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게 없던 공대생, 거제도에서 꿈을 만나다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는 공대생이 있었다. 딱히 공학에 뜻이 있지는 않았다. 군대 가기 전까지 학업은 뒷전이고 게임에만 매달렸다. 하지만 취업문 뚫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한국 사회에서 의연하게 게임만 할 수는 없었다. 제대하고 나서는 선배들의 취업준비 모습을 지켜보면서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했다. 게임에 몰두하느라 구멍 난 학점을 채우고, 취업에 필수라는 영어 점수를 올리며 부랴부랴 취업준비생의 대열에 올라탔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은 없었고 꿈도 없었다. 어쨌든 취업은 꼭 해야 했다.
어느날 과사무실 게시판에 붙어 있던 인턴 모집 공고를 보았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국내 모 조선해양사에서 인턴을 뽑는다는 공고였다. 비록 하고 싶은 것은 없어도 멋진 것은 안다. 바닷가 도크에 건설되고 있는 거대한 배들이 떠올랐다. 그 멋진 배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단 말이지? 망설임 없이 지원했고, 다행히 인턴으로 선발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경험하게 된 거제도에서의 두 달은 꿈이 없던 공대생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세 번째도 해양플랜트!
소중한 인턴 경험은《나는 플랜트 엔지니어입니다》의 지은이 박정호(현재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재직)를 플랜트 엔지니어링의 길로 이끌었다. 관련 업계에만 열 곳 이상을 지원해서 네 곳에 합격했다. 그중에서 지은이가 선택한 회사는 해양플랜트를 설계부터 제작까지, 전부 책임지고 만들어내는 국내 모 EPC 업체(설계(Engineering), 제작(Procurement), 건설(Construction)의 약자로 방대한 플랜트 건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제작사를 말한다)였다. 이제 지은이는 해양플랜트 설계 엔지니어가 되겠다는 꿈이 확고해졌다. 신입사원 연수를 마무리한 후 배치를 원하는 사업부를 선택할 때도 1지망부터 3지망까지 오직 해양사업부만 적어낼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플랜트 건설회사에 입사한 지은이는 학생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열정을 활활 불태우며 해양플랜트 프로세스설계(공정설계) 엔지니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것이 이 책 《나는 플랜트 엔지니어입니다》의 시작이다.
우리 경제의 주춧돌이자 대들보인 플랜트 산업
플랜트란 무엇일까? 산업 분야에서 플랜트는 좁게는 공장이지만, 보통은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어 우리가 원하는 제품이나 중간 생산물, 에너지를 생산하는 설비 모두를 플랜트라고 한다. 결국 옷이나 식료품처럼 우리가 먹고사는 데 쓰는 다양한 제품, 집에서 취사나 난방용으로 쓰는 도시가스 등 많은 것들이 플랜트를 통해 생산되므로,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용하는 거의 모든 물건이 플랜트를 거쳐 나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플랜트는 우리와 밀접하다.
종류도 다양한데, 석유나 천연가스를 생산하는 오일?가스 플랜트, 이렇게 생산된 석유나 가스를 정제하여 가솔린, 아스팔트, 각종 플라스틱 제품의 재료가 되는 나프타 등을 생산하는 석유화학 플랜트,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플랜트, 다른 플랜트나 일상생활에서 나오는 폐수와 폐물질을 처리하는 환경플랜트 등이 대표적이다. 《나는 플랜트 엔지니어입니다》에 등장하는 말레이시아 살라맛 플랜트(가명)는 천연가스를 뽑아 올려 상품성 있게 가공?생산하는 오일?가스 플랜트이고, 그중에서도 바다에서 천연가스를 뽑아 올리는 해양플랜트다.
그렇다면 이제 플랜트 엔지니어링이란 어떤 것인지 대략 감이 올 것이다. 플랜트 엔지니어링은 플랜트를 건설하는 일이다. 역시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가 있는데, 좁게는 설계를 가리키고 넓게는 플랜트 건설 프로젝트의 초기 연구와 기획부터 시작하여 최종 시운전까지 전 과정을 가리킨다. 따라서 플랜트 엔지니어란 플랜트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플랜트 엔지니어입니다》의 지은이는 플랜트 엔지니어링 가운데 프로세스설계라는 플랜트 설계에서 가장 핵심이자 뼈대가 되는 작업을 하는 엔지니어다.
