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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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와 패자, 갑질과 을질, 가해자와 피해자를 넘어 젠트리피케이션이 삶이 된 사람들 “세종마을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동네 프라이드가 올라간다고 말하는 건 웃기잖아요? 전 서촌이 제 일 편해요.(토박이 L2)." "예술가들은 마을에 대한 공동체 의식이 없어요. (…) 내 표현이 조금 서툴지 몰라도 (예술가들은) 배타적이에요(토박이 J1)." "이 동네가 중요한 이유는 골목마다 역사문화의 스토리와 함께, 실제 그 자리에 사람들이 아직도 계속 살고 있다는 것이죠. (…) 그러니까 살고 있는 사람에게 중요한 시립 어린이도서관을 허물고, 사직단을 짓겠다는 거잖아요. 지금 우리가 거기에 제를 지내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사회운동가 K4)." "그런데 거기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토박이들, 건물주의 아들, 딸이거나 건물주겠죠. 동네가 떠서 지가가 세 배 이상 상승하면 그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그들이죠. 저희는 또 쫓겨날 거예요.(건축가 N)." 경리단길, 연남동과 함께 2010년대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대표하는 ‘핫 쓰리’ 중 하나인 서촌에는 다양한 사람이 산다. 그중 새로 들어온 주민(신주민)과 적극적으로 네트워크를 맺는 토박이가 있는가 하면 신주민을 배척하며 거리를 두는 토박이도 있다. 또한 뒤늦게 이곳에 들어왔지만 ‘주민이 되고자’ 하는 사회운동가도 있고, 서촌에 카페, 상점 등을 운영하며 공동체를 꾸려가는 창의적 자영업자도 있다. 이들은 모두 ‘동네보존’ 아젠다에는 동의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를 두고 서로 다르게 생각하며 생활 방식도 제각각이다. 서촌은 분명 젠트리피케이션이 벌어지는 장소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을 승자와 패자,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으로 나누기란 어렵다. 다른 처지에서 각자 다른 경험을 하지만 모두가 젠트리피케이션을 겪는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나 승자가 되고 패자가 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서촌뿐 아니라 서울 곳곳에서 진행 중이며,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그런데 단순히 승자와 패자 또는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프레임으로 젠트리피케이션에 접근하면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많다. 구로공단의 수많은 제조업 노동자를 몰아내고 들어선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지식노동자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승자일까? 종로3가와 창신동을 낙후, 노후, 쇠퇴한 지역으로 선정해 도시재생 정책을 펼치는 동시에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협약을 논하는 서울시는 가해자인가 아니면 해결사인가? 8인의 연구자가 서울 8동네에서 만난 132명의 사람들, 1,095일의 현장조사 살던, 들어온, 쫓겨난… 사람이 말하는 거대 도시 서울의 변화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승자와 패자, 건물주와 세입자, 들어온 자와 내쫓긴 자 간의 갈등으로 보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상이 되고 삶이 된 사람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본다. 이 책은 문화학자, 사회학자, 인류학자, 지리학자 등 국내 연구진 여덟 명이 젠트리피케이션을 주제로 각각 서촌, 종로3가, 홍대, 가로수길과 사이길, 한남동, 구로공단, 창신동, 해방촌에서 진행한 현장연구를 바탕으로 썼다. 길게는 3년, 짧게는 6개월 동안 진행한 현장연구는 참여관찰과 더불어 동네 토박이, 세입자, 건물주, 구청직원, 자영업자, 노동자, 문화예술인, 건축가, 마을활동가, 부동산 중개업자 등 직업과 출신이 다양하나 모두 젠트리피케이션을 겪는다는 공통점을 지닌 사람과의 심층면접(인터뷰)을 통해 이루어졌다. 지금까지 뉴욕 젠트리피케이션의 현장을 전하는 책이나 서울의 도시 변화를 서술한 책은 소개됐지만, 1970년대 시작된 한국형 도시개발부터 최근 일어난 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재생까지, 국가와 자본, 그리고 문화가 도시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한눈에 꿰뚫는 책은 이 책이 유일하다. 