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 퓰리처상 수상 작가 윌리엄 포크너의 대작
인간의 어두운 본성, 비도덕적인 폭력, 죄악에 대한 집요한 탐색
순수함과 인간성이 짓밟히는 과정을 악으로 점철된 서트펜가의 비극을 통해 형상화한 작품
▶ 남부가 낳은 최고의 작가. 포크너는 끊임없이 인간의 본성을 좇았다. - 랠프 엘리슨
▶ 『압살롬, 압살롬!』은 인간의 삶과 시간이라는 숲을 주제로 한 소설이다. -《뉴욕 타임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윌리엄 포크너의 대작 『압살롬, 압살롬!(Absalom, Absalom!)』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9번으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남북전쟁에서 패배한 남부가 무너지는 과정을 악으로 점철된 서트펜가의 비극을 통해 형상화한 작품이다. 포크너는 성(性)과 인종 문제, ‘남부’의 과거와 현재, 시간, 인간의 본성, 영원 등 자신이 끈질기게 추구했던 주제를 이 소설 속에 집약시켜 “도스토예프스키보다 도착적이다.”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발표 당시에는 긴 문장과 모호한 단어, 어두운 표현으로 널리 이해받지 못했으나, 지금은 미국 문학사뿐 아니라 세계 문학사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포크너가 그린 ‘요크나파토파’를 상징하는 가장 중심적인 소설
1833년 미국 남부의 소읍인 요크나파토파에 토머스 서트펜이라는 인물이 나타난다. 야만인과 다름없어 보이는 흑인 스무 명과 납치해 온 듯한 프랑스인 건축가와 함께였다. 인디언 부족에게서 넓은 땅을 구입한 그는 흑인들을 데리고 벽돌을 굽고 나무를 베어 저택을 짓기 시작한다. 오 년 후, 어디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대저택과 인근에서 가장 큰 목화 농장을 갖게 되자 그는 그에 걸맞은 신붓감을 구한다. 종교적으로 아주 경건한 콜드필드 가문의 딸 엘런이 그 상대였다. 과거를 알 수 없는 ‘악귀’ 같은 그와 눈물을 흘리며 결혼했던 엘런은 헨리와 주디스라는 남매를 낳는다. 엘런은 자신의 아이들보다 늦게 태어난 여동생 로자는 물론 친정과는 거의 왕래를 하지 않고 지내고, 로자도 서트펜을 증오하며 자라난다. 대학에 간 헨리가 사귄 찰스 본이라는 남자가 주디스와 약혼하려는 것을 서트펜이 반대하면서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서트펜의 과거가 드러나기 시작하고, 사 년 후 헨리가 찰스 본을 살해하면서 새로운 비극이 닥쳐온다.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명예도 긍지도 없고, 사 년 전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후로는 신도 없습니다. 신은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따름입니다. 신발도 의복도 없고, 그것들을 가질 필요도 없고, 곡식을 거둘 땅도 없거니와 식량도 필요 없어집니다. 그리고 신도 명예도 긍지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문제 될 것이 없어지고, 있는 것은 다만, 승리이건 패배이건 아랑곳없이 생존만을 위해서 숲 속이나 들판에서 나무뿌리와 풀을 파헤치는 옛날의 지각없는 육체뿐입니다.
■ 서트펜가의 흥망을 통해 그린 미국 남부의 이상과 가치관의 몰락
이 책의 제목 ‘압살롬, 압살롬!’은 구약성경 「사무엘 하」 18장 33절에서 모티프를 따왔다. 다윗 왕의 장남 암논이 배다른 동생 압살롬의 누이동생을 사모하여 범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도 다윗 왕은 그를 벌하지 않는다. 그러자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고 결국 다윗 왕에 대한 반란을 일으킨다는 내용이다. 다윗 왕의 “O my son Absalom, my son, my son Absalom! Would I had died instead of you, O Absalom, my son, my son!”(내 아들 압살롬,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오 압살롬, 내 아들, 내 아들!)이라는 말에서 이 책의 제목이 나온 것이다.
제목뿐 아니라 이 작품의 주된 사건이 되는 서트펜-찰스 본-헨리-주디스의 관계 역시 관련이 깊다. 서트펜의 장남 찰스 본은 이복동생 주디스와 결혼하려 하고, 서트펜은 이에 대해 반대도 찬성도 하지 않고 지켜보다가 상황을 악화시키며, 헨리는 결국 찰스 본을 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곪을 대로 곪아 있던 서트펜가의 비극이 폭발하며, 그 후 40여 년 동안 이어질 불행과 서트펜가가 몰락하는 원인이 된다.
