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로 인간의 윤곽을 그려낸 호메로스.
그가 그린 그리스인은 ‘인간’의 표본이었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에세이 작가인 샤를 페기는 2천 년도 더 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 대해 “호메로스는 오늘 아침에 읽어도 새롭다. 어쩌면 오늘 신문만큼 낡은 게 없을지 모른다.”고 표현했다.
이 책은 프랑스 라디오 방송국인 <프랑스 앵테르>에서 여름을 맞아 야심작으로 기획한 <OOO와 함께하는 여름> 시리즈의 하나로 진행된 ‘호메로스’ 편을 출간한 것이다. 이 《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은 프랑스에서 출간된 지 3일 만에 초판 3만 부가 매진되고 2018년 그해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팔린 에세이이자 전 분야 베스트셀러 6위에 오를 정도로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이 책이 독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데는 작가이자 모험가인 저자 실뱅 테송의 인기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노숙 인생 Une vie ? coucher dehors》으로 2009년 중편소설 부문 공쿠르 상과 아카데미 프랑세즈 상을, 《시베리아 숲속에서 Dans les for?ts de Sib?rie》로 2011년 에세이 부문 메디치 상을 수상한 작가이면서 일찍부터 극한 조건의 여행과 탐험을 일삼아온 그는 지구상에 얼마 남지 않은 모험가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서도 키클라데스 제도의 섬에 틀어박혀 에게해 해변과 햇빛, 파도거품, 바람과 함께 지내며 그곳의 정기를 느껴 보고서야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물질적 본질에 다가설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테송은 이 책의 머리말에서 “몇 달 동안 나는 호메로스의 리듬에 맞춰 숨 쉬었고, 시의 운각韻脚을 들었으며, 전투와 항해를 꿈꾸었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더 잘 사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2,500년 전 에게해의 자갈밭에 던져진(혹은 상륙한) 한 시인이, 몇몇 사상가가, 철학자들이 세상에 내놓은 가르침이 이토록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무뎌지지 않았”다는 것에 감탄한다.
호메로스가 두 권의 책에서 묘사한 전쟁과 인간의 탐욕과 자연의 분노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호메로스는 어떤 인간이기에, 그 옛날에, 그토록 예리하게, 우리가 아직 되지도 않은 상태에 관해 얘기할 수 있었을까? 2,500년 묵은 그 이야기들은 어찌하여 오늘날에도 이토록 친숙하게 울리는 걸까?
테송은 “몇 편의 노래로 인간의 윤곽을 그려낸 것”이야말로 호메로스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것은 “호메로스 이후로 아무도 다시 하지 못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호메로스를 둘러싼 그런저런 논란에 끼느니 차라리 그의 시에 빠져들어 이따금 성경의 시편을 암송하듯 그 시들을 암송해볼 것을 우리에게 권한다. 그러면 누구라도 거기서 자기 시대의 그림자를, 자신의 번민에 대한 답을, 자신의 경험에 대한 예시를 발견할 것이기에.
“하늘의 빛, 나무 사이를 스치는 바람, 안개에 감싸인 섬들, 바다에 드리운 그림자들, 폭풍우. 거기서 나는 고대 문장紋章의 메아리를 감지했다. 모든 공간은 저마다의 문장을 갖고 있다. 그리스의 공간은 바람이 때리고, 빛이 관통하며, 의미심장한 발현들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미는 모습이다. 오디세우스는 고통의 배를 타고 그런 신호들을 받았다. 프리아모스와 아가멤논의 병사들은 트로이 평원에서 그 신호들을 지각했다. 지리地理 속에 산다는 것은 독자의 육신과 텍스트의 추상 사이의 거리를 넘어서는 일이다.” _ 36p
테송은 수천 년 전의 신들과 전사들과 영웅들의 이야기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신들과 인간들이 벌이는 사건들을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 대입하며, 호메로스의 세상에서 일어난 이야기와 오늘날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이 다르지 않음을 줄곧 환기한다. 그리고, 사랑과 증오, 권력과 복종, 유혹과 굳건함, 호기심과 용기… 등, 영혼의 불변요소들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것이기에, 호메로스의 세계는 내일의 독자가 읽어도 새로울 것이라고 말한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에 관한 이야기이고, 《오디세이아》는 자기 왕국인 이타케로 돌아오는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이야기한다. 《일리아스》의 주제는 아킬레우스와 그의 분노, 그리고 그 분노가 불러온 재앙이다. 《오디세이아》는 영웅과 탐험의 이야기이다. 하나는 전쟁을, 다른 하나는 질서의 복원을 묘사한다.
그러나 두 시에서 공통으로 엿볼 수 있는 점은, 늘 신들이 그 인간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인간들을 조종한다는 것이다. 신들은 어디서나 끼어들고 주사위 놀이를 하고 인간들을 가지고 논다. 신들은 시도 때도 없이 복잡한 술책을 부리고, 끈질기고 충직한 인간만이 예측불허의 상황에 맞서는 싸움에서 결국 승리한다. 사리에 어긋나게 하지 않는 것, 어기지 않는 것, 이것이 호메로스가 생각하는 삶의 명예다.
이 책을 읽으며 호메로스의 강을 항해하다 보면 오늘날 점점 잊혀 가는 말들이 아름답게 울려 퍼진다. 영광, 용기, 격정, 운명, 힘, 명예… 등. 호메로스가 묘사하는 영웅들은 힘뿐만 아니라 내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현재의 명성에 집착하지 않는다. 지략이 뛰어나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으며, 마지막에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줄 안다. 그들은 고귀한 목적을 위해 죽음을 택할 뿐, 결코 자신을 잊지 않는다. 그렇게 그들은 “모두 가운데 최고”가 되었다.
“오디세우스는 초라한 오두막에 머문다. ‘왕의 귀환’을 위한 싸움은 그곳,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된다. 돼지들의 오두막에서 궁정까지 이어지는 길은 유혈이 낭자할 것이다. 《오디세이아》는 재탈환과 복원에 대한 우화다. 호메로스는 그 오두막에서 이루어진 왕과 종복의 가장 아름다운 동맹을 그린다. 지금 오디세우스 왕에게는 지지자가 돼지치기 한 사람뿐이다. 그것이 그의 군대의 시작이다.” _ 142p
호메로스가 트로이 평원의 전사들을 통해, 영웅들을 통해 그린 고대 그리스인이라는 인물상은 “인간의 표본”으로 지금도 우리를 경탄하게 한다. 아킬레우스, 헥토르, 오디세우스의 말은 오늘의 인간들에게 현재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탐욕과 욕망의 끝이, 무절제한 삶이, 자신을 망각하고 자연의 이치를 거스른다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준다.
호메로스가 우리에게 말한다. “인간이여! 너는 너의 무절제로 신들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왜 네 분수보다 높은 곳에 오르려고 그토록 고집을 부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