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시작과 열린 결말 / 프란츠 카프카의 시적 인류학

게르하르트 노이만
2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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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들(THEMEN)시리즈 2권. 게르하르트 노이만의 책 첫 장을 펼치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온다. “프란츠 카프카가 도대체 무엇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는가?” 다른 말로 하면, 그의 문학이 어째서 현대문학의 새로운 시작이 되었는가라는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카프카 해석의 대가가 아니고서 다짜고짜 던질 수 있는 질문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카프카의 텍스트를 ‘실패자의 텍스트’로 읽자는 벤야민의 제안을 이어받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체 여기서의 ‘실패’란 무엇을, 어떤 실패를 의미하는 것일까. 나아가, 이 실패가 어째서 ‘열린 결말(새로운 시작을 암시하는)’로 이어진다는 말인가. 또한 그것이 새로운 ‘인류학’의 창조―현대 세계에 대응하는 문학과 정치철학의 수행―를 낳았다는 말인가. 게르하르트 노이만의 카프카 연구가 집약되어 있는 이 작은 책이 이 거창한 물음에 충분히 답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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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INTRO 1 임마누엘 칸트: 「추측해 본 인류사의 기원」 2 발터 벤야민의 자서전적 인류학 3 카프카의 인류학: 의심의 여지가 없는 죄 4 교양소설의 시나리오 5 삶의 “경력” 6 성공으로서의 실패: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7 서술 전략으로서의 메타 서사 8 의식성과 연극성―장편소설 『소송』의 도입부 9 눈먼 비유담―장편소설 『소송』의 대성당 챕터 10 “경력” 건축의 실패: 「굴」 11 인간과 동물의 경계에 있는 인류학 저자에 대하여 옮긴이의 말 해설을 대신하여 프란츠 카프카 연보

