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캐하고 소란스럽고 어수선하던 멕시코의 지난날 향수에 젖은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숨결은 여전히 뜨겁다
200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 멕시코와 인연 많은 이 작가는 쉰 살이 넘어 멕시코에 거주하면서 멕시코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부부 화가,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전기를 썼다. 당시에 멕시코는 물론 유럽과 미국에도 그 명성을 떨친 부부 화가의 삶과 예술 이야기는 소설보다도 더 소설답다.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각자의 인생 자체가 소설 같으며, 둘이 함께한 부부의 운명은 더욱더 소설 같고, 그들이 활동한 시대와 도시가 또한 극적이었다. 이 소용돌이 같은 인생사를 르 클레지오는 나지막하고 담담한 어조로 기술했으며, 그의 견고하면서도 시적인 여운을 남기는 필치는 새로운 번역으로 완벽하게 되살아났다.
예술과 혁명. 시대를 앞서간 선구적인 예술가들은 모두 혁명가이다. 좁게는 예술 안에서의 혁명을 추구하고 넓게는 예술과 사회, 인생 전체에서의 혁명을 추구하는 혁명가. 예술에 대한 열망, 집착, 의식이 누구보다도 강렬했던 프리다와 디에고 부부의 유일한 접점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디에고 리베라는 천재적인 감각과 재능은 물론 예술을 향한 열정, 예술로써 멕시코 사회를 개선시키고자 하는 의무감, 멕시코 인디오 전통의 아름다움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갖춘 정력가였다. 프리다 칼로의 명석한 두뇌와 뜨거운 가슴은 교통사고를 당해 불편한 몸과 사라지지 않는 고통 속에서 예술로밖에는 터져 나올 길이 없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두 사람의 만남은 거대한 불꽃으로 피어났지만, 그것은 사랑과 환희와 더불어 고통과 희생도 가져다주는 불꽃이었다.
르 클레지오는 두 사람의 만남, 디에고의 사연 많은 과거, 프리다의 고통과 고독, 두 사람이 공유하는 혁명 신념, 트로츠키와 브르통과의 만남, 미국에서 겪은 모험, 미술계의 혁신을 위한 그들의 역할 등을 이야기하며 두 사람의 삶을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히 엮어냈다. 화려하면서도 아픈, 애가 타면서도 벅찬 그들의 사랑 이야기와, 전혀 다르면서 서로를 보완하는 작품 이야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여러 차이를 뛰어넘어 결국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의 운명의 천은 강렬한 원색으로 짜여갔다. 작가는 자신의 감정은 배제한 듯 차분하게 사실과 사건들을 설명하고 프리다와 디에고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균형감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소란스러운 시대, 들쑤셔진 사회에서 애쓰며 치열하게 살다간 프리다와 디에고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정이 근본적으로 깔려 있으며, 두 부부의 응축된 감정의 언저리에서 그들을 위로하고 다독인다.
가장 아름다운 프랑스어를 구사한다고 평가받는 르 클레지오의 문장을 최대한 되살리고자 새로운 번역으로 다시 펴낸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는 작가의 힘 있는 글이 책 전체를 이끌어가도록 편집되었다. 그리고 본문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며 함께 수록된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대표 작품 1백여 컷은 서로 너무 다르면서도 완벽했던 부부의 그림으로 표현된 사랑 이야기를 더욱 잘 이해하게 해준다. 연보와 함께 구성된 생생한 사진들은 그 시대, 그 장소에 프리다와 디에고 부부와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르 클레지오, 프리다 칼로, 디에고 리베라, 세 거장이 완벽한 트라이앵글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책이다.
“진정한 걸작은 변하거나 늙지 않는다.” 두 부부의 불꽃은 여전히 강렬하게 살아 있다. 프리다와 디에고만큼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삶과 사랑과, 예술과 사회를 위해, 진지한 태도로 나의 신념이나 이념을 끝까지 고수하며 나아가고 있는지 숙연하게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삶과 예술을 아우르는 책으로, 과연 르 클레지오의 이 책을 능가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