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시시할지도 모르겠지만
문장이 목표하는 아름다움은 다 똑같다
모든 사람의 모든 단어를,
더불어 환히 빛나는 작고 단단한 보석으로 탈바꿈시키는 것
“조 모란은 산문을 시화(詩化)하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다.”—피터 헤네시, 사학자
“풍부하고 활기 넘치는 글쓰기에 대한 실용적인 제언.”—브라이언 딜런, 『에세이즘』 저자
“늘 우리 앞에 있었던 것을 보여주는 데서 모란의 기지가 시작된다.”—비 윌슨, 저술가
대체 불가능한 문장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단어 옆에 서기』는 텍스트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에서 출발하여 문장을 지나 문단까지 이르는 여정을 통해 단 하나의 유일무이한 글을 쓰는 법을 안내하는 작법서다. 학술 용어와 사변을 최대한으로 덜어낸 이 책은 과학, 역사, 철학, 문학을 참조한 스토리텔링으로 평범한 단어들이 어떻게 우아한 문장의 행렬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준다. 나아가 문장을 쓰는 자세와 생을 대하는 태도를 절묘히 교차시키는 이 책은 “이 종잡을 수 없이 아름답고 혼란스러운 난장을—그러니까 삶을—문장으로 잠시 이해할” 단초를 건넨다.
이 책의 저자 조 모란(Joe Moran)은 영국의 사회문화사학자로, 독일의 비평가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에게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크라카우어가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지치게 하는 삶”이라고 부르는, 생의 평범하면서 불가해한 것에 주목하는 모란은 일상의 역사와 시론, 시와 논픽션 분야의 글쓰기 교육에 힘쓰며 『만약 실패한다면(If You Should Fail)』, 『초보자를 위한 줄 서기(Queuing for Beginners)』, 『길에 관하여(On Roads)』 등 인간 존재에 대한 치밀한 통찰에 더불어 일상의 역사를 기민하게 탐구하는 책을 썼다. 대부분의 일상적인 것들이 그렇듯, 문장은 누구나 사용하는 글쓰기 도구지만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다. 모란은 전형적인 작법서의 문법에서 탈피하여 “직감과 우연의 힘을 믿고 내 문장을 헤치며” 이 책을 완성했다. 역사, 철학, 문학에서 확장한 은유와 은근한 농담, 가벼운 유머가 곳곳에 자리한 『단어 옆에 서기』는 글을 쓰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독서의 순전한 즐거움을 느끼기 위한 책으로도 손색없다.
우리는 명쾌하면서도 지나치게 명백하지 않고,
이상하지만 거부하고 싶지 않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걸 예기치 못하게 되새겨주는 문장을 원한다
모란이 은유를 설명하는 문장은 글쓰기에 대한 정의에도 꽤 어울린다. 우리는 글을 쓰며 "현실이라는 난해한 대상을 벽에 박아 고정시킨다”. 모란에게 있어 잘 쓰인 문장은 은유처럼 움직인다. 추상과 구체, 특수성과 보편성의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감정, 생각, 공상같이 형언할 수 없는 것들을 삶의 적나라한 사실과 연결시킨다. 대개 탁월함은 재능으로 주어진다고 생각하지만 모란은 글쓰기만은 꼭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한다. 뭘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핀잔을 들을 만큼 사소한 것에 매달리면서 통사, 단어 선택, 구두점, 조판의 미세한 부분을 조율하는 이 책은 작가가 글의 완성도를 견실히 높여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무작위로 나열된 상념들을 필연적인 이유로 깎아내고, 불완전하고 일관성 없는 단어들을 제자리에 놓는다. 간결하지만 납작하지 않고, 명백한 가치를 말하되 공허하지 않다. 좋은 산문은 시처럼 울려 퍼진다는 그의 말처럼 리듬과 운율, 박자를 얻은 문장은 어느새 세상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우리 삶은 클리셰로 뒤범벅되었다. 모든 게 다른 사람에게 이미 일어난 일이다. 최소한 사람들이 모든 것을 기록한 한은. […] 사랑에 빠지고 벗어나는 불균형한 감각, 유독한 우정과 원한, 좌절당하거나 뒤틀린 야망, 노화와 죽음을 향한 느린 돌진, 그리고 막간에 찾아오는 웃음과 깨달음, 기쁨의 찬란한 순간들. 모든 게 흔하디 흔하고 예측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클리셰를 여전히 살아내야 하고, 문장으로 그 순간이 얼마나 남다른 기분을 안기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체호프의 희곡 『세 자매』에서 마샤가 말하듯 “우리 각자는 자신의 삶을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우리 각자는 자신의 문장을 써야 한다고 첨언할 수도 있다.”(271-272면)
그렇게 우리는 홀로 글을 쓴다
멀리 떨어진 장소에 있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는 언어의 힘을 믿으면서
모란이 소개하는 명사의 문장들도 물론 아름답고 유용하지만, 그가 긴 지면을 할애해 이야기하는 또 다른 대상은 비웃음을 사는 나사 빠진 존재, 어딘지 미련해 보이는 이름 없는 이들이다. “이 논문은 남녀의 사랑이 스테이크와 상추의 사랑이 아님을 증명할 것이다” 같은 말도 안 되는 문장을 뱉는 산문 생성 프로그램,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타워 사이를 안전장치 하나 없이 오가며 새를 향해 손 흔들던 외줄타기 곡예사, 스몰렌스크 전투에서 맞은 탄환으로 대뇌피질이 손상되어 더는 말할 수도 쓸 수도 없었던 무명의 작가. 모란은 어설픈 교훈을 설파하는 용도로 이들의 이야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미친 사람 같은 선문답에서, 다리가 후들거리는 위험천만한 장난에서, 어린이용 독서 교재 수준의 웅얼거림에서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길어 올린다.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 우리는 시시한 일상과 그 속에 뒤엉킨 불가해를 해석할 방편을 글쓰기에서 찾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빈 지면을 앞에 두고 우리는 홀로 쓴다. 빛과 공기처럼 우릴 살아 있게 할 단어를, “멀리 떨어진 장소에 있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는” 문장을, 우릴 구해줄 단 하나의 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