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세 나라 한자(漢字)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정리한 한자 인문교양서 탄생
한중일 세 나라의 문화계를 대표하는 ‘한중일 30인회’가 제정한 ‘공용한자 808자’에 대한 각각의 유례와 용례를 담은 책이 발간되었다. 『한중일 공용한자 808자』는 15명의 국내 대표 학자들이 5개월 여의 집필과 2개월 여의 감수를 거쳐 완성했으며, 808자에 얽힌 역사·문화적 배경을 에피소드로 풀어내 단순한 한자 학습서가 아닌 인문학에 기초한 교양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에 수록된 808자는 한중일 세 나라의 공용한자로 일상생활에서 가장 자주 접하는 기본 한자들이다. 이 한자들의 형태, 발음, 뜻을 익히고 그 자형의 역사적 변천과정과 자원(字源)을 파악하고 나서 현재 사용되는 용법을 알게 되면 우리의 문자생활이 한결 더 깊이와 폭을 지니게 될 것이고, 나아가 사고력과 표현력이 증대될 것이다. 이 책은 한중일 세 나라 한자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음으로써 세 나라의 한자 문화가 어떻게 가치를 공유하며 부분적으로 차별화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삼국을 오가는 비즈니스맨과 중국어·일본어 학습자, 학생들의 한자 공부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한자를 통해 삼국의 문화와 역사를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을 줄 것이다.
한자를 통한 소통과 문화 교류를 위해 ‘한중일 공용한자 808자’ 제정
한중일 30인회는 중앙일보와 중국 신화사,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미래를 지향하는 한중일 협력’을 위해 공동 개최하는 행사로 2015년 10회를 맞이했다. 한중일 공용한자 제정의 필요성은 일본 나라에서 열린 제5회 한중일 30인회에서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이 처음으로 제기했으며, 2년 뒤 서울에서 ‘한중일 공용한자 500자’가 선정됐고, 2013년 일본 홋카이도에서 기초 상용한자를 더 담아 800자로 늘렸다. 같은 해 중국 인민대학이 주최한 실무 연구모임에서 세 나라의 사용 빈도 등을 면밀히 살핀 뒤 29자를 넣고 어느 한 나라에서라도 덜 쓰이는 21자를 빼면서 최종적으로 808자가 되었다.
한중일 삼국은 생활과 문화가 공통된 면도 있지만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 보니 차이점도 적지 않다. 그래도 한자는 태생이 자연과 사물의 속성을 형태 속에 담아낸 것이어서 수천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그 변화가 크지 않았다. 이것이 한중일 세 나라의 공용한자 808자를 선정할 수 있었던 토대라고 할 수 있다.
한중일 공용한자 제정을 통해 한자 활용의 틈을 메우는 계기 만들 것
한중일 30인회 한국측 일원인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한중일 삼국이 한자를 공동의 문화 기반으로 삼았으나 근대에 와서 문자의 기능과 효율성을 강조하다보니 단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삼국이 쓰는 한자의 자형이 달라져 중국은 간화자(簡化字)를 쓰지만, 일본은 약자(略字), 한국은 정자(正字)를 쓴다. 또한 문자의 사용 빈도수가 달라 용법에 틈이 생기고 있다. 다음은 이어령 전 장관이 뽑은 대표적인 용법 차이다.
“한국과 일본의 자동차(自動車)를 중국에서는 기차(氣車)라고 합니다. 또 한국?중국에서 대장부라고 하면 씩씩하고 건장한 남자를 뜻하지만 일본에서는 괜찮다는 뜻입니다. 같은 한자를 쓰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오해와 혼란이 일어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일입니다. 일본 점령군이 길을 횡단하던 중국 농민들에게 빨리 가라는 신호로 ‘주(走)’자를 써서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도 더 천천히 걸어가는 그들을 보고 성급한 군인들이 총을 쏜 사건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주(走)’는 ‘뛰다(run)’라는 뜻이지만 본 고장 중국에서는 그냥 ‘가다(go)’라는 의미였던 것입니다.”(본문 8쪽)
이어령 전 장관은 “문화의 축이 서구에서 아시아로 옮겨지고 있는 이때에 한중일 공동상용한자를 제정함으로써 새로운 아시아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며 ‘한중일 공용한자 808자’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 책의 구성 - 808자의 한중일 자형에서 자원, 용법까지
『한중일 공용한자 808자』는 808자 각 글자에 대해 우선 한국 한자의 자형과 발음 및 기본 뜻을 앞머리에 내세운 다음 한중일 세 나라에서 현재 사용하는 자형(字形), 발음, 뜻을 상세하게 정리하여 한 눈에 공통점과 차이점을 대조해 볼 수 있게 하였고, 각 글자의 갑골문(甲骨文)·금문(金文)·소전(小篆)·예서(隸書)·해서(楷書) 등의 자형을 소개하여 역사적 변천 과정을 알 수 있게 하였다.
다음으로 각 글자의 자원(字源)을 설명하고 있다. 먼저 그 글자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제시한 육서(六書)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지를 밝히고, 갑골문과 『설문해자』를 중심으로 하고 금문과 소전을 방증자료로 하여 각 글자의 형성 과정과 최초의 의미를 상세히 해설하고, 그 글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후대의 의미로 변화하고 확장되었는지 설득력 있게 설명하여 독자들이 각 글자의 자형과 의미의 연관 관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마지막으로 ‘용법’ 항목을 두어 한중일 세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뜻을 실제 용례를 통해 설명한 다음에 각 나라마다 다르게 쓰이거나 독특하게 활용되는 경우를 예문을 들어가며 밝혀놓아 독자들이 각 글자에 대해 세 나라의 공통 용법과 개별 용법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해당 한자가 포함된 한자 성어를 수록함으로써 학습적인 기능을 더하기도 했다.
새로운 아시아 시대에 『천자문』을 대신하는 한자 입문서
과거에는 동아시아 청소년들에게 『천자문』이라는 책이 문화적 동질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천자문』에는 한중일 모두가 많이 상용하는 ‘봄 춘(春)’자나 ‘북녘 북(北)’자가 빠져 있고 잘 사용하지 않는 한자가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한중일 공용한자 808자』에 수록된 한자는 세 나라에서 상용하는 빈도수를 과학적으로 측정하고 엄밀히 선별해 제정한 것이다. 이 책은 천자문을 대신하여 아시아 청소년들의 텍스트 역할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앞으로 한자를 배우려는 모든 세계인들에게도 중요한 입문서이자 지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집필진(이하 가나다순)
강혜근 충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김애영 안양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류동춘 서강대학교 중국문화전공 교수
문병순 경희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
박흥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부 교수
심소희 이화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오제중 건국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윤창준 계명대학교 국제지역학부 중국학전공 교수
하영삼 경성대학교 중문과 교수
◇ 감수위원(이하 가나다순)
김언종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송용준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심경호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이규갑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이준식 성균관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정재서 이화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