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안드레아스 말름(Andreas Malm, 1977~)은 누구인가?
『이 폭풍의 전개』의 저자 안드레아스 말름은 스웨덴 묄른달 출신의 맑스주의 생태학자이자 기후행동가로, 현재 스웨덴 룬드 대학교에서 인간생태학을 가르치고 있다. 말름은 오늘날 찾아보기 드문 공공 지식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견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화석 자본주의와 기후위기의 관계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말름은 여러 권의 책을 쓴 세계적인 저술가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화석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기후운동을 실천하는 활동에도 깊이 관여했다. 예를 들어서 그는 다양한 기후운동 모임에서 강연을 하거나 독일의 기후운동 <엔데 겔랜데>(Ende Gelande)의 탄광 점거 행동 등에 직접 참여했다.
『이 폭풍의 전개』의 영어판은 2018년에 출판되었다. 이 책에서 말름은 기후 파국을 초래할 화석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는 기나긴 전쟁에서 좌파가 견지해야 할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이 책을 출간하기 직전인 2016년에 말름은 도이처 기념상을 수상한 『화석 자본 : 증기력의 발흥과 지구온난화의 기원』(두번째 테제, 2013)을 출판했다. 2020년에는 팬데믹, 기후변화, 그리고 자본주의의 연계성을 규명한 『코로나, 기후, 오래된 비상사태 : 21세기 생태사회주의론』(마농지, 2021)을 출간했다. 2021년에는 생태 붕괴에 적극 대처하는 기후운동의 전략을 다룬 『송유관을 폭파하는 방법 : 불타는 세계에서 투쟁 학습하기』라는 책과, 기후위기의 시대에 극우파가 부상하는 정치적 현실을 경고한 『흰 피부, 검은 연료 : 화석 파시즘의 위험에 관하여』라는 책을 출간했다. 2024년에는 또 다른 행동가 학자인 윔 카턴과 함께 임계온도 한계의 초월을 추동하는 세력들을 통렬하게 비판한 『초과 : 어쩌다 세계는 기후 붕괴에 굴복하였는가』라는 책을 출간하였으며, 또한 기후 재난에 대한 지구공학적 해결책의 문제점과 관련하여 카턴과 함께 저술한 『기나긴 열기 : 너무 늦은 시점에서의 기후정치』라는 책이 2025년 10월에 출간될 예정이다.
폭풍과 뜨거워지는 세계
이 책 제목의 ‘폭풍’이라는 낱말은 발터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 수록된 ‘역사철학 테제 9번’에서 언급된 ‘폭풍’에서 가져온 것으로 짐작된다. 벤야민의 테제 9번 속 ‘폭풍’은 ‘중단 없는 파국’으로서의 진보를 상징한다. 한편, 말름의 ‘폭풍’은 인간 문명의 종말로 귀결될 ‘기후변화’를 상징하는 동시에 지구가 ‘중단도 없이’ 뜨거워지는 ‘온난화 조건’ 아래에서 점점 맹렬해지는 실제적인 ‘폭풍’을 나타내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뜨거워지는 세계 속의 자연과 사회”라는 이 책의 부제는 동시대의 다양한 철학적 사유를 기후위기와 관련지어 이론적으로 분석하는 말름의 근본적인 입장을 드러낸다. 이 책에서 말름이 가차 없이 비판하는 동시대의 철학적 사유들은 ‘자연’과 ‘사회’를 융합하는 라투르식의 용해주의로 포섭될 수 있는 구성주의, 혼종주의, 그리고 신유물론이다. 말름에 따르면, 이런 용해주의적 사유들은 모두 기후위기에 대처할 어떤 윤리적·정치적 대응책도 제시할 수 없다. 그런 입장들은 지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처하게 되면서 기후변화라는 폭풍 속에서 표류하고 있을 뿐이다. 말름은, 기후변화가 초래할 파국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사유는 ‘자연(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변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에 발표된 기후과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류가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평소의 생활방식’을 고수하면서 살아간다면 지구는 인간뿐만 아니라 수많은 생명체가 ‘거주 불가능한’ 곳이 되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이런 현실에 대응하는 말름의 태도는, “기후변화가 초래할 파국에 맞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라는 종말론적인 체념주의도 아니고, “기후변화는 현존하지 않는다”라는 기후변화 부인론도 아니다. 따라서 현행 기후변화의 실재성과 기후과학의 결과를 수용하는 ‘기후 실재론자’로서 말름은, 기후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화석연료 기반 시설을 겨냥한 대중적·전투적·급진적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역설한다. 말름은 화석 자본주의를 기후 파국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확증하면서 그 파국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체제를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연의 반격
19세기 초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화석 경제와 화석 자본주의가 정립된 이후에 우리는 줄곧 화석연료 산업의 급속한 발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급격한 증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급격한 상승, 지구 온도의 가속적 상승, 빙하의 급격한 붕괴와 해수면의 가속적 상승을 직면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안정적인 기후를 나타낸 산업화 이전 시기, 이른바 충적세(홀로세) 시기와 달리, 현재 우리는 끊임없이 뜨거워지고 있는 지구에서 삶을 영위하게 되는 독특한 역사적 국면, 기후변화를 수반하는 ‘온난화 조건’으로 특징지어지는 이른바 ‘인류세’ 국면에 처해 있다.
