하고라도, 진화론에 아직까지도 주장 또는 이론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론’을 떼지 못하는 걸 보면 이 여론조사결과에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과학저널리스트이자 이 책의 저자인 외르크 치틀라우는 다윈진화론의 핵심인 적자생존, 자연선택 등에 소위 ‘위배되는’ 실제 사례들을 동물의 세계에서 뽑아내 진화론이 과연 생물계에 통용될 수 있는 진리인가라는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우선 다양한 종의 생물이 생겨나는 이유는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압박 때문’이라는 다윈의 주장은 생물학자 굴릭이 하와이 섬에서 목격한 아카티넬라의 다양성을 통해 무참히 깨진다. 굴릭은 하와이의 숲 속에서 아카티넬라를 보고 그만 놀라고 말았다. 220여 종의 아카티넬라들이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 이 섬의 기후가 워낙 일정해 특정 종류의 식물들만 자라고 있었음을 감안해볼 때 아카티넬라 종의 다양성은 다윈의 주장에 반한다.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소멸한다’는 적자생존 역시 이스라엘의 자하비 부부 과학자의 관찰로 신빙성을 잃는다. 이들 부부 과학자는 꼬리치레들이 무리의 우두머리를 뽑는 독특한 방식에 주목했다. 이 새들은 가장 목소리 크고 힘세고 용감하고 짝짓기 욕구가 왕성한 구성원을 선택하는 대신, 가장 친절하고 자기희생적인 동료를 우두머리로 추대했던 것. 실제로 사해 연안에서 이들 부부는 심지어 다리를 다친 늙은 새가 무리를 이끄는 것도 발견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다윈은 모든 생물학적 종이 생산하는 후손에게서는 돌연변이가 나타나는데 이를 통해 환경의 요구에 적합하게 바뀐 개체들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개체는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이를 반박할 증거로 저자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한 연구팀이 장장 25년에 걸쳐 실시한 실험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고령에 가임능력이 상승하거나 먹이부족에 잘 견디는 유전형질을 지닌 초파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형질이 초파리의 유전자에 확실히 뿌리내리도록 약 100세대를 거친 다음, 차후 50세대 동안 사육환경이 아닌 자연환경에서 살아가도록 방출했다. 그러자 자연환경에서는 사육된 형질이 대부분 사라졌다. 이는 종족보존에 유리한 돌연변이는 후손에게 전해진다는 다윈의 자연선택에 반한다.
저자는 그동안 각 분야의 과학자들이 조사해온 다양한 동물의 사례들을 통해 다윈의 진화론을 곳곳에서 반박하고 있다. 이 책은 진화론에 상관없이 제멋대로 살아가는 동물들의 생태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이다.
적자생존에 하이킥을 날리며 유유자적 살아가는 동물들
물개는 하필이면 바다의 푸른빛을 못 보는 색맹이고, 수사슴은 너무 큰 뿔 때문에 나뭇가지에 걸려 버둥거린다. 알바트로스는 착륙하다가 자주 목이 부러지고, 황새는 툭하면 조강지처를 버리고 이혼하며 펭귄은 여전히 짧은 다리로 뒤뚱거리며 걷는다. 이들은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다윈의 적자생존을 비웃으며 꿋꿋하게 살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이자 과학저널리스트인 외르크 치틀라우는 이런 의문점들을 탐구해, 많은 종의 동물들이 어떻게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행운을 누릴 수 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한다. 또한 그는 결함투성이 호모 사피엔스에게도 확대경을 들이댄다.
다윈 진화론? 다윈 쇼크!
오직 강자만이 살아남고 약자는 멸종할 수밖에 없다는 믿음. 1831년 찰스 다윈이 전설적인 탐사선 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 제도에 발을 내디딘 이후, 진화론은 동물의 왕국은 물론 인간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돼 권력욕과 폭력을 강자의 권리로 포장해왔다. 또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이 세상에서 곧 사라져야 할 패배자들의 이별가쯤으로 축소?왜곡시키는 방편이 되어 왔다. 그러나 인류가 오로지 적자생존의 원칙에 따라 행동했다면 도덕, 철학, 미술, 음악처럼 비자연적인 현상은 물론이고 의료보험 같은 사회제도도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디오게네스 같은 인물이 통 속에 들어앉은 채 알렉산더 대왕에게 해를 가리지 말고 비키라고 큰소리를 쳐댄 일화 역시 역사에서 삭제되지 않았을까? 그뿐만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건대 인간은 스스로는 물론 지구 전체까지 파멸로 끌고 갈 수 있는 파괴 충동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인간도 다윈이 말하는 진화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다른 생명체에게도 이와 비슷한 움직임이 있지 않을까?
제멋대로 사는 세계, 동물의 왕국
한번 상상해보라. 남편과 아내가 각자 겨울여행을 떠났다. 아내가 집에 돌아오니 남편은 없고 엉뚱한 침입자가 들어와 있다. 아뿔싸! 아내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이 깡패 같은 남자와 결혼해버린다. 며칠 후 남편이 돌아와서 침입자와 한판 싸움을 벌이는데 아내는 아무 생각 없이 구경만 한다. 싸움에 진 남편은 옆집으로 거처를 옮긴 후에 매일같이 아내를 불러대나 아내는 깡패를 새 애인으로 삼고 아무 일 없었던 듯 잘 지낸다. 마치 싸구려 드라마의 줄거리 같지만 이게 바로 우리가 기품 있다고 생각하는 황새의 일상이다.
종족보존이나 적자생존과 같은 개념에 무관한, 동물들의 제멋대로 살아가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주유기를 상대로 화려한 꼬리를 펼치며 구애하는 공작, 하필이면 독이 든 먹이를 즐겨먹는 가터얼룩뱀 등 저자는 다윈의 진화론대로 동물의 왕국이 꾸려지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적자생존과 같은 틀로 동물들을 바라보려는 생각일랑 던져버리라고 위트와 유머를 섞어가며 말한다. 그리고 각각의 동물 그 자체를 보라면서 욕구를 채우기 위해 파트너가 죽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라톤 섹스를 하는 무당벌레의 엽기적 행각, 순간가속의 대가이지만 지구력이 보잘것없어서 잡은 먹잇감을 다른 맹수가 채가는 걸 보고 있어야만 하는 치타를 우리에게 들이민다. 또 영양가도 없고 소화도 안 되는 죽순을 하루 종일 먹어야 하는 탓에 짝짓기에 무관심한 판다, 거저 잡을 수 있는 먹이를 놔두고 잡기 힘든 대왕오징어를 굳이 사냥하는 향유고래 등 다양한 동물들이 다윈의 적자생존을 비웃으며 살아가는 특이하고도 기이한 생태를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