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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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은 궁극적 자유, 곧 존재의 자유를 부여하는 선언이다! ★★★성염(전 주駐교황청 대사), 김기석(청파교회), 이현우(러시아문학 연구자) 추천! 두 돌판에 새겨진 3,300년 전의 계명이 현대인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서양철학의 존재론 전통 위에서, 십계명에 대한 현대적 해석을 담은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 〈데칼로그〉를 매개 삼아 십계명을 새롭게 해석해낸 역작. 2002년 출간되어 국내 지성계의 감탄과 환호를 불러온 《데칼로그》의 전면 개정판! “십계명은 인간이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지요. 그것은 애굽에서 종으로 살던 자신의 백성들을 해방시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자유롭게 살게 한 신이 이번에는 보다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자유, 곧 인간의 죄성으로부터 해방되는 영혼의 자유를 선사하려고 내린 ‘자유의 선언’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십계명은 우리에게 죄로부터 해방된 삶이 가진 자유와 기쁨을 부여하려는 신의 일관된 의지의 표출로 보아야 합니다.” _서문에서 [출판사 리뷰] 두 돌판에 새겨진 3,300년 전의 계명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탐욕에 매이고 존재의 불안에 잠식된 현대인을 위한 특별한 십계명 강의! ‘인문학의 연금술사’, ‘한국의 움베르트 에코’로 널리 알려진 김용규 선생이 모세의 십계명을 들고 독자를 다시 찾아왔다. 십계명이라니, 박물관에 진열된 4천 년 묵은 점토판에 기록된 수메르인의 법처럼 “한낱 고대사회가 남긴 유물같이 취급되고 있고, 심지어는 서서히 잊혀가고” 있는 십계명을 이 시대에 불러내는 건 좀 뜬금없지 않은가? 하지만 십계명을 고루하고 촌스럽게 여기는 이 같은 태도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러한 것처럼 ”신구약성서를 통틀어 신이 직접 돌판에 새겨 내린 유일한 성문율이 십계명이라는 성서의 기록을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실로 놀라운 일이다.” 십계명은 그것이 지닌 내용의 심오함과 소중함에 비해 너무나 쉽고 평이하게 씌어 있는 탓에 오히려 잘못 이해되고 있어 이에 대한 바르고 진중한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가장 흔한 오해는 십계명을 인간을 규제하고 억압하고자 하는 장치라고 여기는 것이다. 특히 각 계명들이 ‘~하지 말라’, ‘~하라’는 형식으로 제시되었기 때문에 십계명은 인간의 삶에 간섭하고, 자연스런 본성을 억누르도록 하는 거북스런 장치쯤으로 여겨진다. 그다음으로 흔한 오해는 십계명을 율법의 시원이나 윤리 규정의 모음집 정도로 여기는 것인데, 시대가 변했으므로 십계명은 수정 또는 폐기해야 한다는 시각이 여기서 나온다. 하지만 저자의 입장에 따르면 놀랍게도 십계명은 자유의 선언이다. 이는 많은 현대 신학자들이 지지하는 ‘자유’를 강조하는 해석, 다시 말해 오늘날 십계명 해석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구약학적·역사신학적 해석을 넘어서는 것이기도 하다. 독일 베텔 신학교의 구약학 교수인 프랑크 크뤼제만이 십계명은 억압이 아닌 자유와 해방을 위해 주어진 것이라면서 십계명은 단지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의 완전시민들을 상대로 그들이 신의 도움으로 획득한 ‘시민적 자유’를 보존하게 하기 위해서 선포되었다고 주장한 것이 그러한 해석의 대표적인 예다(41쪽).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십계명이 그저 시민적 자유를 보존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을 ‘존재’로 계시한 신이, 인간에게 바로 존재의 자유를 선사하기 위해 부여했다고 강조한다. 즉, 인간을 탐욕이라는 족쇄로 옭아매어 결국에는 파멸로 이끄는 ‘죄의 마성’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유롭게 살게 해주는 열 개의 열쇠가 곧 십계명이라는 것이다. 예수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선포했던 바로 그 자유에서 오는 기쁨과 안식을 누리게 하려는 신의 일관된 의지가 십계명에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이 책이 펼쳐 보이는 십계명에 대한 전혀 새로운 이해 방식이며, 진정으로 ‘기독교적인’ 방식인데, 이 점이 책 전체를 관통하면서 설득력 있게 해명된다. 