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 위의 식사

전경린 · Novel
2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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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엄마의 집>의 작가 전경린이 다시 사랑을 말한다. 사랑을, 증오를, 관계를, 삶을, 영혼을 후벼파고, 또 다시 끌어안는 작가 전경린. 그녀가 발견한 사랑은 쓰고 뜨겁다. 사랑에 관한 한,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의 감정에 엄청난 권리가 있다고 착각을 한다. 내 사랑만큼은 언제나 가장 순결하고 고귀하다. 내 사랑에는 늘 욕심부리지만, 때로는 두렵기도 하다. 더 많이, 더 깊이 사랑을 하다 혹시 상처입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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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풀밭 위의 식사 작가의 말

Description

독은 독으로 푸는 것이다. 다이아몬드를 다이아몬드로 자르듯이. 사랑은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고, 미움은 미움으로 이겨내는 것이다. _전경린, 『나비』 중에서 “깨어지지 않는 게 사랑이야. 어떤 균열이든 두 팔로 끌어안고 지속하는 그것이, 사랑의 일이야.” 전경린은, “독을 독으로 푸는” 소설가다. 그의 매혹적인 문장들은, 언제나 그 치명적인 독성으로 인해 독자들을 꼼짝 못하게 만든다. 더 벼리지 않아도 그 자체로 이미 더없이 날카로운 그의 펜 끝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거둘 수 없는 증오를, 화해되지 못하는 관계를, 부서지고 조각난 삶을, 그로 인해 온통 흔들리는 영혼을, 후벼판다. 그리고, 역시 그 날 선 펜 끝으로, 그 모든 것들을 다시, 온전히 끌어안는다. 전작 『엄마의 집』에서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냈던 전경린은 새 장편 『풀밭 위의 식사』에서 다시, ‘사랑’을 말한다. 사랑의 감정에 대해, 사랑하는 이들의 현재와 과거에 대해, 사랑의 본질에 대해 그보다 더 아름답고도 정확하게 그려내는 작가가 또 있을까. 마음 한켠을 날렵하게 베어내 얇게 벼린 그 조각을 들이미는 듯한 그의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은, 어느새 자신의 마음자리까지 작가에게 내어주고 말게 된다. 소설 속 인물들과 독자들의 마음까지를 온통 깨어지기 쉬운 유리의 그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작가는, 그러나, 말한다. “더 많이, 깊이 사랑한 사람은 사랑으로 인해 다치지 않아.” * 소설은, 그 시작부터 이미 깨어질 것을 알았지만, 그 예고된 위험마저 받아들인 ‘그 여자’, 누경에게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여자를 바라보는 한 남자. 그 여자는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잔을 들어올리거나 내려놓는 동작을 따라 검은 머리카락이 어깨 위로 가볍게 흩어졌다. 유난히 팔이 긴 듯하고 손이 희었다. 기현은 그 여자의 옆 테이블에 대각선으로 앉아 있었다. (……) 두 여자는 간간이 웃음소리를 냈고 이따금 음성이 바닥을 스치듯 낮아졌다가 다시 올라가곤 했다. 대각선에 앉은 여자가 미소를 지으며 기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기현은 자신이 그 여자를 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황급히 눈길을 피했다. 눈길을 피하면서, 미소지은 여자의 눈 속에 잠겨 있던 검은 섬광에 놀랐다. 얼린 맥주잔 속 시원하고 진한 맛의 맥주가 거품과 함께 목젖을 감으며 위장에 싸하게 스며들 때, 그때 몰려오는 통렬한 청량감, 여자의 가늘고 흰 팔, 공기를 흩뜨리는 웃음소리, 공중에서 부딪히고 얽혀드는 그 눈빛…… 이 기록을 하는 것이 두렵다. 