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철학자 러셀, 철학입문서 최고 걸작!
분석철학의 출발점이자 불멸의 걸작《철학이란 무엇인가》
행복에 대한 명쾌한 정의《행복의 정복》
“인간은 누구나, 자기 이상의 전당으로 들어가기 전에 어두운 동굴을 지나야만 한다. 그러나 거기에서 나오면 희망의 문이 있고, 그 문을 통과하면, 다시 지혜의 등불을 만날 수 있다. 새로운 통찰과 새로운 희열, 새로운 다정함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위대한 휴머니스트
러셀은 역사의 흐름을 날카롭게 파악하는 지성과, 미래사회를 만들어나갈 어린이들 순수한 영혼에 깊은 애정을 지닌 채 끊임없이 전진했다. 그는 광기로 물든 세계정세 속에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았다. 그는 온갖 인간성을 신뢰하고, 그것에 새로운 희망을 맡겼다. 특히 그는 청년에게 많은 기대를 품었다. 그 기대는 마치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따뜻한 심정(心情)으로 가득 차 있었다. 비콘힐 스쿨의 교육과 생활에서 엿보이는 상냥한 아버지 미소 속에서, 우리는 고난과 장해를 뛰어넘어 살아온 세기의 철학자의 위대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러셀은 20세기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 인물이었다. 3세대에 걸친 활기찬 생애동안 철학ㆍ수학ㆍ과학ㆍ윤리학ㆍ사회학ㆍ교육ㆍ역사ㆍ정치학ㆍ논쟁술에 이르는 책을 40권 이상 출간했다. 러셀의 탁월한 영향력은 자신의 지능을 사용하는 놀라운 능력(그는 하루에 보통 거의 고칠 필요가 없는 3,000 단어 분량의 글을 썼음), 기억력, 귀족 특유의 독립심, 한편으로는 그의 활동의 원천이었던 심오한 휴머니즘적 감수성에 기인한 것이었다. 러셀의 이러한 감수성은 스스로 자유로운 무정부주의, 좌파, 회의적 무신론의 기질이라고 불렀던 성향을 통해 사회변혁운동에서 일관성 있게 표현되었다.
불멸의 최고걸작!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도 의심할 수 없을 만큼, 확실한 지식이란 존재하는가?’
이런 문구로 시작하는 《철학이란 무엇인가》는, 근대철학자들이 몇 번이고 도전했던 제반 문제를 매우 명확하게 논하고 있다. 여기서는 분석적 태도를 철저히 유지한 채, 인간이 직접 인식하는 지식과 그것을 부연하는 수단을 검토하고, 더 나아가 철학의 한계 및 그 가치마저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그야말로 20세기 철학의 주류인 분석철학의 출발점이다. 오늘날에도 꾸준히 읽히고 있는 철학입문서의 최고 걸작이다.
행복에 대한 명쾌한 정의!
《행복의 정복》은 러셀이 인간 본성을 통해 행복을 명쾌하게 정의내린 명저로 일종의 인간론이기도 하다. 과연 현대인은 행복할 수 없는가, 행복할 수 없다면 그 까닭은 무엇인가 등의 문제를 러셀 특유의 합리성을 바탕으로 규명한다. 오늘날 행복의 감각이 마비된 원인을 냉철하게 밝히고 현대인이 회복해야 할 감각은 어떠한 것인지를 설명한다. 러셀은 행복을 위해 자신의 내면에 지나치게 몰입하기보다 세상과 소통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인간 본성의 단점을 지적하면서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요소로 보고, 인간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았다. 러셀의 행복론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잃어버렸던 행복에 어느새 다가가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천문학적 세계관에서 인간중심 세계관으로
러셀은 철학자임과 동시에 과학자였다. 그것이 그의 세계관을 독특하게 이루고 있다. 그는 과학자로서 이 우주가 광대무변하다고 생각하였다. 이 광대무변한 우주 속에서 지구는 은하계의 작은 항성 하나를 도는 더 작은 행성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위대한 세계는 자연철학이 가르치는 한,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며, 또 우리의 행복과 불행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러셀은 광대무변한 우주의 유구한 발전에 있어 인간은 하찮고 미세한 존재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우주에 있어서 인간의 위치가 이것밖에 되지 않는다면, 인간은 일종의 허무주의에 귀착하여 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나 러셀의 세계관은 이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주 전체에서 본다면 실로 미미한 인간이, 사실은 위대한 존재라는 것이다. 곧 인간은 자기 내면에 광대한 우주를 비추는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즉 인간의 이성적 정신은 학문을 형성하고 문화를 산출하며, 역사를 움직이는 위대한 능력을 타고난 것이다.
러셀의 인생관
한 세기를 살았던 거인 러셀의 인생관은 우리에게 중요한 바를 제시한다. 그는 언제나 미래지향적이었으며, 결코 과거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가 언제나 정신적 젊음을 잃지 않은 것은, 인생에 대한 전향적인 자세 때문일 것이다.
러셀은 인생을 강물에 비유했다. 개인적인 인간의 존재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처음에는 작고 좁은 둑 사이를 흘러가고, 세차게 바위에 부딪쳐, 폭포가 되어 떨어진다. 그 사이에 차차 강폭은 넓어지고, 마침내 바다로 흘러들어감으로써 아무 고통도 없이 개인적 존재를 소멸시키게 된다. 노인이 되어 인생을 이렇게 볼 수 있는 사람은 죽음의 공포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러셀은 이와 같이 인생을 급류로부터 발달하여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큰 강에 비유하였다. 그것은 고난에 찬 길이었으나 거의 보상을 받은 그의 인생 자체를 표현한 것처럼 들린다. 그는 인생에 대한 희망의 윤리 확립을 이 영원히 흘러가는 강물에 대한 확신 속에서 구하였던 것이다.
러셀의 인생관은 이와 같이 인간애에 넘쳐 있다. 그러나 인생관이 사상이 되기 위해서는 이 애정과 숭상하는 마음이 과학과 결부되지 않으면 안 된다. 과학이 없는 사랑은 무력하고, 사랑이 없는 과학은 파괴적이다. 바로 ‘애정에 의해 통치되는 과학’이야말로 인생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애정과 지성, 곧 ‘지식과 사랑’의 아름다운 통합이야말로, 인생의 자유와 평화의 진정한 교향곡이라는 신념을 견지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그의 철학은 현대의 모든 과학장비를 몸에 지니고, 우주의 신비성과 인간의 위치를 근거로 지식과 애정의 통일적 체계로서 완결되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하여 에이여는 《러셀기념 논문집》(영국계 철학자 19명을 주체로 함)에서 러셀이야말로 경험주의를 계승하여, 이것을 현대적으로 새롭게 대성한 유일한 인물이며, 바로 ‘세기의 철학자’라고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