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의 세계를 사납게 확장해나갈 것이다!”
페미니즘 선언문, 폭발적으로 저항하는 언어들
소외되고, 배신당하고, 삭제된 여성의 목소리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의 역사
“당신이 화가 나 있고, 진력이 났고, 싸움에 동지가 필요한 상태라면,
이 책은 당신을 위한 것이다.”
―서문에서
《우리는 다 태워버릴 것이다》는 전 세계 페미니스트들이 강력한 분노의 에너지로 써낸 페미니즘 선언문을 한데 모은 책이다. 1851년 소저너 트루스의 선언문에서부터 2018년 시인 수전 스텐슨의 선언문까지……. 이 책은 75편의 페미니즘 선언문을 선별함으로써 과거와 현재를 아울러 저마다의 억압에 놓여 있었던 여성들, 그동안 소외되고, 배신당하고, 지치고, 삭제되었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복원해낸다.
이 책의 제목 《우리는 다 태워버릴 것이다》는 선언문이 가진 폭발적인 힘을 응집한다. 선언문은 절박함의 문학, 생의 최전선에서 쓰인 문학이자 훼손된 존엄성, 위협받는 생명, 소외와 차별을 낳는 불의에 견딜 수 없어 외치는 목소리다. 선언문은 우리의 눈을 헤집어 열어 비열하고 더럽고 무시무시한 진실을 똑바로 보게 만든다. 이 책에 실린 페미니즘 선언문을 읽을 때 불에 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남성 중심적 권력을 되찾고 분노와 광포함을 표현하는 혁명 수단으로서의 선언문, 페미니스트의 목소리를 세상의 중심으로 이동시키려는 이상적인 소통 방식으로서의 선언문을 통해, 이 세상 가장자리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더욱 환해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왜 페미니즘 선언문인가?
새로운 페미니즘을 상상하는 장소로서의 선언문
“제가 말 좀 해도 될까요? 나는 여성의 권리를 지지해요.
나는 어떤 남자만큼이나 근육이 있고, 어떤 남자만큼이나 일할 수 있어요.
나는 땅을 갈아엎고, 곡식을 거둬들이고, 껍질을 벗기고, 장작을 패왔어요.
어떤 남자가 이보다 더 잘 할 수 있나요?
나는 어떤 남자만큼이나 물건을 나를 수 있고,
할 수만 있다면 그만큼 많이 먹을 수도 있어요.
나는 지금 여기 있는 어떤 남자만큼 강해요.”
―소저너 트루스, <나는 어떤 남자만큼이나 강합니다>(1851) 중에서
인류 최초의 페미니즘 선언문으로 알려진 <나는 어떤 남자만큼이나 강합니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자 노예였던 소저너 트루스가 쓴 것이다. 자신의 계급과 성별이 동일한 이들의 해방을 위해 평생 운동을 펼친 그는 이 선언문을 통해, ‘흑인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드는 세상을 향해 정당한 분노를 표출한다. 핍박의 역사를 견뎌온 전 세계 다양한 인종 여성, 각기 다른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지닌 여성들이 페미니즘 선언문을 통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은 트루스의 선언문이 여러 층위의 억압에 항거하는 수단으로 작용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다발적이게 등장하고 있는 페미니즘 선언문은 소외된 다양한 목소리를 빠짐없이 담아내기 위해 드넓은 장소로 발전해나간다. 젠더와 섹슈얼리티, 퀴어 정치와 트랜스 신체 등 소외된 다양한 존재들을 새롭게 상상할 언어의 장소로 자리매김한 것. 이는 곧 새로운 젠더의 비전, 여성을 위한 새로운 역할,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새로운 정체성과 태도와 입장을 지지하는 토대로서, 유색인/흑인 여성, 가난한 여성, 쓰레기 여성, 성 노동자, 오만불손한 마녀와 비치의 출구가 된다. 페미니즘 선언문 안에서 세상의 모든 여성들이 자유롭게 미치고 날뛸 수 있는 이유다.
모든 페이지가 폭발한다!
선언문으로 보는 페미니즘의 역사 1851-2018
“우리는 대립과 위협의 맥락 안에서 움직이고 작업한다.
우리들이 서로에 대해 갖는 분노가 그 이유는 아니다.
모든 여성, 유색인, 레즈비언과 게이,
가난한 사람들의 특수성을 검토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우리 모두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매서운 분노에 있다.”
