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

한은형 · Novel
2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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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문체로 일상 속에 숨은 낯설고 매혹적인 삶의 이면을 이야기하는 소설가 한은형의 첫번째 소설집. 2012년 '꼽추 미카엘의 일광욕'으로 제19회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이래 줄곧 새롭고 다채로운 단편들을 발표해온 그는, 무미건조하고 권태로울 뿐인 정체된 세계의 문법을 거부하고 불가해한 우연의 순간과 '미친' 생각들이 생생히 살아 숨쉬는 진정성의 세계를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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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꼽추 미카엘의 일광욕 … 『문학동네』 2012년 가을호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 … 『문학동네』 2013년 여름호 그레이하운드의 기원 … <문장웹진> 2013년 3월호 샌프란시스코 사우나 … 미발표작 붉은 펠트 모자 … 테마소설집 『도시와 나』(바람, 2013) 연인형 로봇 … 국립국어원 웹진 2014년 6월호 기자의 일 … 『문학들』 2014년 봄호(발표 당시 제목 「두 개의 심장」) 결혼 … 『황해문화』 2013년 봄호

Description

“한은형은 진부한 독자가 기대하는 장르적 관습을 발로 뻥 차려는 야심으로 충만한 소설가다. 회피하고 싶은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안다.” _정이현(소설가) 독특한 문체로 일상 속에 숨은 낯설고 매혹적인 삶의 이면을 이야기하는 소설가 한은형의 첫번째 소설집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2012년 「꼽추 미카엘의 일광욕」으로 제19회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이래 줄곧 새롭고 다채로운 단편들을 발표해온 그는, 무미건조하고 권태로울 뿐인 정체된 세계의 문법을 거부하고 불가해한 우연의 순간과 ‘미친’ 생각들이 생생히 살아 숨쉬는 진정성의 세계를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삶의 비의가 곳곳에 숨겨진 미지의 숲 속에서 어두운 발밑을 더듬으며 조심스레 걷다보면, 조용히 마음속 깊은 자리를 건드리는 존재론적 질문들을 만나게 된다. 독자를 어느 사이 잘 설계된, ‘움직이는 축제 moveable feast’의 장으로 데리고 가는 여덟 편의 빼어난 소설을 담았다. 고독과 권태…… 일상 속에 꿈처럼 숨어 있던 낯설고 매혹적인 삶의 이면 우리가 붙잡아야 할 꼬리 긴 여름에 일어난 이야기 한은형의 인물들은 대개 고독과 권태에 싸여 있다. 그들은 지극히 속물적인 상류층이기도 하고, 부유하든 그렇지 않든 근근이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생활인이기도 하며, 유명배우이거나 기자이기도 하다. 각자 다른 일을 하며 다른 생각을 하는 듯 보이지만, 모두들 멀쩡한 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들어한다. 마치 우리가 그러하듯. 그는 지나치게 정상적이었고 말짱했다. 그렇다고 주장했다. 그런 말을 할수록 크지 않은 눈을 크게 떴지만, 곧 눈동자의 초점이 흐려졌다. “괜찮아 괜찮아 안 취했어”라거나 “걱정 마 걱정 마 나 멀쩡해”를 번갈아 말하면서.(「그레이하운드의 기원」, 76쪽) 그들은 늘 무언가에 취해 있으려 한다. 아니, 어쩌면 취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괜찮아 괜찮아 안 취했어”라거나 “걱정 마 걱정 마 나 멀쩡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다. 그들 앞에 놓인 일상은 불안정하기 일쑤고, 내일은 끔찍한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 삶에는 왜 대단한 무엇이 없는가? 그들은 어떤 ‘일탈’을 꿈꾼다. 그는 외로워서 이성을 만나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혼자서 마스터베이션을 하는 것에도 질려버렸다. 그건 마치 우습지도 않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서 홀로 헛웃음을 짓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간이 사라지지 않을 수 있게 누군가가 보고 글로 써준다면, 작품으로 만들어준다면. 그렇다면 나는 내면의 초상화 같은 것을 갖게 된다.(「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 43쪽) ‘자위自慰’―스스로 위로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모든 순간들은 당연한 듯 찾아오지 않으며, 찰나의 우연들이 건네는 몇 안 되는 기회가 있을 뿐이다. 미카엘의 집을 뒤로하고 다시 숲 밖으로 걸어나가는 동안 나는 무언가가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총소리 같은 게 나기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기회에 듣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꼽추 미카엘의 일광욕」, 34쪽) 예컨대 총소리 같은 것. 한은형의 소설에는 이런 기이한 장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한다. 