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

홍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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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제 환경단체인 '시셰퍼드'는 일본의 포경선을 추격할 수 있는 규모와 속도를 가진 포경감시선을 건조했다고 밝혔다. 서양인들에게 고래를 잡아먹는 행위는 생물 다양성에 대한 위협인 동시에, 지능을 가진 동물을 해치는 야만적인 행위다. 반대로 오랫동안 고래 고기를 소비해온 일본에게 포경 반대 운동은 서양에서 만들어진 '환경 제국주의적 동맹'의 폭력이다. 고래는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인가, 다른 물고기들을 먹어치우는 포식자인가? 양측의 주장은 모두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고 있다. '과학적 사실'은 존재하는 것인가? 토머스 쿤에 따르면 이런 논쟁은 '패러다임'의 차이에 따른 것이다. 패러다임은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틀을 의미한다. 저자 홍성욱 교수는 쿤의 패러다임 개념을 확장.발전시킨 개념으로 '네트워크'를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네트워크는 현대 과학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개념이며, 과학적 이슈의 흐름을 설명하는 키(key)이다. 네트워크는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뻗어나가는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성장하던 네트워크가 소멸되거나 다른 네트워크로 대체되기도 하고, 여러 네트워크가 하나로 응축되기도 한다.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네트워크의 관점으로 볼 때, 과학이 사회와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임을 알 수 있다. 또, 과학이 자연 본연의 속성이라기보다 '인간'의 활동임을 직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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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을 테크노사이언스의 네트워크로 생각하기 제1장 인간과 비인간 테크노사이언스에게 실험실을 달라 고속도로, 과속방지턱, 안전벨트, 경로석 까칠한 비인간 행위자들 인간과 기계의 차이 로봇 과학자는 불가능한가 사냥꾼과 학자 제2장 네트워크로 보는 테크노사이언스 미 항공모함이 쿠웨이트까지 가려면 실험실 속 제왕나비 네트워크로 읽는 세상 패러다임 제3장 과학철학적인 탐색 세계는 하나인가 사실 법칙은 자연에 존재하는가 과학적 이론과 민주주의 제4장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융합 성공적인 팀과 리더십 거대과학의 리더십 잡종적 존재와 돌봄의 세상 불확실성 책임 과학과 과학기술학 미주 및 참고문헌 찾아보기

