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문과생들을 열광시킨 철학교수의 인공지능 강의 “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 과연 문과생의 언어로 복잡한 AI를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까? 프로그래밍 언어, 코드 분석으로 이루어진 AI를 우리 일상과 연결된 언어로 설명해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저자 다카하시 도루다. 그는 와세다대학에서 ‘기술철학’ 강의로 문과 학생들을 가르친다. ‘기술’과 ‘철학’의 조합이라니. 이렇듯 인공지능을 대하는 문과생들의 태도나 생각을 가장 가까이에서 듣고 느낀 덕분에 그들의 의견을 반영한 강의를 할 수 있었다. 평범한 ‘문과형 인간’의 눈높이에 맞춘 책을 쓸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대부분의 인공지능 담론은 로봇에게 일자리를 뺏길 인간의 두려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그 관점에서 벗어나 좀 더 구체적이고 일상과 가까운, 현실적인 질문들을 제기한다. 인공지능은 지금 우리 삶의 어디까지 관여하고 있는지, 그들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할지, 그들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지, 인간과 기계가 어떻게 다른지, 기계와 어떻게 결합하고 협력할 수 있을지, 그리고 기술 개발에 앞서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재차 묻는다. 철학 교수답게 알고리즘 등의 이과 용어를 배제한 것은 물론, 〈공각기동대〉〈Her〉〈아바타〉와 같은 익숙한 미디어 사례를 들어 인간과 기계의 존재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한다. 유투브나 SNS 등의 현실 사례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Her>처럼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공각기동대>처럼 인간의 사이보그화는 가능할까? 로봇에게 차인 남자 영화 <Her>의 남자 주인공 테오도르는 인공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거부감은커녕 새로운 사랑의 탄생이라며 깊이 감동했고, 또 공감했다. 여자 주인공인 사만다가 실체 없는 운영체제라는 사실이 오히려 ‘육체 없이 마음만으로 가능한 사랑’이라는 서사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저자는 인간과 기계 간의 사랑이 가능함으로써 벌어지는 일에 대해 다시 질문한다. ‘인간은 늘 기계보다 우위에 있다는 믿음’ 덕에 우리는 기계와 인간의 동등한 관계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둘의 우열관계가 모호해지면서 사랑까지 가능하다는 말은 기계가 곧 인간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로도 이어진다. 실제로 영화에서 사만다는 테오도르뿐만 아니라 641명과 동시에 연인 관계를 맺는 하이퍼 인공지능으로 진화한다. 테오도르는 결국 그녀와의 사랑을 ‘포기’한다. ‘인간이 기계에게 차였다’는 해석까지도 가능한 대목이다. 영화는 인간이 기계를 대하는 방식, 서로의 관계가 계속 변화하면서 인간 본연의 감정마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로봇이 되고 싶은 인간 한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는 인간의 사이보그화를 다룬다. 로봇 기술을 직접 신체에 이식한 인간의 이야기다. 수많은 인간의 뇌가 인터넷에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인터넷에서 검색한 정보를 뇌에 다운로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사이보그화는 왜 필요한 걸까? 영국 레딩대학교 연구원 케빈 워릭은 《나는 왜 사이보그가 되었는가》에서 “기계가 인간의 지성을 능가하는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즉, 인간이 기술의 도움으로 신체를 업그레이드해 기계에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인간의 사이보그 사례를 겪고 있기도 하다. 일본에서 출시된 ‘네코미미’라는 고양이 귀 모양 헤드셋은 인간의 뇌파를 분석해 그에 따라 귀를 움직인다. 네코미미를 머리에 쓰고 집중하면 귀가 쫑긋 서고, 휴식 상태가 되면 귀가 축 처지는 식이다. 국내 유명 유투버들이 ‘네코미미 착용기’를 다수 올리기도 했다. 이렇듯 기계와의 ‘일체’를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될 날도 머지않았는지 모른다. 인간은 왜 자신을 뛰어넘는 존재를 두려워하면서도 원하는가? 인공지능이 무엇인지,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 등에 대한 기술적 담론은 이미 많이 형성되어 있다. 여기서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 기술적 담론 대신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게 될 ‘인간이라는 존재’ 그리고 ‘로봇과의 협력’에 초점을 맞춘다. 테크놀로지와 인간의 삶 사이의 관계를 인간의 욕망이라는 차원에서 철학적으로 접근한다. >> 인간은 자신을 뛰어넘는 존재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꿈꾼다. 가소성이라는 근본적 욕망에 이끌려 살아가는 인간은 자신을 뛰어넘는 존재에게 불안과 공포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기대감을 멈추지 않는다. (...)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인공지능 붐이 일회성으로 그칠지, 구체적으로 언제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이 등장할지에 대한 물음은 잠시 접어두어도 좋다. 오히려 자신을 능가하는 존재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계속될 경우 이러한 욕망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생각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다. 철학이다. 철학 없이는 이 주제를 다룰 수 없다. __본문 중에서 인공지능 개발은 결국 인간에게 엄청난 위험을 안겨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인간은 왜 기술 개발을 멈추지 않는가? 저자는 인간이 자신을 뛰어넘는 존재를 만들고 싶어 하는 동시에 ‘그런 존재’가 되길 바란다고 역설한다. 인간의 뇌에는 ‘가소성’이라는 성질이 있다. 환경에 따라 계속 발전하고 변화하려 하는, 끊임없이 한계를 뛰어넘으려 하는 인간(뇌)의 욕구를 말한다. 이러한 자기 초월의 욕망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은 자신을 뛰어넘는 존재에게 공포를 느끼면서도 기대감을 멈출 수 없다. 인류와 기계가 공존하는 미래에 필요한 것은 기술적 지식보다 ‘인간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의 등장을 논하기 전에, 인간의 자기 초월 욕망을 다룰 방법부터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답은 바로 철학에 있다.