예컨대, 2024년은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대략 1.6도 상승함으로써 ‘기후 재앙을 막는 마지노선’이라 불리는 ‘1.5도 선’이 처음으로 뚫린 해로 밝혀졌다(이런 점에서 ‘온난화 조건’은 ‘가열화 조건’으로 심화되었다). 그리하여 우리가 기후과학의 신뢰성을 의문시하고 기후변화의 실재를 부인하면서 ‘평소의 생활방식’을 고수한다면, ‘온난화 조건’에 의해 초래된 기후변화라는 최후의 폭풍이 인류 문명의 종말뿐만 아니라 생물 대멸종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인간에 의한 자연 지배, 자연 정복이 완결됨으로써 자연은 소멸되었다는 ‘자연의 종말’ 테제가 만연하는 바로 이 시대에 자연은 맹렬히 귀환하여 인간의 문명 세계에 침입하면서 파괴적으로 반격하고 있다.
지구의 기후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던 시기와 달리 확연한 기후변화가 나타나게 되는 산업화 이후 시기를 본질적으로 특징짓는 것은 탄소 기반 화석연료를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화석 자본의 등장이다. 산업화 이전 시기 탄소의 자연적 물질대사 과정은 인간의 사회적 물질대사 과정과 맞물려 균형 상태를 이룸으로써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대략 280ppm으로 유지되었다. 반면에, 산업화 이후 시기에는 화석연료를 연소시키는 화석 자본의 사회적 물질대사 과정을 거쳐 대기에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급증함에 따라 이에 연동된 자연적 물질대사 과정의 상태가 새로운 평형을 향해 이행하게 되었고, 그 결과 지구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두드러진 기후변화를 나타내는 ‘온난화 조건’이 확립되었다. 예컨대, 2024년 말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대략 420ppm에 이르렀고,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대략 1.6도 상승하였다. 다시 말해서,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현행 기후위기의 촉발 원인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 즉 이윤 획득을 위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화석 자본주의 체계이다. 화석 자본주의 체계가 사회적 물질대사의 조절판을 돌리면, 자연적 물질대사는 그 변화에 조응하여 기후변화를 심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자연과 사회의 경계가 없다고 말하는 이론들
과학적 사실에 기반을 둔 이런 논변은 자연(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분리에 근거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자연과 사회가 어떤 의미에서도 별개의 영역으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이론이 유행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포스트모니즘적 구성주의, 라투르의 혼종주의, 포스트휴머니즘적 신유물론이 다수의 사람에게 두드러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들 이론에 따르면, 자연은 사회적으로 ‘구성되’기에 사회와 구분될 수 없거나, 또는 자연과 사회는 경계가 완전히 사라진 혼종을 이루기에 구분될 수 없거나, 또는 자연은 그저 어떤 독립적인 현존도 갖추고 있지 않다.
이 책에서 말름은, 구성주의, 혼종주의, 신유물론 같은 부류의 이론들이 자연과 사회를 실체적으로 또 속성적으로 융합함으로써 기후변화의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의 실재를 부인하는 입장을 뒷받침할 수도 있다는 논변을 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