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1. 1960년대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 이 책이 말하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개발’과 ‘독재’를 주도한 산업화 세력과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헌신한 민주화 세력의 격전지이다.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이 서글픈 대립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갈등의 기원은 자유로 상징되는 1960년의 4.19와 빵으로 표상되는 1961년의 5.16일 것이다. 이 사건은 두 가지 집단기억으로 나뉘었고, 이후 한국 사회는 ‘산업화 대 민주화’라는 상투적인 ‘대서사’만이 범람해왔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1960년대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이라는 시각이 요청된다. 권보드래(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천정환(성균관대 국문학과 교수)은 ‘문화정치’와 ‘지성’이라는 관점으로 ‘오늘의 한국’을 만든 1960년대를 탐색하였고, 그 결과를《1960년을 묻다-박정희 시대의 문화정치와 지성》이라는 책으로 선보인다. 이 책은 박정희 시대의 역사상과 문학과 ‘1960년대의 모순’과 문화정치를 통해 다시 읽음으로써, 그 시대에 배태되어 우리를 키우고 존재하게 만든 현대성과 지성의 풍경을 담았다.
한국의 오늘은 1960년대에 만들어졌다.《1960년을 묻다》는 그 기원을 추적하기 위해 이제까지 없었던 시각으로 이 시대를 해석한다. 미디어와 대중을 중심으로 한 문화정치사,《사상계》,《청맥》등의 지식인 담론과 문학작품을 분석한 지성사적 조명이 교차하면서 1960년대의 풍경은 새로운 빛을 받아 우리 앞에 나타난다.
자유와 민주주의, 풍요와 개발을 향한 욕망이 충돌하는 이 시대의 장면들은 여전히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즉, 오늘날 한국사회의 온갖 불협화음이 그때에 시작됐으며, 우리는 여태껏 1960년대의 화두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사실과 충격적으로 대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1960년대에 형성된 ‘문화적 현대성’은 이제 포스트모던의 흐름 속에서 소멸ㆍ해체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여전히 위력적이다. 과연 ‘문화적 현대성’은 지성(인문학)과 교양(대중문화)의 영역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왜 1960년대인가?” 둘이 함께 책을 쓴다고 말했을 때 가장 먼저 돌아온 물음이었다. 얼마 전〈불후의 명곡〉에 신중현이 출연했다. ‘전설’답게 신중현은 백발을 휘날리며 빨간 일렉트릭기타를 옆에 두고 앉아, 씨스타의 효린이〈커피 한 잔〉(1964)을 부르고 노브레인이〈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1969) 등을 리메이크해서 연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손주뻘 가수들을 격려했다. (…) 노브레인은 기성의 권위 같은 건 우습게 여긴다는 펑크밴드답지 않게, 가장 공손한 태도로, “한국 록의 창시자” 신중현 선생님이 없었다면‘ 오늘날 저희 같은 밴드도 없을 것’이라며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바로 이 상황, 전설의 살아 있음, 그것이 이 책이 전하고 싶은 첫 번째 이야기다. 정치와 문화 전반에서, 1960년대에 첫 무대에 오른 그들이 한국 ○○의 창시자가 됐다. 더 엄밀히 말하면, 그들은 창시자가 아니라 중창자(重創者)이거나 중시조(中始祖) 같은 존재다. 1930년대 혹은 1950년대를 살아간 선배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창시자’라는 명명은 큰 과장이거나 오류가 아니다. 특히 이 책에서 다루는 한국의 지성사와 문학 분야에서 그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제도와 정신은 1960년 이래 새로운 시원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살아 있다.
─<여는 글>, 5~6쪽
오늘날의 기원은 사실 4·19 자체가 아니라 5·16이 돼버린 4·19다. 공을 이룬 것은 개발독재정권이요 이후 문제에 대처하지 못한 것은 무능한 후계자들 탓이라는 투다. 그러나 1960~1980년대의 기록적인 경제성장이 개발독재정권 덕이었다면 1990년대 말의 금융위기 또한 개발독재정권의 후과(後果)다.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정착이 경제성장에 힘입은 만큼이나, GDP 10위권의 번영 속에서 더 쓰디쓴 대립과 소외와 원한의 심정 또한 고도성장의 부산물이다. 개발독재정권이 만든 국가 모형의 영향은 그토록 강력하다. 오늘날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1960년대 이래 한국이 걸어온 길이 다른 데 처했다고 생각한다면, 돌아가야 할 곳은 박정희 시절이 아니라 4·19라는 원점 바로 그곳이다.