제조업 강국인 우리나라에서 플랜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기도 하거니와 특히 해외 플랜트 건설은 우리나라 ‘13대 주력 수출품목’에 포함되어 있는 대표 수출상품이기도 하다. 또한 이 책의 주인공인 살라맛 플랜트는 우리나라의 가장 성공적인 해외자원개발 프로젝트로서 한 해에만 3,000억 원 이상의 이익을 지속적으로 창출하고 있다.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기술력 하나로 해외의 자원을 개발하고, 그렇게 개발한 석유와 가스는 석유화학 플랜트를 통해 정제되어 우리 경제를 돌리고, 해외로 다시 수출되고 있다.
현재 플랜트 건설은 국제 유가 하락과 중국 같은 후발주자와의 가격경쟁, 코로나 19 바이러스 감염증의 전세계적인 발병 확산으로 인한 전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대한민국 대표 수출품목이라는 위상이 흔들리고 있지만, 언제나 경제를 뒷받침하는 것이 플랜트이듯 플랜트 엔지니어링과 플랜트 엔지니어는 항상 기술력을 높이고, 실력을 갈고 닦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초보 엔지니어의 성장기이자 플랜트 프로젝트의 완성기
《나는 플랜트 엔지니어입니다》는 초보 플랜트 엔지니어가 5년에 걸쳐 하나의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수하며 성장하는 이야기이자, 플랜트 건설 프로젝트가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그 실무적인 과정을 현장감 있게 보여주는 상세한 기록이다.
입사한 지 2년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복사기와 더욱 친했던 초보 엔지니어는 드디어 한 프로젝트의 출발선에 선배 엔지니어들과 나란히 서게 되었다. 국내의 한 해외자원 개발업체가 말레이시아 바다에서 경제성이 매우 높은 천연가스전을 발견했고, 이곳의 가스를 채굴하고 정제할 수 있는 해양플랜트를 발주한 것이다. 지은이는 이때부터 5년 동안 플랜트 건설사업 수주부터 프로세스설계와 상세설계, 제작과 시운전, 설치와 품질보증 그리고 최종 인도까지 전 과정을 두루 겪으며 진정한 플랜트 프로세스설계 엔지니어로 성장한다.
플랜트 건설의 큰 그림은 보지 못하던 초보 엔지니어는 기본설계를 맡은 프랑스의 엔지니어링 업체에서 파견근무를 하는 동안 넓은 시야의 중요성을 배웠고, 상세설계와 제작, 시운전 등 플랜트 프로젝트가 각 제작 단계들을 거칠 때마다 플랜트 건설이 어떤 것인지를 생생하게 몸으로 익혔다. 또한 각 단계마다 예상치 못하게 쏟아져 나오는 문제들을 당황하지 않고 해결해나가는 요령을 익혔으며,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작업답게 곳곳에서 불거지는 사람들과의 충돌에서 중심을 잡는 법도 배웠다. 잦은 해외출장으로 짐 싸는 데 도사가 된 것은 덤이다. 그러는 사이 초보 엔지니어는 플랜트의 프로세스설계를 총괄하는 리드 엔지니어가 되어 있었다.
이것이 바로 엔지니어링이다!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고 플랜트 엔지니어링 수업을 듣기도 했던 지은이는 대학 시절에는 플랜트 엔지니어링을 왜 배워야 하는지 몰랐다고 한다. 그런데 플랜트 엔지니어로 본격적인 직장생활을 하면서 세상에 이보다 더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쉬운 것은 학교에서 배웠음에도 플랜트 엔지니어링의 많은 부분을 배우기 위해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는 점, 그리고 자신의 어려움을 지금 이 순간도 많은 예비 엔지니어와 초보 엔지니어가 똑같이 겪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와 현장에서 배우는 것이 다르다는 점은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현장의 분위기를 미리, 체계적으로 알려준다면 시행착오도 덜 겪고 플랜트 엔지니어링을 더 일찍부터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은이는 플랜트 엔지니어를 꿈꾸는 사람이든 여타 다른 엔지니어를 꿈꾸는 사람이든 본격적으로 엔지니어링을 시작할 때 덜 헤맸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는 플랜트 엔지니어입니다》를 집필했다. 이 책은 플랜트 건설 프로젝트의 전체 과정을 소개하는 사이사이 플랜트 제작에 관한 이야기를 빠트리지 않는다. 해양플랜트가 중심이지만, 기술적인 내용보다는 지은이 자신이 겪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