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은 대부분 ‘소크라테스’가 등장,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논의해나간다. 중기 대화편에서는 플라톤 자신의 철학이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소크라테스’는 자기 것이 아닌 플라톤 철학의 대변자 역할을 확대해나간다. <정치가>와 <소피스트>는 플라톤의 후기 인식론적 방법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대화편으로, 플라톤의 철학적·논리적 방법론이 한층 치밀하게 전개된다.
진정한 왕과 정치가의 초상을 완성하다
<정치가>에서는 철인 왕이 다스리는 이상 국가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탐색한다. 바람직한 정치가의 기능과 기준을 도출하기 위해 치밀하고 정교한 문답법이 오가는 가운데 진정한 치자(治者, politikos)의 초상이 완성된다.
법보다는 지혜를 통해 최선의 것과 올바른 것을 정확히 파악해서 모든 시민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지시하는 사람이 ‘왕도적 치자’다. 법이 인간 사회의 모든 상황에 그때그때 대처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마치 직조공이 모든 준비 과정을 거쳐 씨실과 날실을 엮어 천을 짜듯, 이상적인 치자는 국가의 하부 기관들을 통할해 모든 시민이 최대한 행복해질 수 있도록 정치라는 천을 짜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시민들의 행복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치자는 사이비 정치꾼이다. 용감한 성격들과 절제 있는 성격들로 하나의 천을 짜는 것이 정치이고, 가장 훌륭하고 가장 좋은 천으로 국가의 모든 구성원을 감싸고, 국가가 행복해질 수 있는 잠재력이 극대화되도록 국가를 통치하고 감독하는 사람이 정치가라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통치술이다. 통치술을 갖춘 진정한 정치가를 찾기 위해 펼쳐지는 치열한 논증의 문답법이 매우 인상적인데, 진리를 찾아가는 플라톤 식 문답법의 대표적 예를 보여주는 대화편이 <정치가>이다. 여기서 도출되는 ‘왕도적 치자’는 <국가>에서 논의된 철인왕과 같은 맥락이며, 이런 통치자관은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의 배경이 된다.
기원전 5세기 말 그리스에서는 웅변술과 상대주의를 설파하는 소피스트들이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사람들에게 그에 관한 지식과 재주를 가르치고 보수를 받았다. <소피스트>는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와 엘레아에서 온 방문객의 대화를 통해 그들 소피스트의 정체를 밝혀내고, 소피스트를 비판한다. 그러나 소피스트의 궤변을 비판하는 것 이상의 것을 다루는데, 소피스트가 말하는 것은 ‘거짓’인가에서 출발한 문답법이 ‘거짓’ 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즉 비존재 문제로 나아간다.
이 대화편은 만물은 ‘다름’이라는 형상에 관여할 수 있으며, ‘존재하지 않는 것’은 사실 ‘존재하는 것’의 반대가 아니라 ‘존재하는 것’과 다른 것이라는 논리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하여 플라톤은 거짓말과 거짓 생각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