서트펜가의 일대기는 미국 남부의 성망을 상징한다. 혼자 힘으로 농장을 일구고 저택을 지어 부를 쌓아 가던 서트펜은 결국 자신의 야망과 악행(흑인의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아내와 아들을 버린 것)이 원인이 되어 몰락의 길을 걷는다. 새로운 꿈을 안고 남부로 왔던 개척자들은 오직 자신들만의 힘으로 우뚝 서지만, 그 안에서의 도덕의 해이와 흑인 노예 착취로 인해, 결정적으로 새로운 세력으로 성장한 북부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쇠퇴해 가는 것이다. 서트펜의 죽음과 그 후 이어지는 가문의 쇄락은 미국 남부의 이상과 꿈의 몰락인 것이다. 서트펜가에서 유일하게 남은 사람이 백인보다는 흑인의 피가 더 많이 섞인 혼혈이자 지체아인 ‘짐 본드’라는 사실은, 서트펜에 대한 조롱이자 모순적인 남부 사람들에 대한 조롱이다. 노벨 문학상 심사위원회가 이 작품이 “최고의 남부 소설”이라 평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가 원인이 되어 초래한 그 환상은 이미 우리 세 사람의 것이 되어 있기 때문이지. 그리고 자네의 환상 역시 이제 자네의 뼈나 육체나 기억과 마찬가지로 자네의 일부가 되어 있어. 그래서 우리는 이제 모두 함께 고통을 겪게 되어, 우리 모두는 사랑이나 간음 같은 것은 기억할 필요도 없어질 거야.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는 거기에 온 이유조차 기억할 수가 없게 될 테지.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있을 수만 있다면, 그것은 별로 큰 고생이 아닐 거야.
푸코
4.0
패배의 땅 남부를 지비하고 살아온 작중 인물들을 통해 권력에 대한 욕정, 정신적인 빈곤, 편협한 마음, 우스꽝스러운 고집, 고뇌, 공포, 타락적인 탈선과 같은 저주받은 인간의 위대함과 자기 희생 능력을 감동적으로 그린다. 집중력, 인내 그리고 천천히 읽어야 한다. 2019. 6.24.120.
샌드
4.0
포크너의 숱한 걸작들 속에서도 <압살롬, 압살롬!>이 유난히 더 돋보입니다. 정말 어렵고 난해한 작품을 쓰지만 그 깊이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깊고 풍부한 작품이 많은데 이건 그 스타일의 정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탁월한 면이 있습니다. 큰 규모의 이야기를 크게 담을 줄 알고 미시적으로 들여다봐야 할 상황에선 섬세하게 볼 줄 아는 포크너만의 굉장한 힘으로 가득한 걸작이였습니다. 이걸 읽는 동안 한번에 딱 이해하면서 읽었냐 하면 사실 절대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고, 수많은 자료를 찾아 읽어도 정말 어렵구나 생각이 들어서 흔쾌히 추천할 만한 책은 아니지만 한번 쯤은 꼭 도전할 가치가 차고 넘치는 작품이 아닌가 정도의 확신은 드는 책이였습니다.
배창시
4.0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나뭇가지에 걸렸고 압살롬은 그렇게 죽었다. 포크너는 압살롬의 무덤을 파내서 남부와 함께 다시 묻어버렸다.
쇼쉐이
5.0
대를 이어 유전되는 비극은 결코 끝나지 못한다
힘없는감튀
Reading
1장... 무슨내용인지 하나도 이해 못했읍니다....
이준서
5.0
내 눈 앞에서 타오르고 있는 서트펜 저택, 모두를 집어 삼킬 기세로 매섭게 입을 벌리고 있는 화염 속에서 타닥타닥 거리며 유유히 허공을 유영하는 잿가루와 작은 불씨들 사이로 우두커니 서 있는 그 악귀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 하다. . “그럼, 근친 결혼이 아니라 흑인 피와의 혼혈, 자네는 그것을 참을 수가 없단 말이지.”
박지훈
4.5
아마 예전에는 어떤 일이고 한 번 일어나면 그것으로 끝나는 일은 없었다. 아마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조약돌이 물웅덩이에 가라앉은 뒤 물 위에 파문이 일어나 퍼져 나가면서 가는 탯줄 같은 흐름으로 다음 연못에 계속적으로 연결되는 것처럼, 일은 다음으로 퍼져 가는 것이다. 제2의 물웅덩이의 수온이 달라서 본 것도 느낀 것도 기억하고 있는 것도 모두 다르다고 해도, 무한한 불변의 하늘이 다른 모양으로 보 인다 해도,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제2의 물웅덩이는 제1의 물웅덩이가 길러 낸 것이다. 제 2의 물웅덩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조약돌이 떨어짐으로 해서 생겨난 울림은 원래의 지울 수 없는 리듬에 맞추어 원래의 파장대로 제2의 물웅덩이의 수면에도 퍼져 간다. 그렇다. 확실히 우리는 두 사람 다 아버지인 것이다. 아니면, 아버지와 내가 다 같이 슈리브인지도 모르겠고, 아버지와 내가 슈리브가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슈리브와 내가 아버지가 되어 있는지도 모르지. 아니면 토마스 서트펜이 우리 전부가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익룡이 나르샤
3.5
읽는 데 너무 힘들었다. 정말로. 하지만 퀜틴과 쉐리브가 서로 “듣고 있지만 경청하지는 않는”(hear but not listen) 것처럼, 아마도 포크너는 독자가 읽고 있지만 집중해서 하나하나 모든 정보를 따라가기를 의도한 것 같지는 않다. 아주 먼 옛날 이야기를 듣는 느낌. 여러모로 할머니가 가끔씩 들려주는 옛 이야기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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