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붓다: 바람과 사자와 연꽃의 노래』 지은이 인터뷰
1. 선생님께서는 연암의 『열하일기』를 시작으로 고전의 지혜를 지금, 여기에서 사용할 수 있게 변주하고 전파하는 작업들을 그동안 쭉 해오셨습니다. 연암에서 그 다음에 『동의보감』으로 다음 명리학으로 그리고 지금 불경으로 계속 변화해 왔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렇게 공부의 궤적이 계속 이동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고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붓다를 만나고 또 붓다로 고전평론을 하게 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연암에서 『동의보감』, 『동의보감』에서 명리학. 사실 그다음에 주역으로 주역 공부를 좀 했기 때문에 주역으로 이제 책을 쓰고 강의를 하려고 했으나 주변에 주역을 너무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들이 많아가지고 제가 통 크게 양보하고 그다음에 이제 불경을 만나게 된 거고요. 계속 이렇게 이제 공부의 방향 이렇게 변하고 흘러가는 거는 왜 그럴까요? 간단하죠. 살아 있기 때문에 그런 거죠. 살아 있으면 계속 어디론가 가야 되거든요. 삶 자체가 어디론가 가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저는 당연히 고전평론가고 고전평론가는 고전을 읽고 쓰고 말하는 게 일상이에요. 다른 분들이 직장에 와서 일을 하고 논이나 밭에서 일을 하시듯이 저는 고전의 지혜의 밭을 일구는 게 제 직업인 거죠. 그러니까 그걸 계속 일구다 보면 아주 조금씩 조금씩 흘러가게 되어 있죠. 머무를 수는 없어요.
그리고 동양 사상이 유불도(儒佛道) 이렇게 삼교 회통이니까 불경을 만나는 건 너무 당연하죠. 안 만나면 오히려 좀 이상한 거죠 사실은. 그건 요리조리 피했다는 얘기인데 그거 이상하잖아요. 왜 지혜의 바다를 피하겠습니까. 근데 좀 늦긴 늦었어요. 저는 매사가 좀 늦깎이고 뒷북을 치는 스타일이라 남들처럼 앞서 나가지를 못한 채 지금 60대를 맞이했는데, 40대 연암 『열하일기』로 그 공부가 저의 40대를 이루었다면 50대쯤에 그러니까 지금부터 10년 전이죠. 2012년에 『나의 운명 사용 설명서』를 냈고 그 전해에 『동의보감』을 리라이팅한 책을 내고, 그러니까 50대의 『동의보감』하고 명리학을 공부하고 감이당 시작하고 여기서 많은 사람들하고 명리 공부와 『동의보감』 공부를 했고요. 몸에 대한 탐구를 하다 보니까 그러면 이제 자연히 마음의 세계가 궁금해지죠.
근데 『동의보감』에도 희노애락애오욕, 칠정이 있긴 있어요. 그래서 거기에서도 마음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됐는데, 마음이 너무 잠재력도 많고 아주 심층적이고 아주 다양한 지층으로 구성이 돼 있으니까 그걸 탐구해야겠다라고 늘 마음에 품고 있었고요. 그런데 딱 시절 인연을 못 만나서 이렇게 간접적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정화 스님이 한 달에 한 번씩 한결같이 20년 동안 우리에게 강의를 해주셨잖아요. 제가 출석은 했는데, 반은 듣고 반은 졸고 했어요. 이렇게 간접적으로 듣다가, 내가 직접 공부를 해야겠다. 이런 거는 2017년부터 시작이 된 거죠. 직접 불경을 읽고 탐구를 하니까 간접적으로 듣는 거하고 굉장히 다르더라고요. 정말로. 그래서 아주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 이런 마음이 드는 거죠. 그러니까 한편으로는 고전평론가니까 당연히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임꺽정』, 『서유기』 이런 고전을 읽어요. 읽다가 보면 당연히 의학, 역학이 궁금해지고 그러면 주역을 배우게 되고 그 다음에 이제 불경으로 가게 돼요. 물론 불경을 통해서 다른 것들을 또 배우기도 하겠죠. 그래서 불경에 다다른 건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한 수순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그런데 좀 늦긴 했죠.
2. 책 제목이 『청년 붓다: 바람과 사자와 연꽃의 노래』인데요. 붓다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청년’이라는 게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책에서 ‘붓다는 청년이고 붓다의 깨달음은 청년기의 산물이다’라고도 하셨는데요, 제목을 이렇게 잡으신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일단 제가 불교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면서 불경을 읽었죠. ‘니카야’가 붙은 초기경전을 읽고 대승경전인 금강경, 화엄경, 이런, 보통 많이 들어본 그 경전들을 읽었어요. 그런데 대승경전에는 정말 큰 가르침들이 막 충격, 반전 이렇게 다가와서 불교는 진짜 어렵다, 이건 어떻게 뇌구조가 바뀌기 전에는 배우기가 불가능한 거 아닌가 싶게, 그랬어요. 어느 정도 이상은 좁혀지지 않는 거예요. 아직 준비가 안 됐으니까, 나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가르침이야, 이런 마음도 있었던 것 같고요.
