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성의 사나이

SF 영화의 걸작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자인 필립 K. 딕의 대표작. 그는 (꼭 그 영화처럼) 현실인지 미래인지 모호한 디스토피아를 즐겨 보여준 작가인데, <높은 성의 사나이>에서는 '2차대전에서 연합군이 패했다면?'이라는 가정을 토대로 음울한 가상의 1960년대를 그려보인다. 그가 상상한 1962년의 미국에선 나치 독일이 뉴욕을, 일본이 캘리포니아를 지배하며, 노예제가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유태인들은 신분을 숨겨야만 한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여러 주인공들은 그 속에서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는데, 그들이 유일하게 희망을 거는 것은 '높은 성의 사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한 비밀작가의 소설. '높은 성의 사나이'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 '연합군이 독일과 일본의 동맹군에게 승리했다면 지금 세상은?'이라는 상상을 펼쳐 그들을 위로한다. 책 속의 책, 상상 속의 상상인 셈이다. 어슐러 르 귄이 '미국의 보르헤스'라 일컬으며 "만일 그의 작품이 순수문학의 타이틀을 걸고서 싸구려 표지 대신 거창한 표지를 걸고 나왔더라면 그렇게 비평가들에게 잊혀진 작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던 필립 딕은 이 소설로 1963년 휴고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