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을 광기로 몰아넣는 사회 프레임에 대한 탁월한 통찰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괴물이 되는가?”
이상한 문서
2001년 가을, 독일 현대사를 연구하던 역사학자 죙케 나이첼은 영국 국립보존기록관에서 특이한 서류 뭉치 하나를 발견한다. 그것은 2차 대전 당시 영국군이, 포로로 잡혀 있던 독일 병사들의 대화를 도청해 기록해 둔 문서였다. 그 생생하고 적나라한 내용에 충격을 받은 저자는 다른 자료들을 더 찾아 나섰고, 미국 워싱턴에서 10만 쪽에 이르는 방대한 기록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 기록들의 중요성을 깨달은 나이첼은 사회심리학자인 하랄트 벨처와 함께 그것들을 연구해 바로 이 책 『나치의 병사들』을 출간한다. “학문적 사건”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홀로코스트 연구의 새 지평을 연 이 책을 통해, 두 저자는 우리를 괴물로 만드는 사회적 프레임을 고발한다.
그들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두 저자가 연구한 문서는, 포로로 잡힌 독일 병사들이 자기들끼리 나눈 이야기들을 영국군과 미군이 도청해 타이핑한 기록들이었다. 따라서 일반적인 인터뷰나 보고에서는 볼 수 없는, 생생하고 적나라한 내용들이 그대로 등장한다. 독일 병사들은 자기들이 직접 저지르거나 경험한 온갖 살인과 폭력, 강간과 파괴를 무용담처럼 늘어놓는다.
슈미트: 열다섯 살짜리 애들 두 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녀석들은 군복을 입고 총을 난사했답니다. 하지만 붙들렸지요. ……어쨌든 그 두 소년병은 서쪽으로 터덜터덜 걸어갔지요. 도로를 따라 갔어요. 그런데 그다음 꺾어지는 길에서 갑자기 숲 속으로 숨어들려고 했대요. 대대적으로 나서서 수색했지요. 그리고 잡혔어요. 둘 다. 그들은 그래도 양심이 있어서 두 아이를 그 자리에서 때려죽이지는 않았어요. 연대장에게 끌고 갔죠. 이제 둘 다 죽을 거라는 건 자명했지요. 두 아이는 자기가 묻힐 무덤을 팠어요. 구덩이 두 개를 판 거지요. 그리고 한 아이가 총에 맞아 죽었어요. 그 아이는 무덤으로 곧바로 떨어지지 않고 그 앞에 넘어졌어요. 그리고 남은 아이를 사살하기 전에 그 아이한테 죽은 아이를 구덩이에 던지라고 했대요. 걔는 웃으면서 그렇게 했어요! 열다섯 살 먹은 개구쟁이가요! (10쪽)
초틀뢰터러: 프랑스 놈 하나를 뒤에서 쏴 죽였어요. 자전거를 타고 있는 놈이었죠.
베버: 아주 가까이에서요?
초틀뢰터러: 그렇죠.
호이저: 그놈이 당신을 잡아가려 하던가요?
초틀뢰터러: 뭔 헛소리예요. 그 자전거가 탐났거든요. (237쪽)
“전 친위대 숙소에 있었습니다. 어느 방에서 친위대원이 겉옷을 벗은 채 침대에 누워 있었죠. 바지는 입고요. 그 옆에, 그러니까 침대 모서리에 앳되지만 아주 예쁜 소녀가 앉아 있었습니다. 이 소녀가 친위대원 턱을 쓰다듬는 걸 봤지요. 말하는 것도 들었습니다. ‘그렇죠? 저 죽이지 않을 거죠?’ 이 소녀는 아주 어렸고 독일어 발음이 완벽했습니다. …… 저는 친위대원에게 이 소녀를 정말 총살할 건지 물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은 몽땅 총살하지 예외는 없다고 말했지요. …… 친위대원은 씁쓸하다는 투로 말했습니다.” (254쪽)
대화는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 이 병사들의 대화에는 ‘표적’이 된 희생자에 대한 연민이나 미안함, 최소한의 관심도 나타나지 않는다. 심지어 임신부나 유모차에 탄 아이를 쏘아 버렸다는 이야기도 아무렇지도 않게 나온다. 듣는 병사도 맞장구만 칠 뿐 그런 이야기들이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도대체 왜일까? 왜 이들은 명령받지도 않은 무의미한 살인을 저지르며, 그것을 거리낌 없이 자랑하는가? 전쟁이 나기 전엔 평범한 목수, 회계사, 농부였던 이들은 어떻게 이런 괴물이 되었을까? 고향에 있는 부인과 아이, 애인에게는 다정한 편지를 쓰곤 했던 이들과, 민간인 마을에 폭탄을 떨어뜨리고는 낄낄거리는 공군 조종사는 동일한 인물이 맞는가?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프레임의 힘
저자들은 “인간들이 행하는 해석과 행위를 이해하려면 그들이 무엇을 ‘보았는지’, 즉 어떤 해석 틀과 표상과 관계 안에서 그 상황을 인식했고 그것을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재구성해야 한다”(19쪽)라고 말한다. 이 인식틀, 즉 프레임이야말로 지금은 기이해 보이는 행위들을 당사자의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길이자, 분석의 척도다.
