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수첩

가스가 다케히코 · Essay
34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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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가 써 내려간 자살에 대한 색다른 기록. 자살을 주제로 한 책들은 대체로 진지하고 조심스럽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가스가 다케히코는 사뭇 다른 태도를 취한다. 그는 “인간이라는 생물은 실로 ‘변변치 못한’ 존재다. 자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극적이고 속된 호기심과 흥미를 감추지 못한다”(12쪽)라고 말하며, 이 에세이는 그러한 모순된 두 가지 생각 위에서 지어졌음을 머리말에서 드러낸다. 그렇다고 자살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가볍게 대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오랜 시간 정신과 임상의를 지내며 생과 사의 경계에 서 있는 환자들을 마주해왔다. 그는 자신의 임상 경험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자살 사건, 유서 그리고 문학 작품에 비추어 자살자들이 왜 죽기로 결심했는지 그들의 심리를 추리해 나간다. 여기에는 정신과 의사로서의 의견과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이 상당히 덧붙여진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자살에 대한 ‘대담한 추측’을 해보기도 한다. 보통의 시선에서 벗어난 그의 생각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먼 곳으로 떠나버린 자신의 환자를 생각했을 때 그러한 추측에라도 기대고 싶어 하는 저자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도 이 책을 감상하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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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머리말 또 다른 머리말 제1장 자살을 기록하다 자살의 징조 제2장 소설로 읽는 자살 1 무엇이 자살의 결정타가 되었을까 제3장 소설로 읽는 자살 2 미스터리한 자살자들 제4장 유서들 유서의 현실성에 대하여 제5장 자살의 유형 1 미학·철학에 따른 자살 제6장 자살의 유형 2 허무함 끝에 발생하는 자살 제7장 자살의 유형 3 동요나 충동에 이끌린 자살 제8장 자살의 유형 4 고뇌의 궁극으로서의 자살 제9장 자살의 유형 5 목숨과 맞바꾼 메시지로서의 자살 제10장 자살의 유형 6 완벽한 도망으로서의 자살 제11장 자살의 유형 7 정신질환이나 정신 상태 이상으로 인한 자살 제12장 모든 자살을 설명할 수 없다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 맺음말

Description

그들은 왜 죽기로 결심했을까? 실제 일어난 사건, 남겨진 유서, 임상 경험 그리고 문학 작품에 비추어 자살자들의 심리를 추리하다 “마음만 먹는다면 인간은 간단히 죽을 수 있는 걸까. 혹은 일말의 망설임이라도 있었다가는 실패하고 마는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삶과 죽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벽에 가끔 무방비하게 열리는 문이라도 달린 걸까.” “자살이라는 말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술렁이게 한다.” 이 책은 총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자살 전에 나타나는 징조에 대해, 2장과 3장에서는 문학 작품 속 인물을 통해 자살하게 되는 동기를 살펴보고, 4장에서는 유서들을 보여주며 유서의 현실성에 대해 말한다. 5장부터 11장까지는 자살의 유형을 7가지로 나누어 자살 사례을 비중 있게 소개하고, 12장에서는 저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이 나오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자살을 암시하는 전조 증상이 있을까.” ‘1장 자살을 기록하다’에서는 저자의 환자 중 자살 징후를 보였던 것 같은 한 청년의 사례가 단편소설처럼 그려진다. 보통 자살의 전조 증상이라고 하면 자살자의 죽기 전 근래 기분 상태나 처했던 상황에서 무언가 특이한 점이 있었는지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 청년의 사례에서는 독특한 성질의 자살 징후가 나온다. “단 한 사람, (어쩌면) 자살 징후일지도 모를 증상을 보인 청년이 있었다.”(18쪽) 청년의 이름은 류타이고 서른을 앞둔 은둔형 외톨이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저자가 근무하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저자는 그가 어머니와의 애착이 문제라고 진단한다. 10년 넘게 주로 집에 틀어박혀 지냈기 때문인지 그는 다른 환자들과 번번이 부딪히며 입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지만 크게 우울하거나 불안해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류타는 갑자기 자살해 버렸다. 그것도 병원과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가서. 그는 죽기 전에 당직 중이었던 저자를 찾아갔는데 그때 그의 모습은… 이다음에 나오는 류타의 자살 징후는 저자가 묘사한 문장을 읽어야 한다. 기묘한 그 징후를 읽고 나면 책 표지에 그려진 구불구불한 이미지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실화이지만 픽션 같은 이 사례는 진한 잔상을 남긴다. 수십 가지 자살 사례가 드러내는 인간의 어둠 이 책에서는 마치 이어달리기하듯 연이어 자살 사례가 나오는데 자살자 저마다 품고 있는 어두운 내면을 저자는 꽤 세세하게 들여다보려고 한다. 일본에서 한 고등학생이 외조모를 죽이고 본인도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400자 원고지 94장 분량의 유서를 남겼는데 한 문예평론가는 이를 보고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니코프와 견줄 만하다는 평을 했다. 저자는 자살을 관념적으로 다루는 평론가를 향해 짜증을 내고 자살자의 가정환경을 짚어보고 긴 유서를 살펴보며 왜 그러한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는지 가늠해 본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가족에게는 불성실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위해 분신자살을 한 인물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왜 그의 삶이 그런 식으로 흘러갔고 하필 자살 방법 중 왜 분신을 선택했는지도 알아본다. 그리고 ‘언뜻 허무해 보이는 엘리트 고리대금업자’와 ‘허무감 그 자체를 보여준 S 씨’의 자살 사례를 비교하며 인간의 ‘허무함’에 대해 고찰해 본다. 이 외에 좋아하는 여성을 따라다니다가 자살한 대학생,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잘못된 믿음을 품고 세상을 놓아버린 교수, 사형당하는 게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형수, 본인이 우울증이라고 주장하며 과거의 상사와 그의 아내까지 살해하고 자살해 버린 남자, 지갑을 잃어버린 줄 알고 남편에게 미안해서 자살한 여자, 무의식중에 자해하는 해리성 장애 환자의 자살 등 상당히 무겁고 다양한 자살 사례가 소개된다. 하지만 많은 자살 사례를 들여다보며 자살자들의 심리를 추리해 본다고 해도 그들이 죽음을 결심한 이유를 완전히 알 수는 없다. “대체로 자살의 이유를 이것저것 조사해 봤자 결국 수면 위로 드러나는 인과관계는 ‘나중에 덧붙여지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자살한 본인조차 그 알기 쉬운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행동한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이야기가 덧붙여지든 간에 자살은 갑작스럽고 부자연스러운 행위임이 분명하다. 자살에 필연성을 부여하려는 듯한 그런 이야기는 오히려 그렇기에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261쪽) 344페이지에 달하는 이 에세이에서 자살에 대한 고찰이 내내 이어지지만,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어떤 관점에서 접근해 봐도 결국 자살은 불가해한 채로 우리를 비웃는다”(10쪽)라는 문장에 수렴하게 되는 기분이 들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또 언제 어디서고 ‘자살’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그들이 왜 죽기로 결심했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어질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자살에 우리의 마음이 술렁이는 건 ‘인간이 품은 어둠’을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어둠을 알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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