잘 짜인 문장들이 어떤 위화감도 없이 독자를 무대 위로 떠민다. 우리는 꼽추 ‘미카엘’을 따라 사람이 종종 빠져죽는 호수 근처에 지어진 별장의 비밀 파티에 초대받기도 하고(「꼽추 미카엘의 일광욕」), 치과 의사의 마스터베이션을 지켜보면서 그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너구리상象 앞으로 가기도 한다(「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 개가 된 남자를 그리워하기도 하고(「그레이하운드의 기원」), 평양에서 교통경찰을 하는 여자를 그리워하기도 한다(「샌프란시스코 사우나」). 문장의 겹과 겹 사이를 파고드는 몽롱한 도발, 위험한 장난… 한은형의 문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글은 문장 자체가 뜻하는바 이외에도 그 사이사이의 여백을 살펴보게끔 한다. 얼핏 낯설어 보이는 배열들 속에 그 몽롱한 도발은 숨어 있다. 뜻한 듯 뜻하지 않은 듯 흐릿한 매혹의 단어들, 의도 없이 방치된 것처럼 보이는 문장들, 시나브로 설득되는 기이한 표현들. 그것은 간혹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는 위험한 장난이기도 하다. 나는 바랐다. 눈이 굵어지길, 전차가 더 천천히 움직이길, 단전이 되길, 전차가 멈춰 서길, 오래도록 그런 채로 있길, 지친 사람들이 전차에서 내리길, 내리길, 내리길, 그래서 우리만이 남아 있게 되길. 나는 바랐다. 운전수도 어디로 가버린다. 전차 위로 눈이 쌓인다, 쌓인다, 쌓인다, 거리의 불이 꺼진다. 차례대로 하나씩. 마침내 불은 하나만 남는다. 그 불빛을 그녀의 눈동자에서 본다. 하나만 남았던 불이 꺼지고, 거리는 사라진다. 전차 안은 어둡지 않다. 숨과 열기로. 우리는 버려지거나 잊힐 것이다. 우리가 견딜 수 없을 때 문을 열고 걸어나올 것이다. 나왔다. 눈에 새로운 길을 내면서, 내가 앞서 걸을 것이다.(「샌프란시스코 사우나)」, 107쪽) 시간은 분절할 수 없이 연속적이지만 우리는 늘 순간 속에서만 살아나간다. 한 시간 두 시간, 오늘 그리고 내일, 삶은 순간순간이 짜깁기된 퀼트에 가깝다는 점에서 시적이다. 그의 문장도 어느 부분은 구멍이 나기도 하고, 종종 오염되어 있기도 하며, 어떤 얼룩들은 지워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예술이 예술로서 오롯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오리지널리티가 아니던가. 이 소설가의 독창성은 근래 보기 드문 것임에 틀림없다. 혁명은 입맞춤이 되고 평론가 황현경에 따르면 한은형의 소설들은 ‘진짜’ 연애소설이다. 삶의 지리멸렬함을 단번에 떨쳐버리게 하는 힘을 지닌 것이 ‘연애’이니, 그 커다란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한은형은 소설 중 많은 부분을 연애에 할애하고 있다. 그는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전부가 되었다. 어느 면으로 보아도 기쁘게 예쁜 노랑 육각연필 같았다. 뻔뻔한 오줌싸개였고, 고장난 라디오였으며, 너무 커서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없는 돌 문진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단 하나뿐인 완전한 강아지였다.(「그레이하운드의 기원」, 67쪽) 연인에 대한 이 노골적인 찬사에 대해 누가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언젠가 끝나버릴지라도, 우리는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기 원한다. 굳이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된다. 아니, 대단하지 않은 그 무언가가 우리를 구원한다. 그것은 어쩌면 프렌치 레볼루션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입술을 살짝 벌리며 시작하는, 귀여울 정도로만 도발적인 이 청량한 발음에 익숙해지다보면 그것은 프랑스혁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차라리 프렌치 키스와 더 가까운 어떤 것으로 느껴졌다. 그녀는 롤러코스터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줄의 일부는 이 귀엽고 낭만적인 발성이 끌어들인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기계인지 알고 있었으니까.(「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 47쪽) 무시무시한 롤러코스터가 아니어도 된다. 혁명이 아니어도 된다. 달콤한 키스 한 번이면 된다. ‘프렌치 레볼루션’이 ‘프렌치 키스’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 소설가의 낭만성을 확인할 수 있다. 연애든 삶이든,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아주 작고 미묘한 차이에서부터 나온다. 소장은 얼굴이 붉어졌다. 연인의 조건,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D박사를 앞에 두고서야 깨달았다. 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음을. 그는 즉흥적으로 상대에게 달려가는 일 같은 건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연구를 그르칠 위험이 있었으니까. 위대한 연인에게는 어떤 덕목이 있는 걸까. 그는 D박사를 쳐다보았다. 저 여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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