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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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일본 대학교의 현 지표 2015년 일본의 대학계에는 문부과학성이 국립대학에서 문계(인문사회계) 학부를 폐지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퍼져 충격을 주었다. 산업계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문계 학부는 폐지한다는 이 소문은 실제로는 하나의 촌극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소동은 현대 일본에서 국립대학을 포함해 대학 전반의 문제점을 시사하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문계 학부 폐지의 충격』은 이러한 사건을 매개로 해서 현대 일본의 대학 상황을 19세기 근대화 추진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상황을 종합하여 다루고 있다. 특히 국립대를 중심으로 일본 국가의 산업화 정책에서 이계(이공계) 학부가 해온 역할을 강조하고, 이 과정에서 문계 학부를 상대적으로 등한시해온 맥락을 조명하고 있다. 일본은 20세기 초반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대학을 전시 산업 기술 개발의 요람으로 구축하여 그 성장을 지원했다. 그리고 전후 고도경제성장기에도 일본 대학은 이공계를 중심으로 국가의 산업화 정책을 뒷받침하는 싱크탱크로서 기능해왔다. 그와 같은 역사를 가진 일본에서 이계 학부보다 문계 학부는 상대적으로 등한시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지속하고 있는 이계 학부 중시 정책이 2015년 문계 학부 폐지 소동으로 진화한 것이다. 일본의 대표적 석학, 요시미 슌야, 그가 말하는 21세기 대학의 지향점 필자 요시미 슌야는 그동안 일본 근대 이후의 일본 문화에 대한 독보적인 시각을 갖춘 출중한 성과를 지속해서 내놓은, 현대 일본을 대표할 만한 연구자이다. 그는 2010년대 들어 그가 몸담고 있는 대학의 위상과 향방을 고민하는 성과들을 내놓고 있는데, 그 한 권은 이미 『대학이란 무엇인가』로 국내에 소개됐고, 또 한 권의 대학 관련 저서가 이번에 국내에 소개되는 것이다. 제1장에서는 문계 학부 폐지 소동을 시작으로, 그간 일본의 사회의 변동과 대학의 역할을 통시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그리고 국립대가 법인화된 이후 대학에 찾아온 변화를 동시에 조명하고 있다. 법인화 이후 이계 학부 중심주의는 더욱 가속화하였고, 연구력과 교육력의 동시 약화 현상을 보였다. 이에 따라 대학에서 문계 학부의 존망을 둘러싼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제2장에서는 항간의 고정관념과는 부정하면서, 문계 학부가 지닌 존재적 독자성과 가치를 주장하고 있다. 필자에 따르면, 문계 학부는 인류적 보편성에 기여하는, 이계 학부와는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런 논의를 진행하면서 필자는 서양사에서 교양이 차지하는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또 일본의 대학이 역사적으로 그 교양을 대학 교육에서 어떻게 수용했는지 설명하고 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문계 학부는 이계 학부와는 방향과 지속 기간상에서 차이를 지닌, 독자적인 학문 영역이다. 제3장에서는 대학이 처한 위기 상황을 설명하고 이를 어떤 방향에서 헤쳐갈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라 학령인구가 급속히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은 위기의식을 느끼며 각종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고민에는 대학의 존재에 관한 근본적인 인식 변화가 따라야 한다. 필자는 기존의 대학을 ‘갑각류’에 비유하면서 앞으로의 대학은 ‘척추동물’로 진화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소 생뚱맞은 느낌을 주는 비유이긴 하지만, 여기엔 그 나름의 논리가 있다. 또, 그런 개혁의 성과로 대학은 궁극적으로 학생들을 21세기의 ‘미야모토 무사시’로 길러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제4장에서는 대학의 입장보다는 일반인의 관점에서 대학을 바라보고 있다. 대학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되짚어보면서 대학에 다시 생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대학은 고등학교와 직장 사이에 놓인 곳이다. 그리고 연령적으로는 20살 정도에 가는 곳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는 대학에 대한 이런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며, 인생에서 대학을 세 번 가는 곳이라고 규정한다. 종장에서는 이 책의 논의를 종합하고 있다. 그는 21세기의 대학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로 ‘보편성, 유용성, 유희성’을 꼽고 있다. 인류 보편의 가치를 발견하고 사회에 적절하게 기여할 것, 여기까지는 흔히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의외인 것은 마지막 ‘유희성’이다. 대학이, 그리고 대학의 학문이, 문화의 근본 욕구인 유희성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부분은 우리의 대학 교육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흔들리는 문계학부와 대학의 미래,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이 책에서는 기본적으로 일본 국내의 상황과 서구 유럽적 대학의 역사를 교차하면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단순히 일본적 특수성에만 국한된 이야기도, 서구적 보편성에만 국한된 이야기만도 아니다.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대학의 위기가 단순히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까운 나라 일본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대학의 위기에 관한 이야기들이 논의되고, 국가가 그에 맞는 정책이나 시책을 추진하고 대학이 움직여가고 있다. 그러나, 대학 정원 축소 중심의 근시안적이고 소극적인 정책이 주로 입안이 되고, 대학은 거기에 맞서 답을 내놓기에만 바쁘다. 관료주의적 정책의 노예로 전락한 대학의 운명을 발본적으로 고민할 필요는 누구나 느끼면서도 정작 찾아보면 참고할 만한 책들은 많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의 역사에 대한 통찰이 있고 일본의 대학 실상에 민감한 요시미 슌야의 이 책은 대학과 연계된 삶을 사는 수많은 사람, 즉 대학 정책 담당 관료, 대학 총장부터 교직원, 대학생과 대학원생, 그리고 대학 진학을 생각하는 10대 청소년과 그 부모 등 이 사회의 많은 사람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