Description

카프카라는 이름은 어디에나 있다. 비단 문학 안에서만이 아니라 문학의 바깥에 이르기까지, 편재해 있다. 그 이름은 문학적 주제를 넘어 어렵고 까다로운 철학서에 등장하는가 하면, 서점과 카페와 레스토랑에서도 마주치는 이미 널리 ‘대중적인’ 이름인 것이다. 아도르노가 그랬던가. 카프카의 작품들은 한편으로 ‘나를 해석해 보라’고 제안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해석을 허락지 않고 문을 쾅 닫아거는 아포리아로 가득 차 있다고. 카프카와 거의 동시대에도, 그는 언제나 논란의 대상이었다. 병상의 브레히트와 벤야민은 카프카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카프카의 이미지는 대단히 훌륭하다. 그러나 그 밖의 것은 비밀의 잡동사니이다. …… 깊이를 가지고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브레히트) “깊이에 들어가는 것은 정반대의 입장에 들어가기 위한 나의 방식이다.”(벤야민) [물론 브레히트가 카프카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만 했던 건 아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카프카 문학의 정확성이란 어떤 부정확한 것, 즉 꿈꾸는 자의 정확성이다.”] 루카치는 카프카를 놓고 왔다 갔다 했다. 카프카는 “객관적 현실을 세계에 대해 불안에 찬 자신의 견해로 대체”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하등 도움이 안 될 문학이라 했다가, 정작 그 자신 스탈린주의자들에 의해 드라큘라 백작의 성에 갇히자 “내가 틀렸다. 카프카는 결국 리얼리스트였다”고 했다. 논란은 여전할 테지만, 전후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사정은 카프카가 ‘대세’이다. 문학 안에서도, 문학 밖에서도. 모리스 블랑쇼, 들뢰즈와 가타리, 데리다와 아감벤 등등, 이른바 현대 문학과 현대 (정치)철학에서 카프카와 그의 작품은 끊임없이 소환되고 있는 것이 그 방증이다. 우리(한국)의 경우도 그런가라는 물음에 이르면, 사정은 좀 다를 것이다. (비평본까지는 아니더라도) 카프카 전집을 포함하여 그의 소설, 편지, 일기 등이 여러 출판사 버전으로 번역 출간되어 있지만, 정작 특정 작품에 대한 말 그대로 ‘작품 해설’ 내지 특정 주제로 접근하는 카프카 연구를 넘어선, 카프카 문학의 ‘전모’로 곧장 파고드는 본격적인(혹은 근원적인) 해석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자학일까. 지금 소개하는 게르하르트 노이만의 『실패한 시작과 열린 결말 / 프란츠 카프카의 시적 인류학』의 첫 장을 펼치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온다. “프란츠 카프카가 도대체 무엇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는가?” 다른 말로 하면, 그의 문학이 어째서 현대문학의 새로운 시작이 되었는가라는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카프카 해석의 대가가 아니고서 다짜고짜 던질 수 있는 질문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카프카의 텍스트를 ‘실패자의 텍스트’로 읽자는 벤야민의 제안을 이어받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체 여기서의 ‘실패’란 무엇을, 어떤 실패를 의미하는 것일까. 나아가, 이 실패가 어째서 ‘열린 결말(새로운 시작을 암시하는)’로 이어진다는 말인가. 또한 그것이 새로운 ‘인류학’의 창조―현대 세계에 대응하는 문학과 정치철학의 수행―를 낳았다는 말인가. 게르하르트 노이만의 카프카 연구가 집약되어 있는 이 작은 책이 이 거창한 물음에 충분히 답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이제 독자의 몫이다. 적어도 이렇게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견고한 카프카 문학의 성 안으로 들어가는 믿을 만한 열쇠 하나가 우리에게 선물처럼 다가왔다고. “우리가 사는 세계는 신의 언짢은 기분, 기분이 나쁜 날일 따름이야.” “경계에서 변신이 일어난다.”―게르하르트 노이만의 이 책 『실패한 시작과 열린 결말―프란츠 카프카의 시적 인류학』에 나오는 구절이다. 카프카가 태어났던 19세기 후반(1883)에서 그가 살았던 20세기 초반은 어떤 시대였을까. 그에 앞서 태어난(1821) 보들레르(Charles Pierre Baudelaire) 가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에서 근대 자본주의의 전개를 ‘충격(Schock)’을 온몸으로 경험하며 “악의 꽃”을 피워 올렸다면, 고색창연한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 프라하에서 창을 통해 불안한 어둠이 그 끝을 삼켜버리는 길을 바라보던 카프카에게 이 세계는 어떤 것이었으며 오로지 문학을 운명으로 알았던 그는 마흔 살의 생을 통해 그 세계와 그 속에서 부침하는 인간적 삶의 운명을 무엇으로 파악하고 있었던 걸까. 벤야민이 보들레르의 세계에서 찾아낸 근대성의 충격은 다름 아닌 ‘방향 설정의 충격(Orientierungschock)’이었으며, 이 충격은 그 시대를 사는 인간적 삶의 이력을 ‘실패’로 이끄는 것이었다. ‘삐긋하게 어긋나 버리는 삶’―그래서 게르하르트 노이만은 『실패한 시작과 열린 결말―프란츠 카프카의 시적 인류학』의 시작을 임마누엘 칸트의 “서사적 인류학”으로부터 시작하여, 벤야민의 “자서전적 인류학”을 거쳐 카프카의 좌절하는, 실패하는 인간의 ‘새로운 (시적) 인류학’으로 책의 전반부를 채운다. 모더니티의 눈부신―그러나 몹시 혼란스런―전개 앞에서 게오르크 루카치는 파탄 난 인간적 삶과 영혼의 동경을 담는 글쓰기(“영혼과 형식”)를 시도했고, 벤야민은 지금과는 다른 삶을 긍정하기 위한 잡지 “새로운 천사”를 기획하지만 거듭 실패하기도 하던 그런 시대였다. 칸트의 계몽주의적 낙관은 이미 부서졌고,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1829)로 눈부시게 펼쳐지고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의 “감정교육”에서 진가를 보여준 전통적 교양소설(Bildungsroman)의 기획 역시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된 그런 시대였다. 19세기의 끝자락과 20세기의 서두에서 자신의 장대한 ‘교양소설’을 꿈꾸며 시작했던 카프카에게, 그러므로 실패는 예고되어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막스 브로트에 의해 사라짐으로부터 구출되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던 그의 세 장편소설 『소송』 『실종자』 『성』(노이만은 이 세 편이 거대한 하나의 장편소설의 전개였다고도 말한다)은 그 실패를 증언하듯 모두 미완의 텍스트―실패자의 텍스트―였다. 카프카의 방대한 일기와 편지들이 확인시켜주는 바이지만, 그는 장편소설이 실패하는 지점에 도달할 때마다 ‘단편산문(Kurzprosa)’에 매달렸고, 새로운 비유담의 형식을 구현한 이 단편들(이 역시 벤야민, 그리고 노이만에 따르면 ‘실패’를 형상화한 텍스트인)로 현대 소설의 정점에 당도한다. 마치 보들레르가 유일한 시집 『악의 꽃』 과 산문(시)로 현대시의 창시자로 평가되는 것처럼, 카프카는, 아니 카프카야말로 이 실패를 실존으로 살아내고 그것을 자신만의 메타 서사 전략을 통해 형상화함으로써 ‘현대성’을 극명히 드러낸 새로운 문학-인류학을 유산으로 남겨 놓은 것이다. 실패한 작가 카프카의 이 역설적인 ‘성공’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에 앞서 카프카는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그보다 더 중요하게는―거듭 실패하기를 중단하지 않았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카프카 문학만이 아니라 현대 소설의 가능성 문제를 이해하는 데 관건적인 물음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좀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문학의 가능성인 동시에 현대 세계에 대응하여 인간적 삶의 다른 가능성을 탐구하는 정치-철학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경계에서 변신이 일어난다.”―프라하의 유대인 게토의 경계에서 태어나 평생 빌려 쓴 언어인 독일어로 작품을 쓴 카프카 문학에서 시도된 이 ‘변신(변화)’의 가능성을 이해하지 못하고서 문학이 갈수록 이 분열이 첨예화되어 가는 세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판단하는 생각은 아픔으로 괴로워했다. 격심한 고통을 더하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마치 완전히 불타 버리는 집에서 마치 건축의 근본 물음을 처음으로 던지는 것과 같다.” 카프카의 작품들은 “완전히 불타 버리는” 세계에서 “건축의 근본 물음을 던지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카프카의 장편소설이 실패하고 미완으로 끝났다면, 이 서술 불가능성을 초래한 위기는 무엇이었을까. 한쪽에서는 시작을 가로막고 다른 한쪽에서는 결말을 마무리하지 못하게 하는 위기란. 다르게 말하자면, 삶을 스스로 형성하는 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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