Description

“과학의 본질에 대한 통념을 철저히 깨부숴준다” -장하석 과학기술은 사회적 네트워크로 움직인다 낙동강 녹조, 인공지능, 가습기 살균제, 원전, 유전자 가위, 동물실험… 과학과 사회, 같이 얘기 좀 합시다! 과학은 ‘사회적 네트워크’로 움직인다!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을 대체할 홍성욱 교수의 ‘네트워크’ 최근 국제 환경단체인 ‘시셰퍼드’는 일본의 포경선을 추격할 수 있는 규모와 속도를 가진 포경감시선을 건조했다고 밝혔다. ‘시셰퍼드’가 그간 일본의 포경선을 저지하기 위해 과격한 폭력 대응을 서슴지 않아왔음에도 여러 국가로부터 직접적인 지원을 받는 것은 서양인들이 공유하는 고래에 대한 ‘사실들’ 때문이다. 서양에서 고래는 매우 지능이 높은 동물이다. 그간의 무분별한 포획으로 인해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이기도 하다. 서양인들에게 고래를 잡아먹는 행위는 생물 다양성에 대한 위협인 동시에, 지능을 가진 동물을 해치는 야만적인 행위인 것이다. ‘과학적 사실들’에 기반을 둔 이런 믿음은 굉장히 확고하다. 반대로 오랫동안 고래 고기를 소비해온 일본에게 포경 반대 운동은 서양에서 만들어진 ‘환경 제국주의적 동맹’의 폭력이다. 일본 측의 과학적 데이터에 따르면 고래는 금붕어와 다를 것이 없는 물고기이며, 아직 멸종 위기에 처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다른 물고기들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 포식자이다. 일본의 포경은 ‘과학적 연구’라는 타이틀 아래 일본 과학자들과의 동맹을 통해 이루어진다. 고래는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인가, 다른 물고기들을 먹어치우는 포식자인가? 양측의 주장은 모두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고 있다. ‘과학적 사실’은 존재하는 것인가? 토머스 쿤에 따르면 이런 논쟁은 ‘패러다임’의 차이에 따른 것이다. 패러다임은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제창한 개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틀을 의미한다. 패러다임이 다른 사람들은 같은 ‘사실’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게 된다.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에서 홍성욱 교수는 쿤의 패러다임 개념을 확장·발전시킨 개념으로 ‘네트워크’를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네트워크는 현대 과학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개념이며, 과학적 이슈의 흐름을 설명하는 키(key)이다. 네트워크는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뻗어나가는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성장하던 네트워크가 소멸되거나 다른 네트워크로 대체되기도 하고, 여러 네트워크가 하나로 응축되기도 한다.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네트워크의 관점으로 볼 때, 과학이 사회와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임을 알 수 있다. 또, 과학이 자연 본연의 속성이라기보다 ‘인간’의 활동임을 직시할 수 있다. 서울대 홍성욱 교수, 다년간의 단독 기획, 그리고 집필! 21개의 미공개 원고로 쓰인 ‘STS 에세이’ 저자 홍성욱 교수는 정통파 과학사학자인 동시에, 과학기술학(STS)을 한국에 도입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이다. 일반 대중들에게 단순히 과학 지식을 전달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대중들뿐만 아니라 기성 과학자들도 과학을 다층적이고 복잡한 체계로서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과학의 대중화’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2003년 토론토대학교 강단에서 내려와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대학원 내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으로 자리를 옮긴 후, 2006년에 협동과정 내에 과학기술학 전공프로그램을 만들고 과학기술과 사회의 여러 상호작용을 고민하고 연구해왔다.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는 이렇게 지난 10년간 홍성욱 교수가 연구하고, 강의하고, 학생들의 논문을 지도하면서 새롭게 이해하고 고민했던 내용들이 담겨 있다. 한국의 ‘과학기술학’ 담론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저자가 단독으로 기획·집필하였으며, 전작들과는 달리 기고되거나 공개된 적 없는 미출간 원고로만 한 권이 채워져 있다. STS, 과학에게 ‘인간의 얼굴’을 부여하다 “과학의 본질에 대한 통념을 철저히 깨부숴준다” STS는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즉 ‘과학기술학’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는 과학의 발전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낳는다고 여겨지지만, 과학기술학의 관점에서 볼 때 과학기술이야말로 과학의 핵심이다. 일례로 산업혁명의 과정에서 발명된 증기기관이라는 기술이 근대 열역학의 발전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더 나아가 과학기술학의 시각은 과학의 발전 과정을 단순한 지식의 진보가 아니라, 사회적 현상으로서 ‘살아 움직여온’ 역사로 보도록 이끈다. 이에 따라, STS를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즉 ‘과학기술과 사회’로 그 외연을 넓혀보고자 하는 것이 책의 목적이다. 과학과 기술의 민낯을 보려면 그 사회적 속성을 함께 보아야 한다. 케임브리지대학교 장하석 교수는 추천사에서 “인간들이 사회적·물질적 생활 속에서 과학적 지식을 창조해가는 과정을 생생히 그리면서,” “과학의 본질에 대한 통념을 철저히 깨부숴준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다윈의 진화론은 여러 과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만들어졌으며 당시의 월리스의 진화론, 라마르크의 진화론 등과 경쟁해야 했다. 그의 ‘생존경쟁’ 이론은 러시아, 독일, 프랑스 생물학자들로부터 수없이 많은 비판을 받았다. 17세기부터 유럽에서 발전한 자연사 분야를 바탕으로 진화론의 중요성과 설득력이 증명되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함께 등장한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 역시 다윈을 비롯한 많은 학자들에 의해 논쟁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서양과 같은 과학 전통이 부재했던 한국 등의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는 다윈의 진화론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으며, 사회진화론도 별다른 논쟁 없이 다윈의 진화론과 같은 맥락으로 수용해버렸다. 서양의 과학계에서는 다윈의 진화론을 비롯해 뉴턴의 광학 및 중력법칙,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등이 받아들여지기까지 ‘지지고 볶는’ 과정을 겪어야 했다. 이런 과정은 ‘사회문화적’ 과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과학의 이런 지그재그식 발전 과정이 빠진 채, 완성된 과학이 수입되어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과학이 눈물겨울 정도로 절대적이라고 믿으며, 이미 완성된 진리이자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시각은 과학을 하나의 사회적 활동이 아닌 경제 성장의 토대로만 여기게 하며, 과학자 및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참여를 방해하고 과학-사회의 벽을 견고히 할 뿐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과학이 완성된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미국이 내놓는 과학의 결과를 그냥 가지고 오면 된다.” 자연의 진리는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은 인간과 비인간(nonhuman)의 살아 있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활동이고 이 네트워크는 국소적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적합한 과학을 만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나온 논문은 가져올 수 있지만, 실험실을 가져오는 것은 힘들고, 과학자의 머리에 든 노하우와 같은 암묵지(暗默知)를 가지고 오는 것은 더욱 힘들며, 미국 과학의 네트워크를 가지고 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 vs. 비인간’ 과학은 기술을 통제할 수 있는가? 홍성욱 교수가 말하는 네트워크는 인간과 인간 사이뿐만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연결망까지도 포함한다. ‘비인간’이란 인간이 아닌 존재 전부를 총칭하는 말로, 기술, 자연물, 동식물, 논문 등 여러 유형을 포함한다. 이중에서도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대표적인 비인간이 바로 ‘기술’이며, 따라서 기술이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파악하는 것이 과학과 과학기술을 이해하는 데에 핵심적이다. 비인간들은 인간이 만들고 연구하는 대상이지만, 역으로 다시 인간에게 기술적·도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20세기 초 뉴욕의 건축가 로버트 모지스는 존스 비치 공원을 설계하면서 흑인들이 이곳에 들어오지 못하게 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공원으로 들어오는 도로 위의 구름다리를 낮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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