존재론적 해석, 십계명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 이렇게 십계명을 풀이하는 방식을 저자는 ‘십계명에 대한 존재론적 해석’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최초의 존재철학자 파르메니데스에서 플라톤, 신플라톤주의자 플로티노스를 거쳐, 그리스 철학을 통해 기독교 신학을 정립한 아우구스티누스에 이르는 존재론 전통에 의해 십계명을 해석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기독교적 입장에서 보자면 교부신학에 의해, 또는 정통신학에 의해 십계명을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저자는 필요에 따라서 칼뱅의 《기독교 강요》와 십계명에 대한 신명기 연속 설교 등 종교개혁자들의 견해나 현대 신학자, 철학자들의 십계명에 대한 이해도 그때그때 참조한다. 그 결과 이 책은 십계명을 해설하는 데서 “다분히 철학적이면서도 뚜렷이 기독교적”이며 “여실히 존재론적이면서도 여전히 신학적”인 내용을 담게 되었다. 신을 하나의 존재물이 아닌 ‘존재 그 자체’로 파악하고서 십계명에 대한 사유를 전개해가는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자유, 우상숭배, 자만, 죄/죄인과 악/악인, 구원, 칭의와 성화, 소외, 사랑, 탐욕과 자족, 자기부정 등 기독교의 핵심교의와 현대인이 처한 긴박한 실존적 상황에 두루 걸쳐 있다. ‘인문학의 연금술사’라는 호칭에 걸맞게 저자는 이 주제들 하나하나에 대해 정교한 철학적·신학적 사유를 선보이며 딱딱하고 건조한 개념들을 생동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카뮈의 《이방인》 속 주인공 뫼르소와 영화 〈데칼로그 5〉 편의 주인공 야첵의 소외 경험과 그들의 황량한 내면을 비교하면서,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것이 곧 그를 존재론적으로 살해하는 것이라며 제6계명(살인하지 말라)의 의미를 확장해 해석하고, 나아가 예수의 교훈을 따라 서로 사랑하라는 것으로 그 적극적 의미를 취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제4계명(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의 안식일은 흔히 생각하듯 ‘일하지 않는 날’이라기보다는 존재물의 ’무엇 됨‘에 대한 관심과 염려에서 해방되어 존재 자체의 자유와 안식 누리는 날로 그 본래의 의미가 드러난다. 그리고 제8계명(도둑질하지 말라)은 인간을 소유 가능한 존재물로 취급하고 그의 ‘무엇 됨’을 이용하려 말고 그의 ‘있음’을 향유하고 기뻐하라는 권고로 거듭난다. 이렇게 이 책은 십계명이 대체 지금 우리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의구심을 갖는 이들에게, 십계명의 본뜻을 깊이 헤아려 전달함으로써, 자유로운 듯하지만 오히려 끝없는 욕망의 늪에서 허덕이는 현대인들에게 참 자유와 구원의 길, 가치 있는 삶의 길을 보여준다. 머리글에서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인간의 삶을 파국으로 이끄는 것이 대부분 자기 자신”이라면, 이 책이 안내하는 십계명의 본뜻을 숙고하는 것은 적어도 “살아가는 데 튼실한 길라잡이 내지 보험”을 마련하는 일일 수 있다. 영화 〈데칼로그〉를 읽는 좋은 방법 책의 제목인 ‘데카로그(dekalog)’는 그리스어로 ‘열(10)’을 뜻하는 ‘데카(deka)’와 ‘말(言)’을 뜻하는 ‘로고이(logoi)’를 결합한 말로, ‘열 가지 말’, 곧 ‘십계명’을 뜻한다. 폴란드의 거장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1941-1996)의 십계명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 담긴 10부작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타임〉지에서는 〈데칼로그〉를 1980년대 최고의 영화로 꼽기도 했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이 영화야말로 자신이 ‘걸작(masterpiece)'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영화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이 십계명에 대한 깊은 통찰과 영화감독으로서의 뛰어난 재능을 발휘해 각 계명에 담긴 심오한 주제들을 현대인의 삶을 통해 영상화하는 데에 빛나는 성취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책은 바로 이 영화 〈데칼로그〉를 이야기 전개의 매개자로 소환해, 각 장마다 영화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이 영화가 던지는 물음을 철학적·신학적으로 해명하면서 해당 계명의 의미를 설명한다. “이제 곧 알게 되겠지만, 그의 작품은 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