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술이 빚은 시인 이규보가 읊조리는 고려로 가다 고려를 알고 싶다면 지나칠 수 없는 그 이름, 이규보 ‘그때 그 시절,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았을까?’ 옛날이야기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 역사 삼매경에 빠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품었음직한 의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역사 콘텐츠, 예컨대 사극이나 역사서, 박물관의 전시에서 당대 사람들의 생생한 삶과 생각은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널리 알려진 인물이나 굵직굵직한 사건이나 휘황찬란한 문화유산 위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1168~1241)는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이름이다. 800여 년 전 고려라는 왕조를 살면서 자신의 진솔한 심정을 담은 방대한 기록,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을 남겨서다. 《동국이상국집》에는 권력자의 뜻이나 특정 필요에 따라 지은 글도 있지만, 이규보가 살면서 붓 가는 대로 자신의 처지와 생각을 풀어 놓은 시와 글이 더 많다. 찬찬히 읽어보면 무신정변 후 무인들이 정권을 잡고 호가호위하던 고려의 혼란을 온몸으로 겪어낸 지식인의 모습이 생생하다. 누구에게는 아부꾼으로, 누구에게는 대문호로 평가받는 이규보가 그리는 고려,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오늘은 시 한 잔, 내일은 술 한 수―이규보가 들려주는 이규보 이야기 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을 역사의 장으로 안내하는 한편 학술적 연구도 소홀히 하지 않았던 저자 강민경(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은 이규보, 나아가 고려 ‘사람’의 삶과 생각을 총 89꼭지에 담아 펼쳐 보인다. 각 꼭지마다 직접 그린, 해학적이면서도 날카로움을 잃지 않았던 이규보를 닮은 듯한 삽화를 수록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저자가 이규보의 글에서 만난, 오늘의 우리와 비슷하지만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았던 800여 년 전 고려 ‘사람’의 모습은 어떠할까. 《동국이상국집》에 담긴 이규보는 과거시험에 합격하고도 벼슬을 못 구해 높으신 분들에게 작은 벼슬자리 하나만 허락해 주십사 구관시求官詩를 지어 올릴 정도로 구직에 목매던 백수이기도 했고, 술 좋아한다는 소문이 절까지 퍼져 스님이 친히 술상을 내올 정도의 술고래이기도 했으며, 하루가 다르게 나오는 배와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절로 한숨을 내쉬던 ‘동네 아저씨’이기도 했다. “나 때는 말이야~”라 말하며 ‘라떼’를 찾기도 했고, 술을 진탕 마신 다음 날 숙취에 몸서리치는 이에게 숙취 해소제로 술 닷 말을 권하기도 했으며,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토실(일종의 온실)은 그러한 “하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라 말하며 당장 허물라고 하인들을 닦달하는 ‘꼰대’같은 짓을 벌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아재’ 같은 모습이다. 그럼 이규보에게 ‘아재’스러움만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이규보는 가족과 백성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잃지 않고 치열하게 분투한 사람이기도 하다. 추위에 오들오들 떠는 아내와 자식을 위해 “약목若木을 베어와 태워 숯을 만들어/ 우리 집과 온 천하를 두루 따습게 해서/ 추운 섣달에도 늘 땀을 흘리게 하리다”라 다짐하기도 했고, “활처럼 굽히지 않고 항상 곧으면/ 남에게 노여움을 받게 되니라/ …… 오직 사람의 화와 복은/ 네가 굽히고 펴는 데 달렸느니라”라 말하며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허리를 굽실거리던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기도 했다. 