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앞에 두고 나눈 인터뷰,
인터뷰 이후에 만들거나 고른 노래
편집자들은 인터뷰에 앞서 뮤지션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사진들 중 열 장 정도를 골라 가져와 달라고 하였다. 사진을 함께 보며 뮤지션들이 이야기를 들려 주고, 편집자들이 추가적인 질문을 통해 이야기를 이어 가는 것으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뮤지션들이 고르고 이야기한 사진들은 인터뷰와 함께 책에 수록되었다. 독자들은 사진을 보며 함께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또한 인터뷰 이후 뮤지션들은 인터뷰를 통해 다시 바라보게 된 자신의 삶을 주제로 곡을 만들어 주었다. 세 명의 뮤지션은 새로 곡을 만들어 녹음하였고, 두 명의 뮤지션은 써 두었던 곡 중 이번 인터뷰의 주제가 가 닿는 곡들을 골라 녹음하였다. ‘다섯 싱어송라이터의 말과 노래로 기록한 ‘나’의 시공간’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야기, 멀고도 가까운>은 참여 싱어송라이터들의 옛날 사진들이 함께 실린 인터뷰집, 그리고 신곡으로 구성된 컴필레이션 음반으로 구성된다. 이번 음반에서는 신승은, 이랑, 성진영, 슬릭, 이호의 신곡들과 함께 온라인 음원으로는 공개되지 않는 각 곡의 데모 버전도 함께 수록된다.
또한 뮤지션들이 각자 곡을 녹음하여 수록하는 일반적인 컴필레이션 음반의 제작 방식과 달리, <이야기, 멀고도 가까운> 컴필레이션 음반에 수록된 다섯 뮤지션의 곡들은 모두 레코딩스튜디오 ‘스튜디오 블루’에서 함께 소통하며 곡을 녹음하였다. 각자 다른 색깔을 가진 뮤지션들의 작업을 하나의 음반으로 어우러지도록 담아내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트랙 순서는 곡의 주제와 편곡 방식, 분위기에 따라 신승은 <가스등>, 이랑 <우리의 방>, 성진영 <꿈>, 슬릭 <무제>, 이호 <까만 옷을 입은 아이>로 배치하였고, 책의 목차 또한 트랙 순서를 따랐다.
신승은과 이랑의 곡은 ‘장소’라는 주제로 묶인다. 스스로의 세계를 만들고 독립된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신승은이 담담한 목소리와 기타, 콘트라베이스가 어우러진 <가스등>으로 자신의 집을 갖고 싶었던 마음을 노래하였다면, 이랑은 겹겹이 쌓은 코러스가 돋보이는 <우리의 방>으로 ‘자기만의 방과 돈’이 절실한 여성들의 연대를 그렸다. 성진영의 곡은 자신이 바라는 삶의 태도에 관한 노래다. 여유를 잃지 않고 살아가고픈 마음을 <꿈>에 담아 통기타와 함께 특유의 맑은 목소리로 노래했다. 슬릭은 이름붙이지 못했던 자신의 슬픔에 대한 이야기를 제목이 없는 곡, <무제>에 담았다. 허밍으로 된 훅(hook)과 함께, 지나온 시간들과 지금의 자신을 말하는 슬릭의 랩이 단단하게 들린다. 이호는 첼로와 기타 선율, 깊은 보컬의 어우러짐이 돋보이는 <까만 옷을 입은 아이>로 자신을 숨기고 타인의 시선에 맞추어야 했던 시간들을 까만 원피스를 좋아하던 아이의 이야기에 담았다. ‘나’를 찾기 위해 지나온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슬릭과 이호의 곡은 그 시간들을 지나온 이들과 여전히 지나고 있는 이들을 다독이며 응원한다.
Track 1. 가스등
Chapter 1. 신승은, 우리의 눈물은 닮아 있어
“남성적, 여성적이라고 규정지어 놓지 않은 것들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신승은은 자신이 집과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시기에 만들었던 <가스등>이라는 노래로 참여하였다. 신승은의 낮고 담담한 목소리와 나일론 기타의 스트럼이 묵직하고도 익살스러운 콘트라베이스 사운드와 잘 어울리는 곡이다. 자신이 속해 있던 세계가 자신의 목소리를 부정할 때, 신승은은 담담히 자신을 이야기한다. <가스등>을 듣는 이들은 각자가 자신만의 장소를 갖게 된 날을, 그 집에서 친구와 소주 한 잔 기울이던 따듯하고 고마운 기억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신승은은 인터뷰에서 ‘가스등’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 준다. 이 외에도 신승은 특유의 낮은 목소리에 얽힌 이야기들도 들어 볼 수 있다. 신승은이 어린 시절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들려 준 이야기는 함께 살았던 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였다. 장난꾸러기에 액션영화를 좋아하시고 ‘갱스터 스타일’의 입담을 가졌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신승은이 구사하는 유머와 농담, 농담을 할 때의 장난스런 눈빛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추측할 수 있다.