그런데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누가 읽을까봐 무서워하면서, 나는 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숨겨진 그녀의 일기장 속의 한 남자. 두려워하면서도 쓰지 않을 수밖에 없는 그녀의 일기장은 어떤 사람과, 사랑과, 삶과, 기쁨과, 그리고 상처의 기록들로 메워져 있는 것일까. 글자들은 망각의 물 위에 쓰인 것처럼 한순간 읽혀진 뒤에 다시 비밀 속으로 가라앉았다. 오직 글자들이 해독되는 순간에만 그 시절의 기억도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누경은 낯익은 자신과 낯모를 자신을 나누며 일기를 읽어나갔다. 우리의 두 눈은 꽃처럼 많은 겹으로 피어 있었다. 인간의 눈 속에 그토록 많은 눈꺼풀이 들어 있었다니…… 우리가 포옹한 시간이 실제로 몇 분 동안이든, 그 순간은 감각작용의 편애를 받으며 시간을 벗어나 영원이 되어버렸다. 그런 일은 더이상 시간에 속한 일이 아니다. 그날 이후, 나는 몇 개의 영원 속에서 살고 있다. * 단둘이 있는데도 더욱더 단둘이 있고 싶었다. 자신이 하려는 행위를 의심하듯 그는 손가락 끝으로 나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밥냄새와 미소국 냄새와 맑은 생선 냄새와 바다 냄새와 깊은 산골의 냄새가 차례로 지나갔다. “우린 마음이 같을까요?” 내가 물었다. 그가 숨도 쉬지 않고 대답했다. “같아.” 왜 그렇게 슬픈 눈으로 나를 보았나요? 눈을 감으면, 당신 눈 속의 눈동자가 내 눈 속에 고인 물처럼 흔들려요. 당신의 속눈썹이 내 속눈썹을 덮어요. 여린 속눈썹 아래서 이슬처럼 떨리는 이 집요한 시선…… 내가 당신을 보고 있는지 당신이 나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어요. 이토록 보고 있다 해도 여전히 보고 싶어요. 어쩌다가,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이런 일을 만들었는지, 우리가 원한 건 단지 보고 싶어하는 마음인 걸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라고 당신 눈이 말하네요. 그러면 나는 이 마음을 생의 끝까지 지니고 가야 하는 건가요? 그 외에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요? 차라리 이 마음을 부수어버리고 싶어요. 내 눈 속에 가만히 닫아 익사시키고 싶어요. 화장시켜 멀리 날려버리고 싶어요. 그렇게 나를 해쳐서 헝겊인형 같은 무생물의 마음이 되어 당신이 죽을 때, 단 한 번 열리는 그 구멍 속으로 순장처럼 함께 사라지고 싶어요…… 더 사랑하는 사람이 상대를 허용한다. “더 많이, 깊이 사랑한 사람은 사랑으로 인해 다치지 않아.” 사랑에 관한 한, 사람들은 자기의 감정에 엄청난 권리가 있다고 착각을 하곤 한다. ‘내 사랑’만큼은, 언제나, 어떤 이유에서건 가장 순결하고 고귀하다. 내 사랑에 대한 권한이 있는 만큼 욕심을 부리지만, 때문에 또한 두렵기도 하다. 더 많이, 더 깊이 사랑을 하다 혹시 상처입지 않을까…… 하지만, 세 노르말. 세 노르말 c’est normal, 이 표현은 극복하거나 피하기 어렵다는 점에 역점을 두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안고 일상적인 상황으로 돌아가자는 뜻으로 쓰인다고 했다. 세 노르말 c’est normal,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것을 안고 일상적 상황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럴 것이다…… 사람들은 내 눈 속의 사랑을 보고 당황하죠. 그것이 무엇을 향한 것인지 알고 싶어했어요. 정체불명의 사랑이 내 눈 속에 낙화처럼 떠돈다 해도, 나의 웃음이 도처에서 사랑처럼 보였다 해도, 실은 그 누구를 향하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보다는, 정말 그보다는, 들에 핀 꽃나무가 누구를 향하지도 않으면서 세상을 밝히며 활짝 피어나듯, 내 사랑도 그런 것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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