─<맺는 글>, 557쪽
2. 응답하라 문화연구! 박정희 레짐과 현대성의 탄생
― 이 책에서 듣다
《1960년을 묻다》는 문화연구(또는 문화론적 연구)의 관점에서 1960년대를 탐사한다. 문화연구는 연구방법과 시야의 전환을 아우르는 말이다. 문화연구는 한국문학의 근대성을 새롭게 천착하고 지식과 문화제도의 기원을 탐사해 오래된 연대(年代)의 당대성을 복원해왔다. 민족·남성·엘리트에 가렸던 존재를 되살렸고, 제도·담론·표상이라는 미개척 분야를 답사해 식민지 시대 사회·문화에 대한 새로운 상을 보여주었다.
최근에는 1945년 이후의 문학·문화사를 다시 읽고 연구하는 흐름이 활발해졌다. 또 그 시선은 1970~1980년대에까지 미치고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며, 방향은 무엇일까? 근대 초기나 식민지 시기에 대한 문화론적·고고학적 접근에 대당(對當)될 만한 의의를 가진 것인가? 문화연구의 시각에서 해방 이후 역사를 다시 읽는다면, 무엇을 겨냥해 어떤 효과를 산출할 수 있을까?
한국의 사회·문화적 현대성은 19세기 말~20세기 초를 첫 번째 단계로, 1920~1930년대의 식민지 근대화를 두 번째 단계로 하여 구축되었다. 탈식민과 전쟁을 거치며 한국의 현대성은 재구조화된다. 남한에서는 그 굴곡을 1950~1960년대에 걸친 사회·문화 전반의 미국화와 냉전 체제화, 미디어와 대중의 폭발적 (재)형성, 근대문화제도의 (재)구축 과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새로운 현대성은 《1960년을 묻다》에서 다룬 1960년대에 안착, 1990년대까지 그 힘을 유지·존속시킨다. 오늘날까지 현대성은 여전히 관철되고 있다.
해방 이후를 대상으로 한 문화연구의 출발은 문제적 근과거와 문제적 당대를 동시에 문제 삼으려는 의욕의 표현이다. 오늘날의 문화연구자들은 근대화와 민주화라는 열쇠말로 요약되곤 하는 지난 반세기를 어떻게 달리 성찰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이제 막 스스로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문학연구의 전환은 ‘1987년 체제’의 성립과 함께 20대를 시작하고, 2000년대에 30대를 보낸 세대가 품어온 갈증의 표현이자, 새로운 지적·인간적 현실에 대한 절실한 인문학적 요청을 끌어안고자 하는 전신(轉身)의 시도였다. 한편 그것은 전(前)세대가 부여한 ‘국문학’이라는 오래된 판으로부터의 비약이자 즐거운 탈주의 시도이기도 했다. 어느새 ‘문화론적 연구’는 2000년대 이후 국문학 연구의 핵심 경향 같은 게 됐다. 심지어 주류의 자리를 차지한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그 자체로서 100퍼센트 사실이 아닌 착시현상의 하나일 뿐이다. ‘전환’은 여전히 불완전한 채로 진행 중이다. 우리는 전환을 더 발본화하거나, 스스로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더 오래, 신진처럼 문제를 제기하고 비정형적인 글쓰기를 하고 싶다. 이 책은 그간 ‘문화론적 연구’에 대해 제기돼온 이런저런 격려와 우려에 대한 조그만 답이기도 하다.
─<여는 글>, 11쪽
3. 1960년대의 모순과 우리 시대의 모순
― 이 책을 보다 : 4 · 19세대와 386세대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정치의 장에서 ‘산업화 대 민주화’라고 상투적으로 요약되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대서사’를 더 적실한 것으로 수정하려 한다. 1960년대의 한국인들도 ‘두 송이 장미, 한 그릇의 밥’을 함께 원했다. 밥과 장미는 각각 생존(경제)과 인간적 존엄(민주주의)을 상징한다.
1960년대의 한국사회는 모순적이고 길항하는 힘들의 각축 속에서 형성되었다. 그 힘들은 ‘민주화 대 산업화’처럼 서로 이항대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