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우리의 데이트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데이트의 탄생 비화 청춘의 특권, 동의어는 설렘. 대략 100년 동안, 불과 얼마 전까지도 데이트는 ‘젊은 남녀가 집 밖에서 만나서 사귀는 친밀한 사적 행위’라는 본래의 형태를 그런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데이트 폭력이니 데이트 살인이니 하는 끔찍한 말들과 엮이기 전까지는. 이 책은 우리 시대의 연애가 어쩌다 심각한 사회문제로 ‘타락’했는지를 묻는 책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데이트의 원래 모습을 역사적·사회적으로 추적한 본격 데이트 연구서이다. 데이트가 어떻게 사적인 행위에서 공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는지, 사람들이 데이트를 통해 얻고자 한 바는 무엇인지, 어쩌다 우리는 데이트를 통하지 않으면 연애를 할 수 없게 되었는지를 되돌아보는 책이다. 말 그대로 ‘데이트의 탄생’에 얽힌 공공연한 비화秘話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말한다. 데이트는 엄연한 사회적 관습이며, 관습은 다중의 욕망, 심지어 사랑에 대한 욕망까지도 구조하고 통제한다고. 데이트와 자본주의 오늘날 데이트는 관습이 되었다. 지구촌 대부분의 나라 사람들이 널리 인정하는 연애 규칙 혹은 질서이다. 이 규칙은 대체 언제 어디서 생겨났을까? 한 세기쯤 전, 자본주의가 본격 태동한 미국의 하층민 거주지이다. 이제 무슨 이야기를 할지 짐작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미국의 전통적인 연애제도에서 전 세계의 보편적인 연애제도가 된 데이트의 기원과 발전 과정을 추적한다. 어떤 사회적·문화적·경제적 맥락에서 데이트란 제도가 생겨났고, 이로써 기존의 연애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이러한 데이트의 형성과 변화에 연루된 사회적 이해와 통념을 분석하여 사적인 연애가 어떻게 공적인 관습이 되었는지를 살핀다. 이 짧은 변화의 역사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물론 20세기 미국의 산업자본주의, 돈이다. 데이트와 돈 데이트의 탄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밖으로 ‘나가는’ 행위다. 20세기 초 자본주의가 본격 개화하는 시기에 도시에는 수많은 빈민가가 만들어졌고, 가난한 노동자 젊은이들에게는 사랑을 속삭일 적당한 공간이 없었다. 연애를 하려면 밖으로 나가야 했고, 밖으로 나가자니 돈이 들었다. 그것도 꽤 큰돈이. 여기서 오늘날까지도 남녀를 대결 구도로 몰아가는 ‘데이트 비용’ 문제가 생겨났다. 자본주의의 성격상 일단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내기로 합의되었다. 여자는 그 대가로 남자에게 성적 호의를 제공하게 되었다. 남자는 남녀관계에서 우월한 권력을, 여자는 실리를 취하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물론 이 과정에서 ‘더치페이(더치 데이트)’도 있었지만, 남자들은 돈으로 권력을 살 기회를 포기하지 않았다. 2013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남성의 84퍼센트가 주로 데이트 비용을 내고, 76퍼센트의 남성이 여성이 돈을 내겠다고 했을 때 부담을 느낀다고 한다. 이는 우리의 예상과 전혀 다른 ‘현실’이다. 데이트와 에티켓 데이트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소위 ‘데이트 에티켓’이다. - 여자가 먼저 데이트를 신청해서는 안 된다. - 몇 번 만나 친해지기 전까지는 남자가 주로 비용을 대야 한다. - 데이트를 마치면 남자가 여자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어야 한다. …… 이 에티켓들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여자를 여자답게, 남자를 남자답게” 만들어 주는 규칙이다. 지금 한국에서 통용되는 이 에티켓의 출처는, 놀랍게도 1959년 미국에서 출간된 에티켓 책자이다. 즉, 데이트는 ‘남자답게, 여자답게’라는 불평등한 성역할 코드를 연애 관습에 적용한 제도라는 것이다. 20세기 초 ‘젠더’라는 사회적 성 개념이 정착되면서 사람들은 안정적인 성 구분, 성역할에 대한 불안과 갈망을 동시에 느꼈다. 데이트 에티켓, 더 나아가 남성성과 여성성은 이런 역사적 변화와 불안에 대한 지적·사회적 반응이었다. 사랑의 현실, 우리의 데이트 이 책은 돈 말고도 데이트라는 사적인 연애 행위를 구조지은 다양한 사회적 맥락 혹은 ‘현실’을 이야기한다. 데이트 공간, 데이트를 설명하는 언어(시장경제), 데이트의 목적, 데이트와 연애의 관계, 데이트를 뒷받침한 새로운 대중문화, 출판시장의 변화, 교육 민주화와 국민문화의 탄생, 연애와 결혼을 과학으로 승화시킨 전문가 집단(일명 사회과학자)의 출현, 중산층 문화와 문화적 중산층 개념, 196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성혁명’ 등등. 그러나 이 모든 문제는 결국 돈, 권력문제로 귀결된다. 저자는 치열한 권력투쟁 끝에 오늘날의 데이트(연애 관습)는 많이 변화했다고 말하지만, 한국의 상황도 그러할까? 1960년대 후반의 성혁명을 비롯하여 미국에서는 세대, 계급, 인종 사이에 수많은 투쟁과 혁명이 일어났다. 모두 자유와 평등, 자율을 얻으려는 싸움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애는 아직도 (자본주의)경제 메타포로 이야기될 때 가장 잘 이해되는 단계는 아닌지, 이 책은 묻고 있다. “사랑은 교감이지만, 사랑의 현실은 교환”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