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플라스틱모형을 통해 보는 20세기 소년들의 생활사 21세기의 성인은 20세기의 소년이다. 21세기 소년들이 스마트폰을 쥐고 살아가듯이, 20세기 소년들의 손에는 플라스틱모형이 들려 있었다. 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소재인 플라스틱이 20세기 소년들에게 준 최고의 선물은 플라스틱모형이었다. 유교적 엄숙주의는 그것이 장난감인 것이 못마땅해 ‘과학교재’라고 이름 붙였지만, 20세기 소년들에게 플라스틱모형은 교재 이상의 것이었다. 손 안에서 만들고 만나는 축소 모형은 그 자체로 작지만 커다란 세계였다. 1970년대에서 1990년대 초등학교를 다니던 20세기 소년이라면, 누구에게나 공통된 경험이자 공통된 동심의 기원이며, 당면해서는 ‘키덜트 문화’의 뿌리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 놀이문화의 그루 현태준이 20년 덕질의 내공을 모아 국산 플라스틱모형의 역사를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이 책 《소년생활 대백과》는 국산 플라스틱모형 자체의 역사뿐 아니라, 당대의 시대상을 돌아보며 플라스틱모형업체와 어린이잡지, 문방구, 만화영화 등의 관계 속에서 어린이문화 전체를 조망하고 있어 모형 마니아뿐 아니라, 20세기 소년들에게 가치 있는 기념품이 될 것이다. Ⅰ. 국산 플라스틱모형의 역사 1. 플라스틱모형과의 첫 만남 책장을 열면, 저자 현태준은 우리를 1970년대의 풍경 속으로 이끈다. “그 시절 대부분의 아이들은 방과 후 시간이 남아돌았다. 할 일 없는 아이들은 학교운동장에서 공차기나 다방구놀이를 하고, 들판으로 나가 연날리기와 총싸움, 심지어 위험천만한 불장난까지 즐겼다. 어쩌다 용돈이 생긴 아이는 만홧가게나 문방구를 어슬렁거렸다.”(15쪽) 1970년대 초반, 장난감은 비싸고 귀한 것이었기에 아이들이 구할 수 있던 놀잇거리라고는 10원짜리 종이딱지나 구슬, 종이인형 같은 것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난생처음 보는 물건이 문방구에 등장했다. 바로 플라스틱모형이었다. 20세기 소년과 플라스틱모형의 첫 만남은 경이로운 것이었다. 60원에서 100원, 며칠 군것질을 참으면 구입할 수 있었고, 상자 안의 부품을 설명서에 나온 대로 맞추다 보면 사진으로만 보던 비행기와 탱크가 내 손안에서 탄생했다. 저렴한 가격에 만드는 재미와 가지고 노는 재미까지 더했으니 아이들에게 이만한 놀잇거리가 없었다. 하지만 유교적 엄숙주의와 생산성 위주의 근대화 이데올로기가 충만했던 그 시절, 어린이들의 놀잇거리에 대한 어른들의 태도는 엄격했다. 만화에 대해 그러했듯이 플라스틱모형에 대한 염려와 비판은 끊이지 않았다. 불량 제품에 대한 공격과 본드의 유해성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지만, 플라스틱모형의 인기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어린이들은 어떻게든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쟁취한다. 더 사실적으로 말하자면, 어린이들의 수요와 요구를 플라스틱모형 제조업체가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플라스틱모형은 과학교재라는 이름을 달고 학습과 지능개발에 도움이 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80년대를 지나 90년대까지 어린이들 곁에 남아 있었다. 2. 플라스틱모형과 어린이잡지와 문방구의 시대 ‘불량만화’의 대안으로 제시된 <소년중앙>, <어깨동무> 같은 어린이잡지의 열풍은 이미 시작된 ‘조립식 장난감’에 대한 관심에 불을 당겼다. 어린이잡지의 광고지면은 플라스틱모형으로 채워졌고 광고의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70년대 <소년중앙>의 광고단가는 흑백면이 10만원?12만원 선으로 100원짜리 제품 1만 개와 맞먹는 금액이었지만, 광고 효과는 수십 배의 수익을 가져다주었다.” (37쪽) 어느덧 어린이잡지와 플라스틱모형업체는 동반성장하는 밀접한 관계가 맺어졌고, 이 둘을 어린 소비자들과 연결시켜주는 문방구 또한 전성기를 맞이했다. 1970년대 고도의 경제 성장기, 도시는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수요를 찾아 도시로 이동하는 농촌인구가 급증했다. 