장소가 먼저인가, 사람이 먼저인가? 정책이 먼저인가, 자생이 먼저인가?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는 특히 자신의 장소(place)에서 부정(dis-)당하는 사람, 또는 그런 불안을 안고 사는, 지금 서울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이 책을 관통하는 개념 중 하나는 ‘전치(displacement)'이다. 전치란 기존에 살던 사람이 쫓겨나고 밀려나는 과정을 말한다. 이 책은 자본과 경제의 도구로 이용당한 장소와 ‘삶의 터전’을 빼앗긴 사람을 섬세하게 들여다본다. 구로공단은 1960~70년대 정부가 수출 중심의 경제성장을 위해 기존 주민을 강제 이주시키고, 건설한 대규모 공장지대였다. 하지만 도심 제조업이 쇠퇴하자 공장은 헐렸고 유리빌딩이 들어서면서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탈바꿈했다. 옛 이름과 흔적을 모두 없애고 전신성형을 거친 옛 구로공단, 그렇다면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도 모두 사라진 걸까? 종로3가는 낙후, 쇠퇴, 노후의 상징이 된 곳이다.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이곳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인으로 활기가 넘친다. 종로3가와 돈의동은 노인을 비롯한 소수자들의 터전이다. 하지만 이들은 불결의 상징이자 정화의 대상이 되어 점차 다른 곳으로 밀려나고 있다. 창신동은 지역 문화와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주민 활동이 봉제업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동네다. 주민 말을 빌리자면 딱히 ‘재생할 게 없는’ 동네라고 할 정도인데 서울시는 이곳을 도시재생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쯤 되면 창신동 도시재생이 주민을 위한 정책인지 의문이 든다. 해방촌은 실향민, 외국인, 젊은이 등 다양한 층위가 모여 있는 이주자의 동네다. 이곳 젊은이들은 다양한 커뮤니티와 사조직을 만들어 주민과 연계해 지역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해방촌은 동쪽으로부터 밀려오는 상업화 압력, 서쪽으로부터 밀려오는 재개발 압력 사이에 끼어 있는데다 정부는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도시재생 사업을 벌이는 중이다. 과도하고 복잡한 압력 사이에서 도시난민은 이곳에 정착할 수 있을까? 젠트리피케이션 안전지대란 있는가? 젠트리피케이션은 한 번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이 아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적 장소로 꼽히는 홍대도 그렇다. 초기에 인디문화를 이끌었던 예술가들은 이제 홍대에서는 밀려났지만, 상수동, 망원동, 성산동, 연남동 등으로 옮겨갔다. 신사동 가로수길의 터줏대감이던 플라워카페는 세로수길로 옮겨갔지만, 결국 신사동에서 아예 철수해 최근 방배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0년 즈음 홍대 앞, 삼청동, 가로수길에서 갑자기 오른 임대료를 견디지 못해 한강진길로 온 젊은 예술가들도 이미 절반은 한강진길을 떠났다. 싼 임대료에 이끌려 온 우사단길에서 청년 공동체를 만들어 활동하던 젊은이들도 3년도 채 되지 않아 50퍼센트 이상 오른 임대료 때문에 갈팡질팡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끝낼 수 있다거나, 막을 수 있다고 단정짓기 어렵다. 그러나 애착을 갖고, 편안함을 느꼈던 장소에서 때로는 폭행까지 당하며 내쫓긴다면 누구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 책의 저자들이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도 모두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안정감의 상실, 두려움과 혼란, 불안, 무력감, 허무주의 등 감정적 괴로움을 호소했다. 이 책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거대한 도시 변화 현상을 통해 장소가 먼저인지, 사람이 먼저인지, 그리고 정책적 개입이 먼저인지, 주민의 자생적 노력이 먼저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에 이어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가 기획한 《아시아,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가제)》가 출간될 예정이다. 아시아 편에서는 여덟 명의 국내외 학자가 도쿄, 베이징, 타이베이, 하노이, 자카르타 등 아시아 도시의 공간 변화를 집중 연구했다. 내용 소개 이 책은 서장과 3부로 구성되었으며, 주요 내용은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