저자들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프레임을 네 겹으로 구분하는데, 이 중 특정한 사회 문화적 공간, 즉 나치 시대 같은 역사적 구조(2차 프레임)와, 구체적인 사회?역사적 사건들로 이루어진 맥락들(3차 프레임), 예를 들어 전쟁 상황 같은 것에 주목한다. 저자들은 이 사회적 프레임이야말로 인간 행위의 상당 부분을 설명하는 틀이 된다고 보며, 이 틀을 분석함으로써 나치 시대 병사들의 행위를 파고들어 간다.
유대인 증오가 결정적이었나?
나치 독일은 비단 전쟁 때문만이 아니라 600만 유대인 학살이라는 유례없는 인종 멸절을 자행했기 때문에 현대사의 영원한 오점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 참사를 가능하게 한 원인으로 흔히 꼽는 것이 바로 나치의 인종주의다.
저자들에 따르면 이런 인종주의는 이 무자비한 폭력의 배후에서 분명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병사들의 대화 기록을 보면, 유대인뿐만 아니라 러시아인, 폴란드인 등 동유럽 민족에 대한 멸시와 증오가 상당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지역들에서 유난히 잔인한 학살이 자행되기도 했다. 독일 병사들은 동유럽 사람들을 미개하고 더러운 인종으로 생각했으며, 이탈리아인들은 겁쟁이로, 일본인은 광신도로 묘사했다. 이러한 인종 프레임은 개인이 판단의 배경으로 삼는 폭넓은 사회?역사적 구조들이라는 점에서 1차 프레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런 인종주의가 나치 병사들이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하게 만든 유일하거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본다.
나치 이데올로기의 한계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차원이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은 히틀러를 정점으로 한 국가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숭배하고 있었으며, 이 나치 이데올로기는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 아리안 민족과 독일 정신에 대한 자긍심 등으로 표현되었다. 병사들은 이데올로기라는 초자아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을까?
저자들은 일반 병사들에게 이런 이데올로기의 영향은 미미했다고 주장한다.
진정한 ‘세계관 전사’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이를 제외한 보통 군인들은 자신들이 처한 이 상황이 왜 생겨났는가에 대해 냉정하고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전투가 성공을 거두더라도, 그들의 인식 전면에 나타나는 것은 임박한 승리, 막 성공한 격추, 마을 점령 등이지, 가령 “동부 지역의 정복”이나 “볼셰비즘 위협의 방어”나 “황색 위험의 방어” 같은 추상적 관념이 아니다. 이런 관념은 전쟁과 전투 행위들의 배경일 뿐이지, 특정 상황에 처한 개별 군인의 해석과 행동의 구체적 동기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484쪽)
군인의 세계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괴물로 만든 것인가? 저자들은 독일 사회가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이후로 서서히 군사적 가치에 물들어 갔다는 걸 강조한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관찰에 따르면, 이 시기 독일은 시민적 도덕규범이 멸시되고 귀족 엘리트적 명예에 대한 가치를 높여 가고 있었다. 인본주의나 민주주의 등의 가치는 허약함의 상징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바로 ‘전쟁’ 그 자체였다.
독일군 병사들이 무엇보다 중시하는 것은 자신의 임무가 무엇이든 제대로 완수해 내는 것이었다. 민간인일 때 훌륭한 회계사, 농부, 목수였던 것처럼, 잠수함 기능사로서도 훌륭하게 역할을 수행하고자 했고 스탈린그라드에서 공병으로서도 잘 싸우고자 했다. (401쪽)
군인들의 태도를 무엇보다 강력하게 규정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