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바로 지금,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이름
1913년, 마르셀 뒤샹이 아모리 쇼에 「계단을 내려나는 나체」를 출품하자 뉴욕의 화단은 동요했고, 이를 계기로 그는 전위미술의 화신이 되었다. 이후 81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뒤샹은 언제나 가장 혁신적인 예술가 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이룬 업적은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으며, 그의 행적은 끊임없이 인용되는 예술의 지표로 남아 있다.
앙드레 브르통은 뒤샹을 가리켜 ‘금세기 최고의 지성인’이라고 칭송하기도 했지만, 그의 명성은 과대포장된 것이라는 비난도 끊이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마르셀 뒤샹은 우리 시대의 급진적 예술 분야에 불멸의 신화를 남긴 장본인이라는 점이다.
뒤샹은 미술사에서 이미 완결된 하나의 역사 혹은 신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다. 그 신화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뒤샹이란 이름이 현대미술의 현장 어느 곳에서나, 때로는 미술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뒤샹의 업적은 세잔이나 피카소 등과는 달리 특정한 경향에 묶여 있지 않고 예술 자체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다. 나아가 그의 신화는 서구 모더니즘 위에 세워진 기존의 미술사와 미학에 대해, 미술제도와 시장 그리고 미술기관에 대해 논쟁을 유도한다.
『뒤샹, 나를 말한다』(원제: Marcel Duchamp, sa vie m?me)는 그의 삶과 예술을 전기형식을 빌어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특히 그의 육성을 고루 배치하고 있다. 엮은이 마르크 파르투슈는 뒤샹이 실제로 자신의 작품과 삶 그리고 예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말했는지를 여러 자료를 통해 수집해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을 쓸 당시 나의 계획은 뒤샹에 대한 그저 그런 텍스트를 만드는 데 있지 않았다. 즉 오브제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 찬 수많은 뒤샹에 관한 연구물 중 하나에 불과한 책이 아니라 ‘예술가의 삶’에 대해 면밀하고 철저하게 조사하려 했다. 사실들을 간결하게 정리하고 작가의 말 자체를 거의 독점적으로 받아쓰는 두 가지를 합치는 방식을 사용했다.
(중략) 뒤샹에 대한 책들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이 책을 대체할 만한 전기는 아직도 찾아볼 수 없다. 이 책은 장르와 형식의 면에서는 여전히 유일하다.”(개정판 서문 중)
이 책은 마르셀 뒤샹의 작품에 새로운 접근을 한다기보다는 단순히 처음으로 가장 완전한 전기적 관점을 제시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작가에 대한 조명, 해설, 정보를 보충하는 대신 뒤샹 자신이 언급한 내용들을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 객관적인 사실을 연대별로 구성했으며, 해설은 가능하면 제외시켰다.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는 ‘뒤샹이 말하는 뒤샹’은 동시대의 예술에 깊게 빠져들지 않고, 언제나 거리를 둔 채 관계를 맺어온 존재이다. 또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삶 속에서 직접 실천하며 즐겼던 무정부주의자였다. 뒤샹이란 이름이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는 지금, 작가의 삶 속에 흐르는 자유의지와 무심함이 어떤 것인지, 자기 삶 자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는 과정을 목격하는 것은 매우 유의미한 일이 될 것이다.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한 통로, 뒤샹
마르셀 뒤샹은 모순과 혼돈으로 가득한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한 좁은 통로라 할 수 있다. 그는 모더니즘 미술을 부정하는 삶을 살았고 전통적인 창조의 개념 자체를 해체시킨 장본인이었다. 현대미술의 세계를 여행할 때 뒤샹이 쳐놓은 사유의 그물망 안에 머무르는 작가들과 마주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예술가로 살면서 가장 혁신적이며 실험적인 작업을 했던 뒤샹의 업적은 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도 여전히 살아 있으며, 이는 현대 예술가들이 그의 활동을 상기시키는 작품들을 계속 생산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특히 오브제를 사용하는 설치 작품과 개념미술의 울타리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은 뒤샹이 전파한 반(反)예술적 태도를 새로운 미술창조의 전략으로 수용하기도 한다. 그만큼 뒤샹의 행적-그의 작품뿐만 아니라 삶 자체를 포함해-은 현대미술을 이해하고 비평하는 데 빼놓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1912년 이후 뒤샹은 본격적으로 입체주의나 미래주의 같은 미술계의 주류 경향들을 앞지르며 당대의 화단에 다다이즘의 기운을 퍼트리고 초현실주의로 물들였다. 「계단을 내려가는 나체」, 다다이즘의 경향을 담은 「오자 뮤지컬」과 「엘.아슈.오.오.큐.」, 그리고 초현실주의적 경향의 작품들인 「비밀스런 소음」, 「에로즈 세라비는 왜 재치기를 하지 않는가?」 등이 당시 그의 활동을 대변한다.