그런데 초기경전을 읽으면 거기에는 부처님의 생애랑 부처님이 직접 설한 얘기들이 나오고 수많은 인연담이 나와요. 한마디로 스토리의 바다인데 일단 너무 재미있어요. 이야기니까 인물이 나오고 인물들이 일으키는 사건이 나오고 하는데, 이 사건을 보면서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났지 따져봤더니 전생의 업이 나오고요. 그런데 그 전생도 우리가 생각하는 이 앞의 생이 아니더라고요. 엄청 길어요. 무지막지하게 길죠. 이 이전에 억겁의 전생이에요. 그래서 그 이야기 구조에 너무 충격을 받았고. 거기에다 부처님의 생애 자체가 너무 흥미로웠어요.
근데 우리는 보통 불교 그러면 부처님의 생애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랄지 『금강경』의 ‘아상에 사로잡히지 마라’랄지 왜 이런 얘기만 주로 환기를 할까 싶었어요. 아니면 선문답이나요. 부처님의 생애가 먼저 떠올라야 할 것 같은데 말이죠. 물론 부처님의 생애도 대강은 알고 있었죠. 출가하고, 깨달음에 이르고 이런 것들이요. 그리고 열반. 열반 하니까 저는 어렸을 때 부처님이 열반에 이르기 전에 식중독에 걸렸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니 부처님이 왜 이렇게 시시하게 식중독에 걸리지,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 너무 거칠게, 그런 것밖에 모르다가 초기경전에 부처님의 생애가 굉장히 자세히 나오니까 거기서 되게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철학적인 수준이 좀 낮아서 그런지 이야기가 재밌고 감동적이더라고요. 거기에 불교가 뭔지 다 집약이 돼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초기경전에서 받은 충격이 또 하나 있는데, 저는 막연히 부처님은 막연히 연로하다는 느낌, 중년 이후의 중후한 느낌이 있었어요. 절에 가면 대웅전에 있는 부처님 상들도 모두 중년 이후 아닌가요. 청년의 모습으로 있는 불상 보셨어요? 왜 이렇게 중후한 걸까요? 대웅전에 있는 불상들은? 아무튼 그랬는데, 부처님이 스물아홉에 출가하시고 서른다섯에 깨달았다. 이건 누가 쓴 부처님 생애든 공통적인 거예요. 나이가 그 이전에 출가하셨다든지 이런 얘기는 있어도 이후는 아니거든요. 또 서른다섯이면 지금은 뭐 확실하게 청년이죠. 제가 젊었을 때는 30대 넘으면 약간 아줌마 아저씨라고 했으니까, 조금 나이가 들었다 생각할 수 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사람의 생애는 기본적으로 100년이라고, 이렇게 잡혀 있기 때문에 30대면 젊은 거예요. 그러니까 새삼 초기경전을 보면서, 아, 젊은 붓다네. 근데 나는 왜 이렇게 노인을 생각했을까, 이런 부분이 깨졌고. 그다음에 서른다섯 이후에는 여든까지, 45년간 설법을 오로지 한결같은 설법을 하신 거예요. 이것도 갑자기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45년 동안을 교육 활동을 하신 거잖아요, 길 위에서. 이런 생애가 있나요? 보통 처음에 이렇게 가르치다가 유명해지고 명망을 얻고 이러면 그다음에는 좀 지위가 높아지거나 뭐 이러면서 바뀌지 않나요? 우리는. 근데 정말 한결같이 길 위에 계셨다는 거. 마지막 열반에 이를 때도 석 달 동안 여행을 하면서 열반의 죽음을 맞이하는 거죠. 그때도 마지막까지 가르치시거든요. 그 사실이 너무 충격이었어요. 불교를 이렇게 저렇게 접하면서도 왜 이런 걸 생각하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일단 이 책은 저 자신을 위한 책이에요. 내가 만난 붓다 그리고 붓다가 저 같은 중생한테 어떤 점이 감동인가, 그 포인트를 제가 새로 잡고 저랑 비슷한 사람들이 있으면 이런 거부터 시작하면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먼저, 붓다는 청년이다. 그다음에 또 우리가 불교를 배운다고 할 때 나중에 나이 들어서, 정년 이후 은퇴해서 배워야지, 이런 생각을 하잖아요. 여생을 정리할 때 불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