피부병, 생손앓이, 두통, 치통, 천식, 소화불량에 갈증이 돋는 질환까지 온갖 병에 시달리면서도 작은 벼슬자리를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기도 했고,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입을 가지고 있기에 백성을 씹어 먹는가’라 일갈하며 지방관, 향리의 수탈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또 그는 검은 고양이를 기르면서 귀여워하는 동시에 “공밥만 먹지 말고 저 쥐들을 섬멸하거라”라 권하는 ‘집사’이기도 했다. 고려를 먹고 마시고 쓰다 독자 입장에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이규보가 먹고 마시고 쓴 ‘고려’의 일상적인 생활상이다. 저자는 이규보의 글을 통해 고려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먼저 먹는 것부터 보자. ‘붉은 생선[紅鱗]’을 회 뜨고 술잔을 기울였다는 이규보의 시에서는 아무리 늦어도 “이규보가 살던 13세기 초에는 고려 사람들이 생선을 회쳐서 먹을 줄 알았다”는 사실을 짚는다. 이규보가 특별히 예찬한 ‘게’와 관련해서는 ‘게젓[蠏醢] 한 항아리’라는 글귀가 적힌 죽간이 출토된 ‘마도 1호선’과 지방에서 세찬歲饌으로 올려 보냈던 게를 언급한 고려 후기 시인 목은 이색李穡(1328~1396)의 시를 덧붙이면서 고려 사람들이 게를 적잖이 즐겼으리라고 추정한다. 흙 씻어내고 솥에 넣어 삶아 쌀밥과 함께 먹으면 생선이나 돼지고기보다 낫다고 한 ‘미나리’, 구워 먹으면 ‘신선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송이버섯’ 이야기도 간간하게 펼쳐 보인다. 다음으로 마실 것-이규보 하면 빠질 수 없는 술부터 보자. 저자는 생선을 회로 떠서 술잔을 들었다는 이규보를 보며 요즘 같으면 ‘생선회에는 소주’인데 이규보는 어떤 술을 마셨을지 찬찬히 훑는다. 이규보가 즐겨 마신 ‘백주白酒’를 막걸리로 비정하는 동시에, 소주가 13세기 말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를 거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을 곁들이며 친절하게 우리나라 소주의 역사도 알려준다. 차 또한 이규보에게서 빠질 수 없는 마실 거리. 저자는 친구에게 받은 차맷돌에 찻잎을 갈아 마시는 이규보를 보며 요즘 ‘별다방’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차抹茶, 곧 가루차를 고려시대에는 그렇게 만들었음을 보여준다. 술고래라 소문난 자신에게 술자리를 베푸는 스님에게 ‘차 마시는 즐거움이 참으로 맑고 담담하니 굳이 술에 취할 것 없으리’라 말하며 차를 찬미하는, 이규보의 술꾼답지 않은 면모를 선보이기도 한다. 그다음으로 쓴 것-이규보는 다양한 글을 써서 ‘고려’를 말한다. 〈제화이도장단구題華夷圖長短句〉라는 시에서는 남송, 금과 몽골, 고려를 한데 그린 〈화이도〉라는 세계지도를 보며 ‘고금에 어진 인재 끊임없이 태어나 중국에 견주어도 크게 부끄러울 것 없다네’라 읊는다. 고려에 대한 자부심이 한가득 묻어난다. 그렇다고 이규보가 살던 고려시대가 자부심만 가질 수 있을 정도로 태평성대였던 것은 아니다. “논밭은 모두 붉게 타서/ 곡식 싹이 무성한 것을 볼 수 없네/ 부잣집도 벌써 식량을 걱정하는데/ 가난한 사람이야 어떻게 살 수 있으랴/ 명문가에서는 날마다 자리에 술을 토하고/ 백 잔을 마시니 귀가 저절로 뜨끈해지네 …… 단지 문호의 융성한 것만 알고/ 나라가 불안한 것은 근심하지 않누나/ 썩은 선비 비록 아는 것은 없으나/ 눈물을 흘리며 매양 목메어 흐느끼네”라면서 현실을 아파하고 나라 걱정, 백성 걱정에 흐느껴 울기도 한다. 고려에 이런 것도 있었어? 흥미로운 동식물도 한가득 저자가 뽑은 이규보의 글 중에는 ‘고려에 이런 것도 있었어?’라는 질문이 절로 나오는 흥미로운 동식물도 한 아름이다. 이규보는 자신을 아껴주던 권세가의 집에서 앵무새를 보고는 ‘주인이 선비 좋아함을 알아서인지 손님 오신다는 말을 가장 잘한다’며 칭찬을 늘어놓는다. 어떻게 우리나라에 서식하지 않는 앵무새를 소재로 시를 지을 수 있었을까. 관련해서 저자는 이미 신라 때부터 앵무새를 당나라에서 들여와 왕실에서 길렀던 적이 있고, 고려시대에도 주로 송나라를 거쳐 앵무새들이 여럿 들어왔으며, 왕실이나 고관의 집에서 애완용으로 기르곤 했다고 알려준다. 자주 드나들던 권세가의 원림園林에서 잔뜩 화가 난 원숭이를 본 이규보, ‘아마도 너는 파협巴峽의 달빛 생각하여 높직한 문벌에 얽매임 싫어함이리라’라고 읊으며 알량한 벼슬자리 하나 얻겠다고 발품 파는 자신의 신세를 되돌아본다. 이외에도 《동국이상국집》에 원숭이가 등장하는 글이 30여 편은 족히 되고, 구석기시대 유적에서 원숭이 뼈가 출토되기도 했으며, 부여의 특산물이 원숭이 가죽이었다 하니 고려시대에 혹 야생 원숭이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상상해보기도 한다. 이규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