뒤샹은 또한 이 시대의 가장 혁신적이고도 생동감 넘치는 미술운동의 탄생과 그 흐름에 영향을 미쳤다. 1942년부터 존 케이지와 로베르토 마타(일명 에쇼렌)는 뒤샹의 가르침을 방법적으로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를 지나면서부터는 뒤샹의 작품에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팝아트가 발생하는데, 이는 미국의 재스퍼 존스와 로버트 라우센버그, 영국의 리처드 해밀턴 등이 이끌었고 그 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앤디 워홀과 다인을 통해 전개되었다. 유럽에서는 그의 「로토릴리프」와 또 다른 시각장치 작업들의 뒤를 잇는 옵아트의 경향이 나타난다. 같은 시기의 프랑스에서도 누보 레알리스트들이 뒤샹의 뒤를 이으면서 출범했다.
1970년대를 전후하여 플럭서스 운동의 주역들인 로베르 필리우, 조지 브레히트 등은 뒤샹을 정신적 지주로 추앙했으며, 미니멀 아트, 개념 미술, 언어 미술, 신체 미술의 언저리에는 여전히 뒤샹이 머물고 있다. 오브제,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의 개념을 사용하는 예술가들이 화단에 급격히 부상한 오늘날, 뒤샹은 그 어느 때보다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예술가라 할 수 있다.
전복과 유희로 예술의 성질을 바꾸다
「자신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조차도」나 뒤샹의 첫 번째 레디 메이드 작품인 「자전거 바퀴」 같은 몇몇 작품들은 예술의 성질을 바꾸어버렸다. 당시에도 이미 예술적 혁신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긴 했지만, 뒤샹은 그러한 상황들을 계기로 시각적 사고의 전환을 극단까지 밀고 나갔다.
도서관 사서를 하는가 하면, 평생 체스에 끊임없는 열정을 바치기도 해서 때로는 ‘체스 때문에 예술을 포기했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그가 사망한 후 발견된 대작 「주어졌을 때: 1° 폭포, 2° 점등용 가스」는 뒤샹이 20년 동안 은밀하고도 지속적으로 작품을 만들며 예술을 향한 의문으로부터 절대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마르셀 뒤샹의 작품은 어떤 징후(徵候)의 기운을 품고 있다. 그의 작품이 지닌 이런 특성은 후대에 수많은 표현양식이 태동하도록 자극했고, 다양한 해석들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환상주의적이고, 근친상간을 다룬 정신분석적인 것에서부터 신비주의적, 구조주의적, 철학적, 종교적, 수학적 그리고 투시화법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은 해석의 가능성을 남겼다.
뒤샹은 자신에 관한 자료에서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쓰거나 말한 내용은 간혹 과장되고 오만해 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실체를 짐작할 수 없는 말로 해설가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바로 이런 점이 현재까지도 어느 누구도 뒤샹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사실 뒤샹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을 부분적으로 다룬 책자들은 종종 볼 수 있지만, 그가 걸어온 매일 매일의 삶을 완전히 다룬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전기라는 장르만큼 뒤샹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도구도 없을 텐데 말이다. 뒤샹을 ‘해부하는’ 것은 그가 지닌 신화적 성격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뒤샹이란 존재의 밀도, 엄밀함, 뛰어난 예술적 천재성을 이해하는 길이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뒤샹이 현대미술에 끼친 영향은 피카소나 말레비치 등을 능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뒤샹은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영향력이 그가 만든 작품들의 가치를 뛰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