―오드리 로드(본문 33쪽)
이 책은 지난 19세기부터 21세기에 이르는 선언문을 아울러 소개함으로써, 제1-4 물결 페미니즘의 토대를 되짚고 고취시키는 데 집중한다. 이 책에 담긴 75편의 선언문은 다양한 범위의 선언문, 과거의 선언문, 동시대의 선언문을 망라하며, 다음의 여덟 주제로 분류된다. 1장 퀴어/트랜스, 2장 반자본주의/무정부주의, 3장 분노/폭력, 4장 선주민/유색인 여성, 5장 성/신체, 6장 해커/사이보그, 7장 트래시/펑크, 8장 마녀/비치.
연대를 기준 삼지 않고 이와 같은 주제로 선별한 이유는 각각의 페미니즘 선언문이 택한 비판적, 미적,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의 긴장감을 전하기 위함이다. 각 페미니즘 선언문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강조하고 고양함으로써, 페미니즘 내부의 모순을 스스로 드러냄으로써 여성 억압의 표적을 더 넓고 크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1장 퀴어/트랜스에서는 퀴어 권리가 정점에 다다랐던 1970년대 초를 필두로, 지난 50여 년을 관통하는 퀴어 페미니즘의 저항의 힘을 세 가지 시간대(1970년대, 1990년대, 200년대)로 나눠 소개한다. 이 세 시기를 통해 퀴어 페미니즘의 한결같은 거리낌 없는 태도, 분노, 새로운 퀴어의 미래를 받아 안으려는 생각들을 펼쳐낸다.(본문 47쪽)
2장 반자본주의/무정부주의에서는 이 두 이데올로기의 충동이 페미니즘의 비전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준다. 19세기 중엽에 등장한 초기 무정부주의 특징을 간직한 텍스트에서부터 오늘날 후기 자본주의와 제도적 억압의 강제로부터 자유롭게 상상하고 놀고 사랑하고 글을 쓰고 마음껏 숨 쉬는 것을 집단적으로 꿈꿨던 기록을 만날 수 있다.(본문 203쪽)
3장 분노/폭력에 이르면 현실을 파괴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다시 세우기로 작정한 여성들이 여러 페이지에 걸쳐 발산하는 뜨거운 분노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지금까지 쓰인 페미니스트 선언문 중 가장 폭력적이라 할 만한 밸러리 솔라나스Valerie Solanas의 〈SCUM 선언문〉을 중심으로, 제2 물결의 래디컬 페미니즘 운동의 핵심적인 내용을 찾을 수 있다.(본문 331쪽)
4장 선주민/유색인은 불평등이 야기하는 감정적 무게를 전달하는 언어, 억압의 시학의 살아 있는 예시로 큰 의미를 갖는다. 검은 피부와 갈색 피부를 지닌 여성의 역사, 선주민의 투쟁, 페미니스트 혁명의 저항과 반란의 가능성들을 마주한다. 특히 모든 글에서 우리는 인종차별주의와 동시에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저항적 페미니즘의 상징인 유색인 여성을 눈앞에 그려낼 수 있다.(본문 433쪽)
5장 성/신체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살집 있고, 끈끈하고, 상처 나고, 성적이고, 반항적이고, 맥동하는 여성의 몸에 대해 말한다. 몸과 정치적 맥락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급진적이고 다양한 시도뿐 아니라 페미니스트 신체 정치학을 결집시키는 여러 단편들을 만난다. 또한 재생산과 성적 권리에 관한 다양한 페미니즘적 전망을 폭넓게 발견할 수 있다.(본문 531쪽)
6장 해커/사이보그는 기술과 결합하는 페미니즘을 다룬다. 여성이 어떻게 기술과 통합되고, 분리되고, 저항의 기술을 활용하는지에 대해 분투하는 페미니즘을 제시한다. 어떻게 기술이 페미니즘 정치에 영향을 미치거나 약화시킬 수 있는지, 어떻게 사이보그 형상이 혁명을 주도하는지, 또한 어떻게 해커의 역할이 가부장제를 무너뜨리기에 강력하면서도 필수적인지 묻는다.(본문 615쪽)
7장 트래시/펑크로 분류된 페미니즘 선언문은 쓰레기, 멸시, 무례함, 경솔함, 극악함에 대한 찬가가 된다. 페미니스트 항거의 이면으로서의 역겨움, 쓰레기 같은 여성들과 그들의 싸구려 예술과 범죄 행위를 주장하는 목소리로 안내한다.(본문 673쪽) 마지막으로 8장 마녀/비치에서는 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