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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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 법학자가 다시 들려주는 명청시대 7대 잔혹 사건의 재구성 사건의 실제 진상과 당대 형벌 집행의 참혹상을 낱낱이 파헤치다 형사사건을 통해 명초, 청말의 정치·사회·문화적인 맨얼굴을 바라보다 영락제 주체는 왜 충신 방효유와 그의 십족(十族)까지 주살했는가? 여항의 작은 마을에서 생긴 불륜 사건은 어떻게 대륙 전체를 뒤흔들었나? 명나라는 어떻게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청백리를 배출한 왕조가 되었나? ‘누구든지 범죄인으로 선고되기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무죄 추정의 원칙’은 근대 인권사상의 발전과 함께 현대 형사법에서 매우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따라서 지금은 수사기관에 의해 현행범으로 체포·구속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신체의 자유를 보장받는다. 또한 수사기관도 피의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해 자백을 강요할 수 없다. 『십족을 멸하라: 명청시대 형벌의 잔혹사』는 이런 원칙이 없던 시절에 일어난 가장 참혹한 사건과 그 재판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건을 심리하는 관리들은 찰지(?指, 죄수의 손가락을 끼워 조이는 형틀), 협곤(夾棍, 죄수의 다리를 끼워 조이는 형틀), 뇌고(腦?, 죄수의 머리에 씌워 조이는 형틀) 등 갖은 형구를 이용해 죄인의 자백을 강요했다. 이때는 지금처럼 ‘피의자’라는 개념이 없었다. 관청에 끌려오는 피의자는 ‘유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그 순간 ‘죄인’이 되어 죄가 있든 없든 범죄 사실을 자백해야만 했다. 죄가 확정되면 그 경중에 따라 형벌을 받는데, 그 또한 잔혹하기가 그지없었다. 박피(剝皮), 추장(抽腸), 경면(?面), 할비(割鼻), 능지(凌遲), 육시(戮屍), 가항(枷項)…… 그 뜻을 알면 몸서리가 쳐지는 형벌들이 갖은 고문 끝에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죄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현재 학계는 물론 대중적으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저자 펑위쥔은 이 책에서 이른바 ‘명청 7대 잔혹 사건’들을 법제사적 연구에 기초해 조명하면서, 위와 같은 당대의 형벌과 그 집행과정을 상세히 적어나가고 있다. 저자는 또한 이 사건들을 『대명률』 『율령직해』 『대고』 『명사』 『대청률례』 『소시간당록』 『역신록』 『이십이사차기』 등 수많은 사료에 근거해 복원하고 있는데, 이들 사건이 소설과 영화, TV 드라마 등 수많은 창작물로 가공돼 지금까지도 사건 자체가 잘못 알려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당대의 형사사건에 현미경을 갖다 대고 복원하는 과정이 소설처럼 흥미롭게 읽히는데, 아마도 소개되는 사건 하나하나가 내용이 깊고 복잡한 데다 당시의 중국 대륙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스케일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 전제정치의 강화와 황제의 불안이 사건을 만들다 이 책에 실린 사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명초 4대 사건들로서 명 태조 주원장과 그의 아들인 성조 주체가 일으킨 것들이다. ‘백지 인장 사건’, ‘곽환의 횡령 사건’, ‘호유용과 남옥의 모반 사건’, ‘방효유와 그의 십족 주살 사건’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 다른 한 부류는 ‘청말 4대 기안(奇案)’이라 불리는 사건들로서 이 책에는 그중 사건의 경위가 복잡하고 곡절이 많은 3개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장문상의 마씨 살해 사건’, ‘명배우 양월루 연애 사건’, ‘양내무와 소백채 사건’ 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모두 서태후가 수렴청정으로 권력을 쥐고 흔든 때에 일어났다. 명초 4대 사건들은 모두 명나라 개국 초기에 전제정치를 강화할 목적으로 군주가 직접 나서서 일으킨 옥사들이다. 특히 주원장은 정권의 안정을 꾀한다는 명목 하에 수많은 관리들을 사건에 연루시켜 주살했다. 수백 명의 관리들을 회계 부정 사건으로 몰아 죽이거나 귀양을 보내는가 하면(‘백지 인장 사건’), 거의 모든 개국 공신들을 증거가 불충분함에도 모반죄로 몰아 제거했다(‘호유용과 남옥의 모반 사건’). 