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펴내며
Antoni Gaudi i Cornet (25 de juny del 1852?10 de juny del 1926)
이 책은 가우디가 사망한 후 그와 함께 작업했던 건축가들이 그를 기념하며 펴낸 최초의 전기이다. 1928년 ‘Gaudi’라는 제목으로 카탈루냐어 초판이 출간되었고, 이듬해인 1929년 1월 18일 스페인어 초판이 출간되었다. 스페인에서는 다른 전기들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출판사나 저자의 이름을 붙여 ‘에디시온 카노사의 가우디’ 혹은 ‘라폴스의 가우디’로 불린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우디의 일생과 그의 작품들을 세밀하게 묘사한 전반부는 건축가 주셉 프란세스크 라폴스 이 폰타날스Josep Francesc Rafols i Fontanals(1889?1965)가, 가우디 건축의 기술적인 부분과 개괄적인 특징을 다룬 후반부는 건축가 프란세스크 폴게라 이 그라시Francesc Folguera i Grassi(1891?1960)가 기술했다. 두 사람은 모두 가우디를 도와 성가족 성당 작업을 함께한 젊은 건축가들이었다. 이들은 건축사 면허를 가진 실무 건축가였을 뿐 아니라 가우디와 상당 기간을 함께 지낸 즉, 도통 작업실 밖으로 나서지 않았던 안토니 가우디에게 그의 독창적인 건축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 묻고 들을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특히 라폴스는 이 책 외에도 같은 시대를 다룬 여러 저작을 펴냈고, 1956년 설립된 가우디 연구원La Catedra Gaudi의 초대 원장을 지냈으며, 이후 가우디의 모교인 바르셀로나 건축학교의 학장까지 오른 대 학자이다.
가우디는 손수 글을 잘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젊은 날 노트와 지인들과의 서신을 제외하면 그가 직접 쓴 글은 거의 없으며, 그가 살아 있을 때에도 그의 건축에 관한 글은 제자들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전해지는 가우디에 관한 내용들은 그의 제자들이 소개한 일화들이나, 그들의 기억에 의존한 가우디의 구술이 주를 이룬다. 그런 가운데 그의 애석한 죽음을 기념하며 여러 제자들이 공을 들여 다양한 관점에서 써내려 간 이 최초의 전기는 특별한 가치를 가진다. 이후 출간된 가우디 책들 가운데 실제로 이 책을 인용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나는 이 책이 2014년 아키트윈스에서 출간된 《가우디 노트》 시리즈와 더불어 진지한 가우디 연구를 시작하기 위한 교두보가 될 것을 의심치 않는다.
가우디와 같이 대중의 관심을 받는 건축가는 없다. 하지만 이런 대중적인 관심이 오히려 그에 대한 진지한 연구에 장해물이 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대중을 고려한 많은 가우디 책들은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그의 건축을 얕은 수준에서 쉽게 일반화해버리는 오류를 범한다. 하나의 시각으로는 좀처럼 파악되지 않는 가우디 건축의 복합적인 면들은 알 듯 모를 듯한 ‘자연’이라는 개념으로 애매하게 뭉뚱그려졌고, 그런 가운데 분명 그의 건축을 형성했던 건설 기술이나, 장식, 역학, 새로운 도시와 역사에 대한 관심은 주목받지 못했다. 가우디의 건축은 명쾌하지만, 이를 이루어가는 과정과 그가 활용한 수단들은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건축가라도 낱낱이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특별한 권위를 갖는다. 이 책의 저자들은 직업적 전기 작가가 아닌 가우디의 건축을 진정으로 이해한, 아니 그보다는 가우디와 함께 그의 건축을 완성해갔던 ‘건축가’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가우디의 건축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던 제자들이 남긴 첫 번째 기록이다. 그들은 가우디의 건축이 가진 다양한 측면들을 이해했고 이를 스스럼없이 드러냈다. 가우디의 인간적인 고뇌와 한계까지 숨김없이 지적하면서, 그 건축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대담하게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어찌 보면 그 자체로 가우디의 건축과 닮아 있다.
또한 우리는 이 책이 쓰인 1928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라폴스도 수차례 언급했듯이 당시 성가족 성당은 거의 지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가우디가 생전에 목격한 완성 부분은 탄생 입면 맨 왼쪽의 ‘성 바르나바’ 탑 하나뿐이었고, 이 책이 출간된 시점에도 성당은 가장 먼저 시작된 탄생 입면조차 완성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 책은 성당의 모든 입면은 물론 내부와 지붕까지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라폴스가 눈으로 본 듯 상세하게 기술한 성당은 그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보지 못한 이 성당의 원형이었다. 이를 ‘누구도 보지 못했다’고 표현한 까닭은 그의 묘사가 오늘날 우리 눈앞에 서 있는 성가족 성당의 모습과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책에 소개된 성당의 ‘수난 입면’에 관한 묘사와 가우디의 크로키는 현재의 모습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진가는 책에 수록된 270여장의 도판에 있다. 사진은 모두 1928년 당시 보유하고 있었던 원본 사진과 도면, 스케치들이다. 가우디는 1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다. 그동안 그가 지은 주택들의 주인은 몇 번이나 바뀌었을까? 또 이 건물들은 주인의 취향과 유행에 따라 얼마나 개조되었을까? 오늘날 가우디가 지었던 많은 건축물이 충실한 연구를 통해 복원되고 있지만 그것이 어려운 까닭은 비단 정보의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부족한 것은 이를 이루어낼 재력이다. 에우세비 구엘 백작은 당시 스페인 최고의 재력가였다. 이 책에 소개된 구엘 저택의 내부 전경은 지금의 모습과 확연히 다른데, 이는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복원한다 하더라도 구엘 백작이 가졌던 것과 같은 부유함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 사진에는 지금은 찾을 수 없는 의자와 카펫, 커튼이 등장하며, 무엇보다 이 모두는 당대 최고의 작가들이 만든 오리지널 작품들이었다. 또한 1936년 방화로 가우디 작업실이 전소되면서 그와 관련된 많은 사진과 도면, 모형들이 완전히 소실되었다. 실제로 밀라 주택의 바닥재 스케치 같은 것들은 이 책에 인쇄물로서만 확인할 수 있을 뿐,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가치를 인정받아 이 책은 카탈루냐 공과대학 출판부에서 선정한 ‘20세기의 고전’에 선정되었고, 이를 기념하여 2011년 디지털화된 카탈루냐어 초판이 다시 출간되었다. 재출간된 책의 뒤편에는 부록 형태로 본문의 영어 번역이 수록되었다. 옮긴이는 1928년 카탈루냐어판을 기준으로 삼고 이를 1929년 스페인어판, 2011년 영어판과 비교하며 총 3개의 판본을 대조 번역하였고, 각 판본의 차이가 있는 부분은 본문에서 굵은 글꼴로 구분하고 주석을 달아 표시했다. 각 판본 간의 차이는 카탈루냐어 판과 스페인어 판에서 가장 두드러졌는데 이는 혼란했던 당대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영어판의 경우에는 기존 판본의 오류를 교정하거나, 새로운 정보가 추가된 경우가 있어 이를 모두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