도시의 변두리에는 기하급수적으로 아이들 수도 증가했지만 학교시설은 인구증가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2부제, 3부제 수업이 진행되던 학교 앞 문방구는 하루 네 번, 여섯 번의 러시아워를 맞이했고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어린이들의 백화점’인 문방구에서 가장 큰 매출을 차지하던 대표 상품은 어린이잡지와 플라스틱모형이었다. 플라스틱모형, 어린이잡지, 문방구는 서로 다른 축을 맡으며 70, 80년대 키즈산업의 한 시절을 지나온 것이다. 3. 모형업계의 과열과 2세대 소비자의 출현 1970년대 후반에 이르면 플라스틱모형은 대도시는 물론 전국의 중소도시 아이들에게 일상적인 문화로 자리매김한다. 플라스틱모형의 활황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많은 신생업체들이 모형사업에 뛰어들었다. 신생업체들이 난립하고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났다. 준비 없이 뛰어든 신생업체들의 조악한 불량제품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중복개발이었다. 무한 경쟁 속에서 가장 확실한 투자는 인기 만화영화 캐릭터를 제품화하여 판매하는 것이었기에, 여러 업체에서 동시에 같은 제품이 출시되는 아수라장이 펼쳐지기도 했다. 대부분이 일본 제품의 무단복제였지만 당시로서는 원판 캐릭터 모형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본 지인을 통하거나 보따리 장수를 통해 캐릭터모형의 원판을 구해 금형제작을 맡긴다 하더라도 제 때에 비용을 지불하지 못하면 다른 모형업체로 금형이 넘어갔고, 국내 복제품을 다른 업체가 다시 복제하여 출시하는 복마전이 반복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악한 불량품을 만들던 회사들은 아이들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고 아카데미과학, 아이디어과학 등 품질개발에 공을 들인 회사들이 인정받게 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자 형들이 만드는 모형을 보고 자란 다음 세대들이 플라스틱모형의 소비 대열에 합류했다.” (55쪽) 2세대 모델러들은 경제적으로 조금 더 풍요로웠고, 컬러텔레비전과 비디오 플레이어의 보급, 일본문화 유입 등으로 기호 또한 정교하고 다양했다. 비록 무단복제품이기는 했지만 모형업체의 금형 및 제작 기술, 박스의 디자인과 키트의 구성 또한 발전했다. 금형 기술의 발전과 함께 <로보트 태권브이> 이후 국산 캐릭터의 등장으로 드디어 순수 국산 캐릭터모형 개발의 조건이 전제되었다. 그러나 국산 캐릭터 모형은 기대와는 달리 엉뚱한 방향으로 발전되었다. 4. 좌절된 순수 국산 플라스틱모형의 꿈 “<로보트태권V>의 인기에 힘입어 1982년 <슈퍼태권V>와 1984년 <84태권V>가 차 례로 개봉하면서 아이들 사이에서 국산 만화영화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타올랐다. 주목할 점은 이 시기에 모형업체와 완구업체가 국산 만화영화의 제작비를 지원 하는 스폰서로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59쪽) 국산 만화영화를 만들기 위해 자본이 투여되고, 만화영화는 만화영화대로 플라스틱모형은 플라스틱모형대로 발전하며 수익을 올리고, 그 수익금이 투자되어 제품의 질이 높아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제작비를 지원한 모형업체, 완구업체는 국산 플라스틱모형 발전에는 큰 요구가 없었다. 스폰서가 된 업체들은 힘들게 제품을 디자인하고 금형을 설계하느니 이미 일본에 출시된 캐릭터제품의 손쉬운 복제를 선택했다. “(스폰서) 업체에서 복제할 원판을 영화사에 보여주면 영화사는 그것에 맞게 기본설정을 변경했고,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각종 캐릭터도 일본 만화영화에서 무분별하게 가져왔다. 이렇게 표절로 얼룩진 국산 만화영화가 개봉되어 인기를 끌면 스폰서업체는 미리 준비한 복제금형을 가지고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하면서 이윤을 극대화했다.” (59쪽) <슈퍼태권V>는 일본 제품 <전투메카 자붕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