Track 2. 우리의 방
Chapter 2. 이랑, 경계를 넘는 새처럼
“자기만의 방도 좋지만 누군가 한 명이 있어 주는 게 진짜 좋은 것 같아요”
이랑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고 만든 곡 <우리의 방>으로 참여하였다.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만드는 이랑이 노래하는 ‘자기만의 방’이 ‘우리’의 방인 것은 더욱 특별하다. ‘나’들의 이야기가 겹겹이 쌓아올린 코러스와 함께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듯하다. 이랑의 공연에서 많은 ‘나’들과 함께 부르고 싶어지는 곡이다.
이랑은 인터뷰에서 자신이 어렸을 때 살았던 집과 방에 관해 그림을 그리면서 이야기해 주었다. 이랑이 기억하는 최초의 집부터 독립하기 전까지 살았던 집들에 얽힌 귀엽고 사소한 에피소드부터 내밀한 상처에 대한 기억까지 가만가만 들어 볼 수 있다. 가족과 함께 살았던 집과 방에서의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랑이 예술가이자 독립된 하나의 인간으로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애써 왔던 이후의 시간들에 연결된다. 지금까지는 ‘다른 세상’을 꿈꾸는 이야기들을 더 많이 했다면, 이제부터는 자신이 예민했던 시기에 영향을 준 것들에 대해 더 이야기해 보고 싶다고 이랑은 말한다. ‘벌새처럼 날아서’ 가 보고 싶다는 그의 다음 이야기가 벌써 기다려진다.
Track 3. 꿈
Chapter 3. 성진영, 나무를 닮고 싶은
“잃고 싶지 않은 게 마음의 여유였어요”
성진영은 자신이 바라는 삶의 태도를 <꿈>이라는 제목의 곡에 담았다. 커다란 나무가 창밖으로 보이는 작은 방에서 소박하지만 소중한 꿈을 노래하는 음악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잔잔한 바람이 나뭇잎을 어루만지는 듯한 멜로디를 따라 왠지 가벼운 산책을 나서고 싶어지는 곡이다. ‘새처럼 자유롭게, 풀잎처럼 여유롭게, 나무처럼 조용하고 단단하게’ 살고 싶다 노래하는 그가 바라는 것은 ‘낮잠과 늦잠,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삶이다. 그의 시선은 늘 자신이 사는 동네 공원이나 골목, 콘크리트 사이에 핀 꽃과 같은 작은 곳에 가 닿아 있다.
성취지향적이지 않은, 작고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것이 오히려 어려운 일로 여겨지는 사회이다. 성진영의 부모님은 그가 선택한 삶을 줄곧 믿고 지지해 주었다. 그래서인지 성진영의 인터뷰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서로 다른 성향의 두 분이 어떻게 만나 조화롭게 살고 계신지, 그리고 두 분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요즈음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는 그의 생각 어딘가에 낙천적이고도 단단한 나무 같을 그의 부모님의 지혜가 자리잡고 있을 것 같다.
Track 4. 무제
Chapter 4. 슬릭, 이름 붙이지 못했던 것들
“여기에 내 생의 슬픔이 다 들어 있네”
슬릭은 이번 앨범에 제목이 없는 곡으로 참여하였다. 비어 있는 제목의 칸은 슬릭이 자신의 슬픔에 이름 붙이지 못했던 시간들에 대한, 그 시간들을 지나온 자신에 대한 은유이기도 할 것이다. 비어 있는 칸을 채우기 위해 ‘무제’라 적는다. 그리고 ‘무제’라는 글자는 다시 이 제목 없는 곡의 제목이 된다. 슬릭은 자신의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찾고, 다시 그 언어로 여전히 그 시간들을 지나가고 있는 사람들과, 각자의 속도대로 해나가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한다. 슬릭은 이들과 연대하며 곁이 되려 한다. ‘이제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