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위험해요.
세상에서 가장 나쁜 여자란 말이오.
간결한 문체로 정열의 노예가 된 한 남자와 그를 지배하는 어린 소녀를 등장시켜 관능의 극적인 측면을 드러낸 피에르 루이스의 소설이다.
“신이 원한다면 나를 줄 수 있지만,
남자들이 원한다고 줄 수는 없어요.”
“나중에.”
<욕망의 모호한 대상>의 남자는 여자의 모순적인 두 얼굴 사이에서 끊임없이 조종당하고 기만당하지만 단 한 번도 침범당하지 않은 여자의 몸으로 침범해 들어가고자 한다. 도저히 가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세계, 이해 불가의 영역인 타인의 내부를 향한 맹목적인 갈망을 다룬 이 소설은 조셉 폰 스턴버그, 줄리앙 뒤비비에, 특히 루이 브뉘엘 등의 감독들에 의해 영화화되었으며 수전 손택이 포르노그래피의 문학적 성과라 평가한 소설 <세 자매와 어머니>와 함께 피에르 루이스의 대표소설로 꼽힌다. 이 소설 외에 피에르 루이스의 짧은 이야기 세 편을 함께 묶었다.
플로베르 이후 가장 완벽한 프랑스어 산문의 등장
피에르 루이스는 시대의 공동(空洞)이다. 그 공동에서 가장 세련되고 감각적인 언어가 출현한다. 보들레르의 시대이자 드레퓌스의 시대, 부르주아지에 절대 자유가 허용되던 시대이자 교회와 전통이 완강한 지배를 행사하던 시대, 극단의 쾌락과 엄격한 도덕이 서로를 떠받치며 음습한 아이러니를 만들어내던 시대, 가장 평등한 시대이자 최악의 불평등 시대, 바로 벨 에포크라 불리는 황금기, 그 시기에 인생의 황금기를 보낸 피에르 루이에게 중요한 것은 감각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관능적인 감각이었다.
소년기에 이미 수백 편의 시를 쓰고 상징주의와 고답파의 내로라하는 시인들 속에서 성장한 그에게 글쓰기는 하나의 쾌락에 속한다. 플로베르 이후 가장 완벽한 프랑스어 산문의 등장은 그 쾌락의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글쓰기는 그가 평생 집착했던 사진, 그리고 실제로 경험하는 관능적 쾌락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피사체, 곧 여인을 바라보고 묘사하고 느끼며 이미지를 수집했다. 여러 필명을 쓰거나 자신의 창작품을 번역작이라 발표할 정도로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자신이 거둔 당대의 거대한 문학적 성공조차 부담스러워했고 종국에는 작품을 발표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레즈비언의 사랑이나 육체적 관능에 집착한 시와 소설은 고대 그리스 문화와 신화적 세계에 대한 풍부한 상상력과 어우러질 뿐 당대의 도덕과 관습에 대한 전복적 상상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레즈비언 소녀의 사랑을 이야기한 산문시로 문학적 파란을 일으켰으나 오스카 와일드의 동성애는 절대 용납할 수 없었던 피에르 루이스는 사후에 출간된 소설 <<세 자매와 어머니 Trois filles et leur m?re>>로 역사상 가장 뛰어난 포르노그래피 작가로도 알려졌다.
작품의 출판이 좌절되거나 사후에 출간되었을 만큼 당시의 도덕관념에서는 쉽사리 허용되지 않을 소재에 집착한 피에르 루이스는 프랑스 국민을 양분했던 드레퓌스 사건에서 왕당파와 교회가 주도한 반드레퓌스 진영에 속한 보수주의자였다. 세기말의 어두운 그림자나 다가올 전쟁에 대한 불안, 현실의 추악함이나 새로운 세기에 대한 희망 또는 역사의 진보는 그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가 이상적으로 바라본 세계는 고대 그리스 시대였고 지금 이 ‘아름다운 시대’의 모순은 그를 자극할 수 없었다. 그는 직관적으로 쓰고 사진을 인화하고 피사체를 경험하는 감각으로 한 시대의 문학적 성과를 달성했다. 감각이 자기의 지위를 확보하는 시기, 곧 그에게서 현대가 시작되고 있었다.
타인을 통해 자기 내부로 들어가려는 현대적 열망
넘쳐나는 감각은 자의식을 압도하거나 혹은 휘발시킨다. 관능의 매개이자 피사체일 뿐인 여성을 향한 끝없는 갈망과 관능을 문자와 사진 이미지로 붙잡고 그 대상을 느끼며 그 안으로 들어가 자신을 확인해야만 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불가능한 시도였으므로 감각과 피사체를 향한 강박은 더욱 강화되고, 그만큼 더 피사체에 집착하는 악순환으로 빠져들어 자신에게 무감해지고 자신을 폐쇄한다.
이 소설 은 한 남자의 집착과 그를 정신적으로 고문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다. 세비야의 카니발에서 앙드레 스테브놀은 우연히 미모의 안달루시아 여인을 만난다. 그녀와 다시 만나기로 한 다음 날 산책 중에 돈 마테오와 마주치고 콘차에 관해 의견을 구한다. 마테오는 자신이 콘차로 인해 겪었던 고통스러운 경험, 정열의 노예이자 콘차의 꼭두각시가 되었던 시간을 털어놓는다.
여자의 모순적인 두 얼굴 사이에서 끊임없이 조종당하고 기만당하는 남자는 단 한 번도 침범당하지 않은 여자의 몸으로 침범해 들어가고자 한다. 그것은 남자가 도저히 가 닿을 수 없는 미지의 그리고 이해 불가의 영역인 타인의 내부를 향한 맹목적인 갈망이자 집착이다. 이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사랑엔 감정도 관계도 역사도 인간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은 ‘아름다운 시대’가 만들어낸 텅 빈 곳이다. 거기에서 피사체를 향한 맹목적인 시선, 타인을 통해 자기 내부로 들어가려는 현대적 열망이 자라고 있다. 그 욕망은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