물론 ‘곽환의 횡령 사건’은 수만 명이 연루된 역사상 최대의 부정부패 사건이긴 했지만, 가벼운 형벌로 다스려도 되는 자들까지도 중형을 내려 가혹하게 처벌했다. 주원장의 아들이자 명나라 3대 황제인 성조 주체는 치열한 내전 끝에 친조카(2대 황제인 건문제)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인물이다. 그는 건문제의 스승이자 당대 최고의 학자로 존경받았던 방효유에게 즉위 조서를 꾸미게 하는데, 방효유가 끝까지 거부하자 그의 일가는 물론 친구와 제자까지 주살하는 전대미문의 ‘십족 주살’을 단행한다. 방효유 사건은 여기서 더 나아가 방효유의 서적까지 금지시키는 문자옥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명나라 초기의 4대 사건들은 권력을 찬탈해 최고 통치자의 자리에 올라선 자들의 불안과 공포, 그리고 의심을 엿볼 수 있게 한다. - 전통사회에서 근대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참혹한 사건들 한편, ‘청말 4대 기안’에 속하는 사건들은 태평천국의 난(‘장문상의 마씨 살해 사건’)과 양무운동(‘명배우 양월루 연애 사건’, ‘양내무와 소백채 사건’)이 일어난 시기, 즉 청나라 말기의 정치 사회적 격변기에 발생했다. 또한 이들 사건들은 소설과 영화, TV 드라마 등 수많은 창작물로 가공돼 지금까지도 사건 자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다. ‘장문상의 마씨 살해 사건’은 양강 총독이라는 지방 통수권자인 마신이가 장문상이라는 자객에 의해 암살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장철 감독의 「자마(刺馬)」(1973)와 진가신 감독의 「명장(投名狀)」(2007)의 배경으로서 무협영화 마니아들에게는 익숙한 이야기이다. 특히 이 사건은 당대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숱한 의혹을 뿌리기도 했는데, 사건의 발생 동기를 놓고 지금까지도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한 증국번 등 한족 의용군 세력(상군)과 이들의 정치적 성장을 두려워하는 청 황실 간의 문제, 당시 서북 지역에서 일어난 회족(이슬람) 농민 반란(암살된 마신이는 회족 출신 관료이다), 여기에 천진교안(1870년 천진에서 교회의 영아 유괴에 대한 소문이 도화선이 되어 일어난, 서양 선교사와 현지인들의 충돌 사건)이라는 외교 문제의 해결과정에서 발생한 일련의 우연까지 겹쳐, 이 사건은 그야말로 풍문과 억측의 소용돌이 속에서 진행되었다. 저자는 이 복잡한 사건을 당시의 사건 기록과 다양한 사서들을 토대로 그 실체를 하나씩 상세히 밝히고 있다. ‘명배우 양월루 연애 사건’은 전통사회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시기의 연애의 문제를 보여준다. 주인공은 당대 최고의 경극 배우인 양월루와 상해 지역 거상의 딸인 위아보이다. 청나라는 천민과 평민의 결혼을 법률로 금지하고 있었지만, 사건이 일어난 때는 양무운동이 한창 진행되는 등 근대화의 움직임이 거셌던 시기였다. 그러나 봉건 예법을 여전히 숭상하는 관리들에 의해 이 사건은 유괴사건으로 조작되었고 신사상과 구사상의 대립으로 매우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왔다. ‘양내무와 소백채 사건’은 청말 4대 기이한 사건 중에서도 가장 기이한 사건으로 이름이 높아 중국에서는 다양한 창작물의 소재가 되었다. 특히 「양내무와 소백채(?乃武?小白菜)」라는 제목으로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두 번에 걸쳐 TV 드라마화하여 중국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반면, 이 이야기를 한 번쯤이라도 들어봤을 국내 독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90년대에 국내에 개봉된 홍콩영화, 그중에서도 특히 홍콩의 성인영화를 꼼꼼히 챙겨본 사람이라면 두 인물의 이름을 듣고 무릎을 탁 칠 수도 있을 것이다. 「옥보단」의 흥행 이후, 한동안 홍콩의 B급 성인영화들이 우리 극장가에 우후죽순 소개되었는데, 그중 「만다린(원제 ‘만청십대혹형滿淸十大酷刑’)」이란 영화가 ‘양내무와 소백채 사건’을 다뤘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괴상한 방식으로. 소백채와 양내무는 소백채의 남편 갈품련이 급사하자 순식간에 간통과 살인 공모의 혐의를 받는데, 사건 발생 초기에 현장 검증만 제대로 이뤄졌다면 둘은 금방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검시관의 실수와 판결을 맡은 지현의 선입견이 사건을 미궁에 빠뜨렸고, 고문과 허위 증언 그리고 관리들이 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