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한국 시의 자부심, 고은 전작시 『만인보』 24∼26권 출간! 현대시사의 살아 있는 전설로 한국시단을 대표하며 열정적으로 세계시단으로 활동무대를 넓힌 시인, 1958년 공식적인 문단활동을 시작한 이래 50년여에 걸친 세월 동안 변함없는 창작혼을 불사르고 있는 고은(高銀)의 『만인보』 24, 25, 26권이 출간되었다. 21∼23권을 출간(2006년 3월)한 지 1년 7개월 만에 395편(24권 121편, 25권 149편, 26권 125편)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시들을 묶었다. 민초의 삶과 역사에서 잊혀져가는 인물들에 다시금 혼을 불어넣는 『만인보』의 작업은 이번 24∼26권에서도 이어진다. 특별히 주목되는 점은 신라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불교사를 고승들의 삶과 행적을 좇으며 복원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고은은 선사나 고승 들의 삶을 시 속에서 마냥 경외의 대상으로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 자체를 직시하고 해학과 비판적인 요소를 가미해 부각시키기도 한다. 이를 통해 우리 역사에서 뿌리깊은 사대주의를 꼬집기도 하고(26권 「자장」), 이회광을 비롯해 친일승들의 행적을 준엄하게 비판하기도 한다(24권 「그 두 사람의 수작」, 25권 「친일승 몇대」, 26권 「변설호」). 많은 시에서 탈속한 고승들의 고매한 정신을 드높이지만, 세속에 봉사하고 난장에서 구도의 길을 찾은 승려(25권 「기와스님」)의 아름다운 면모와 난세에 구국의 길로 나선 승려(25권 「영규」 「허백 명조」, 26권 「벽암 각성」)를 칭송하는 한편, 세속적인 욕망과 권력욕에 눈이 먼 승려들의 삶을 통해 잘못된 역사를 일깨워주기도 한다. 이번 만인보 작업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고승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점인데, 시인은 세속과 탈속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있다. 사랑에 눈이 먼 승려(24권 「뜬눈」 「상사병」)나 남색(男色) 빠진 노승(26권 「남색 사자」)을 통해서는 해학과 더불어 애잔함을 느낄 수 있다. 고은의 입김을 통해 시 속에서 되살아난 승려들의 사상과 행적은 어렵지 않고 친근한 느낌까지 들어, 독자들이 쉽게 그들의 삶과 깨우침에 다가갈 수 있다. 불교사를 복원하는 한편에는 지난 만인보 작업의 연장선에 서 있는 작품들도 적지 않다.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에 중심에 선 인물들을 통해 권력의 무상함과 역사의 아이러니(26권 「견훤」, 24권 「기황후 권세」 「공녀」)를 노래하기도 하고, 문인들의 애틋한 일화(25권 「어느날 박용래」)를 비롯해 군사정권의 잔혹성에 대한 비판(25권 「전두환」), 김학철 등 독립운동 전투에 몸을 던진 인물들(25권 「두 전사」)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산 당대 인물(25권 「정수일」, 26권 「어린 수일이」) 등에 대한 소묘도 포함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이름없는 민초들의 삶을 통해 전해지는 비극은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동학운동을 통해 드러난 민중의 힘과 좌절(24권 「서포」 「미녀 이소사」, 26권 「한 소년대장」), 다산의 숨겨진 부인과 딸에 대한 묘사(25권 「다산의 마음」 「홍임이」)는 시인이 역사의 이면에서 건져올려 잔잔한 시적 울림으로 승화시킨 것들이다. 고은의 시세계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기법상 후퇴’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면서 『만인보』가 ‘통시적이며 우리 민족의 모든 인간상을 두루 포함시키려는 시도의 소산’이라는 평가(김용직 해설 「탐색과 성과―『만인보』의 세계」)처럼 시인은 우리 역사와 민중들의 빛과 그늘을 끊임없이 파헤치고 평가하면서 작업을 해왔다. 시의 형태로 이뤄내는 이러한 역사 다시쓰기는 우리 문학사의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작업이다. 막바지에 다가가는 『만인보』 작업은 우리 문학사에 눈부신 업적으로 남을 것으로 그 귀추가 각별히 주목된다. 고은 시인은 내년으로 등단 50년을 맞이한다. 이를 기념하여 인사동에서 그가 손수 그린 그림 등을 선보이는 전시회를 열 계획이며, 만인보 역시 2008년에 30권으로 완간할 예정이다. 『만인보』는 분량 때문에 독서의 어려움이 있다고들 하지만 한번 잡게 되면 그 흥미와 재미로 손을 놓지 못할 정도로 흡인력이 있다. 이번 만인보 역시 역사의 이면과 민중의 삶을 통해 울고 웃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전달함으로써 다시 한번 커다란 감동을 안겨줄 것이다. 이것은 세계적인 시인이자 한국 시단의 자부심인 고은만이 일궈낼 수 있는 거대하고 방대한 역작임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