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오늘날 20대는 단일한 세대가 아니라, 10퍼센트의 세습 중산층과 나머지 90퍼센트로 이루어진 초격차 세대다” 2019년, 어김없이 뜨거웠다. ‘알쏭달쏭한 90년대생(20대)’에 관한 사회 차원의 관심과 탐구가 꾸준히 이어졌다. 시간이 흘러 ‘90년대생 마케팅’에 대한 반발과 세대론 논쟁 등으로 화두가 옮겨가기도 했으나, ‘90년대생’을 주어로 한 흐름은 이미 사회 곳곳에서 어엿한 주류로 자리 잡았다. 이를 반증하듯, 취임 35일 만에 사퇴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90년대생’은 또다시 소환되었다. 해당 사안에서 검찰 개혁이라는 키워드 못지않게 집중 포격을 받은 것은 다름 아닌 ‘불평등’ 이슈였고, 그 가운데 특히 주목을 받은 세대가 그들이었다. 이는 결국 우리 사회에서 ‘90년대생의 불평등 문제’를 제대로 분석하고, 진단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음을 극명하게 나타낸다. 여기, 이 절실한 부름에 응답하며 날카롭고 신선한 시각으로 한층 심도 있게 20대의 불평등 문제를 꿰뚫는 책이 출간되었다. 기존의 분석들이 이전 세대와 다른 그들 특유의 가치관과 생활양식을 조명했다면, 이 책은 취업시장을 중심으로 불평등의 본질에 성큼 다가선다. 또한 세대로 묶어서 설명하던 그간의 크고 일괄적인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세습 중산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10’과 ‘90’으로 나뉜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촘촘히 뜯어본다. 이러한 시도는 지금껏 이어져온 세대 담론과는 다른 관점과 접근 방식을 독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우리가 마주한 문제와 대안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모색할 기회를 선사한다. 한국 경제의 구조와 그 변화 과정에 대해 활발히 연구해온 저자가 치밀한 수집과 탄탄한 분석을 무기로 그려낸 『세습 중산층 사회: 90년대생이 경험하는 불평등은 어떻게 다른가』다. ‘80년대 학번-60년대생’ 부모와 90년대생 자녀, 세습 중산층을 파헤치다! 세습 중산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국 전 장관을 둘러싼 논란을 다시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녀의 입시 및 장학금 의혹과 관련해, 가장 크게 분노를 표출한 집단은 이른바 명문대에 재학 중인 중산층 가정의 20대였다. 서울대, 고려대 등에서 사퇴를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이어졌고, 그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울분을 토했다. 반면, 명문대 바깥에 자리한 20대 대다수는 시종일관 침묵하며 ‘남의 일’이라는 무기력한 반응을 보였다. 이렇듯 ‘조국 대전’에서 중산층의 분노와 다수의 냉소로 20대가 양분된 현상은, 그들이 경험하는 불평등의 양적·질적 특성에 따른 것이라고 책은 말한다. 요컨대 오늘날 20대는 근본적으로 불평등한 생활세계에 놓였으며, 이전 세대와는 다른 복합적인 불평등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불평등 구조의 위계 서열에서 자리하는 위치는, 그들의 부모가 어떤 계층 또는 계급에 속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부의 위계에 따라 구조화되어 있던 사회가 거의 전적으로 노동과 인적자본의 위계에 따라 구조화된 사회로 바뀌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는 구미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지적으로, 90년대생의 불평등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부모 세대인 ‘60년대생’부터 살펴야 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60년대생은 특별한 세대다. 한국 사회에서 학력, 소득, 직업, 자산, 사회적 네트워크 등 다중격차를 처음으로 만들어낸 세대이기 때문이다. 586세대는 대학(특히 명문대) 정원 확대, 경제 호황기 노동시장 진입, 수출 대기업의 급성장과 그로 인한 노동소득 증가·자산가격 급등에 힘입어 탄탄하고도 찬란한 세습 중산층의 1세대를 이루었다. 책은 이들 ‘80년대 학번-60년대생’과 ‘학번 없는 60년대생’의 차이가 이전과 다르다고 서술한다. 직전의 ‘학번 없는 50년대생’이 노동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를 차지할 여력이 있었다면 ‘학번 없는 60년대생’에게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는데 (일부 대기업 생산직 노동자들을 제외하면) ‘번듯한 일자리’의 대부분을 대졸자가 고스란히 차지한 까닭이다. ‘80년대 학번-60년대생’은 이렇듯 학력과 노동시장의 지위를 기반으로 IMF와 2000년대를 거치며 나머지 ‘학번 없는 60년대생’과 다중적인 격차를 점점 더 벌려 나갔다. 그리고 이들이 교육 투자뿐만 아니라 문화적 역량과 사회적 네트워크 등 무형 자산을 이용해 90년대생 자녀 세대에게 동일한 지위를 물려주면서 세습 중산층의 2세대가 만들어진다. 책은 세습 중산층을 토대로, 한국 사회에서 20대 문제의 핵심은 계층 또는 계급의 재생산이라는 사실을 짚으며 그들 내부의 격차를 조심스러우면서도 체계적으로 파헤친다. 최근 20대 문제를 살피면 이면에 ‘젠더 갈등’과 ‘20대 남성 보수화’를 중심으로 한 이슈가 많다. 책이 제시하는 숫자와 저자의 논거를 따라가다 보면,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노동시장 진입 기회, 불평등 강화 등 사회경제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성별이나 계층에 따라 정치·사회의식이 상이하다는 점을 토대로, 오늘날 20대는 하나의 세대로 묶을 수 있는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초격차 세대’라는 사실을 목도한다. 불평등 확대와 격차 고정 상황에서 겪는 경험의 이질성이 정치·사회의식에 영향을 미쳐 ‘계급의식’이라 부를 만한 세계관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까닭이다. 이러한 분석은 20대 문제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주요 이슈가 불거지게 된 동력을 알아보는 데는 충분하고도 분명한 근거가 된다. 그와 동시에 한국 사회에 공고하게 자리 잡은 ‘10과 90의 사회’의 민낯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데 톡톡히 기여한다. 20대가 경험하는 다중의 불평등: 10퍼센트만이 차지하는 ‘번듯한 일자리’ 세습 중산층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피고자, 저자는 20대의 취업(노동시장 진입) 과정과 취업 직후 생애주기에서 그들이 겪는 경험에 착안한다. 노동시장 진입은 직업적·계층적 지위를 결정하는 과정이면서, 이전에 이루어진 인적자본 투자의 결과물이다. 책은 노동시장을 크게 ‘1차 노동시장(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고임금-높은 고용 안정성)’과 ‘2차 노동시장(중소기업·비정규직의 저임금-낮은 고용 안정성)’으로 나누고, 1차 노동시장에 진입한 이들의 비중이 2010년 이후 10퍼센트 수준으로 줄어들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1차 노동시장, 요컨대 번듯한 일자리를 초임 월 300만 원 이상이라고 가정할 때 2017년을 기준으로 동갑내기들 중 약 10퍼센트에 해당하는 7만 2,000명만이 그 울타리 안에 들어갔다. 이렇듯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세습 중산층의 1세대는 경제력만이 아니라 사회적 네트워크, 문화자본을 바탕으로 10퍼센트에 해당하는 번듯한 일자리를 ‘능력의 차이’로 포장해서 세습 중산층의 2세대에게 물려주었고, 이렇게 굳어지는 격차 고정은 이후 결혼과 자산 축적 등 생애주기 전반을 결정한다는 것이 책이 말하는 핵심적인 주장이다. 1차 노동시장과 2차 노동시장은 각각 ‘내부자(Insider)’와 ‘외부자(Outsider)’로 치환했을 때, 그 단어가 갖는 의미가 한층 생생하게 살아난다. 어느 조직이건 한 번 ‘아싸’가 되면 ‘인싸’가 되기 어렵듯이, 노동시장에서도 한 번 외부자가 되면 내부자로 승급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2004~2006년까지만 해도 중소기업 근로자 가운데 3.5퍼센트가 1년 뒤 대기업으로 이직했는데, 2013~2015년이 되면 2.2퍼센트로 그 비율이 줄어들었다는 데이터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기에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 ‘출신 학교’는 매우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데, 내부자와 외부자를 가르는 중요한 기로인 까닭이다. 내부자와 외부자의 극심한 차이는 중세 유럽 도시의 ‘성 안 사람’들이라는 표현에서 ‘부르주아지(bourgeoisie)’라는 신분을 가리키는 용어가 나왔던 것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노동시장과 관련한 논의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2010년 이후 나타난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